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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Aug 21. 2016

한옥! 낯선 익숙함‥

[7호·특집] 성북동 한옥 | 이준호


  2000년대 초반, 도심에 남아있는 한옥들이 갑작스레 주목받기 시작했다. 표면적으로는 우리의 전통주거 양식을 보존한다는 거창한 이유를 댔지만, 본질적으로는 급속도로 성장한 도시에서 우리가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을 선사해 주는 한옥으로부터의 경제적 이익이 주목을 받은 것일 테다. 거기에 더해 2000년대 후반부터는 정부에서도 우리 고유의 것들을 보호하려는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고 — 비록 삶의 편의를 위해서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 많지는 않지만 — 도심의 한옥도 우리의 전통주거 양식으로 보존해야 할 대상이 되었다. 이제 삼청동과 북촌의 한옥은 집주인이라고 해도 마음대로 고치거나 새로이 지을 수 없다. 한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터전으로서의 편의냐 보존의 대상으로서의 한옥이냐를 두고 첨예한 논쟁이 있기도 했으나, 어느 한 쪽으로도 결론을 내기 어려운 숙제인 것은 여전하다.


  한옥은 집이다. 철과 콘크리트, 유리 등이 없던 시절에 우리 주변에서 나는 재료들을 이용해 지었던 집이다. 집은 사람의 삶이 담겨지는 공간이고, 그 시대를 아우르는 가장 보편적인 가치와 규범들이 공간으로서 구현되는 곳이다. 편안하고 편리한 공간이어야 함은 당연하다. 그러나 한옥은 불편하다. 정확히 말하면 현대인의 삶을 담아내기에는 불편한 공간이다. 하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데 불편하다고 해서 한옥이 쓸모없는 것이라는 단순한 시각은 적절하지 않다. 공간을 구현해 내는 기술적인 부분들을 차치하고 보면, 한옥이라는 공간이 가진 철학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철학과 접점이 많지 않음을 뜻할 뿐이다. 그런 ‘불편한 옛 집’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물론 불편해서 어찌어찌 처분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한옥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는 것은 주목할만한 상황이다.


  집으로서 한옥의 불편함을 개선하기란 여전히 쉽지 않지만, 그 외의 부분에서 공간으로서의 한옥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일단 우리가 봐왔던 도시와는 다른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손으로 다듬어 크기가 제각각일 것 같은 주춧돌과 반듯한 직사각형으로 재단하지 않은 나무기둥, 통나무를 그대로 얹어 나무 자체의 구불구불한 선이 드러나 있는 서까래, 역시 규격품이라고 볼 수 없는 대청마루 등은 우리 주변의 거의 모든 사물들이 그러하듯, 공장에서 규격화되어 정확한 치수를 가지고 재단되는데서 말미암은 획일적이고 메마른 느낌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 마치 ‘도시가 답답하고 삭막하게 느껴지는 이유가 모든 것들이 규격화되고 너무 정확한 선들로 정제되어 있기 때문이야!’ 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인지 한옥은 여럿이 모여 있는 곳이라 하더라도 기둥, 주춧돌, 기둥 사이의 간격 등이 정밀하게 맞아 떨어지지 않고 제각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지 각자가 자리하고 있는 땅에 맞춰져 있을 뿐이다.


  형식적이고 장식적인 과거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던 모더니즘의 개념인 기능 위주의 잣대를 들이대면 한옥은 근대적이지 않은 건축으로 분류되기 십상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만도 않다. 지붕을 지탱하는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는 기둥, 보, 서까래로 이루어진 구조는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다. 그리고 기둥 위에 올려진 공포와 지붕의 처마선, 나무 고유의 형태를 그대로 살린 자연스러운 곡선은 우리 건축을 대표하는 아름다움으로 자리매김 했다. 기능을 위해 장식을 포기했던 서구와는 달리 기능에 미를 더하고, 미에 기능을 접목시켰던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한다.


