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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Jul 12. 2017

북정마을 골목 이야기