  빠른 경제성장과 함께 불편한 한옥들은 대부분 사라졌지만, 선조들이 한옥을 통해서 남겨놓은 유산은 우리 의식 어딘가에 아직까지 자리하고 있다. 어떤 이는 일제 강점기에 전통건축과 현대건축 사이의 맥이 끊겼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위의 예에서 보듯이 어떤 사회 전반을 차지했던 문화는 그리 쉽게 바뀌지 않는다. 3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변질과 왜곡의 과정을 거쳤을 수는 있지만, 외부에서 끊임없이 단절시키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그것이 불과 몇 십 년 사이에 무 자르듯 잘려 나가는 것은 아니다. 한옥도 마찬가지이다.


  일제시대, 제각각이던 집의 규모와 그 집들로 인해 생긴 구불구불한 골목길은 통제하기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집이 들어서는 땅을 정리해둘 필요성이 생겼고,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직선의 도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일정한 크기의 땅이 배치된 개발계획이었다. 결정적으로 한옥의 모든 요소가 들어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크기였다. 하지만, 공간이라는 것은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기 마련이고, 그 상황에 적응하여 만들어진 것이 지금 우리가 한옥이라 부르고 있는 도시형 한옥인 셈이다.


  이후, 급격한 인구증가 속도에 맞는 주거정책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한옥을 짓는 방법이나 한옥의 구조 등은 제외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국내에 도입된 시멘트와 시멘트 벽돌이라는 재료는 집을 짓는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었다. 더 빨리, 더 많은 집을 보급하기를 원했던 정부의 정책과도 시기적으로나 상황적으로 잘 맞아 떨어지면서 시멘트 벽돌로 지어진 영단주택, 부영주택이 산업화 시기의 주요 보급형 주택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것도 이내 인구증가 속도와 그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땅을 감당하기 어려워지면서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아파트로 주택 사업의 중심이 이동하기에 이른다.


성북동의 사라진 한옥 집터


  이런 일련의 변화 속에서 한옥이라는 집의 외형은 급격하게 바뀌었을지 모르지만, 그 속의 공간은 사람들이 수용할 수 있는 속도로 변화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는 주장이 과연 너무 앞서간 생각일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가 일제시대라는 불편한 시대를 건너뛰면서 (정확히는 부정하면서) 한옥을 위시한 전통건축의 보존을 부르짖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 이전에, 일제시대에도 한옥이 공간적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는 전제를 먼저 인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제는 살면서 한옥이라는 공간을 한 번도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 접해본 사람보다 훨씬 많아졌지만 한옥에서 느끼는 편안함, 포근함, 익숙함 등은 다양한 연령과 계층이 공감하는 일반적 정서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로 한옥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내부 여기저기서 일고 있는 지금이, 일제강점기라는 외부적 요인으로부터의 위기에 비해 오히려 더 큰 위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대표적인 한옥 밀집지역인 성북동에서도 근 몇 달 사이에 네다섯 채의 한옥이 사라졌다. 참기 어려운 불편함과 더불어 경제적 이익 때문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씁쓸함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한옥이 지금 우리 사회 내부에서 생겨난 자발적인(?)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한옥에 사는 사람의 의지나 보존을 위한 정부의 지원 정책 등도 중요하겠지만, 우리 모두가 한옥이라는 존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닐까.




이준호는 대학에서 건축공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성북동에 자리한 건축그룹[tam]의 대표이다. 성북동천과 인연이 닿아 성북동에서 건축학교를 맡아 진행했고, 지금은 사무실도 함께 쓰고 있다. 성북동이 좋아 사무실도 냈지만 외근이 많아 정작 사무실에는 오래 머물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성북동천은 성북동 주민과 지역에서 활동하는 민간 법인·단체, 비영리조직, 전문가 및 예술인들이 모여 설립한 주민 공동체로, 성북동에서 마을잡지 발간, 마을탐방 진행, 교육·문화 프로그램 기획, 지역 내 공론의 장 마련 등 마을공동체 형성과 주민간 연대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는 성북동천 내 마을잡지 편집위원회가 발행하는 마을잡지이며, 7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의 '2016 마을미디어 활성화 주민지원사업'에 선정되어 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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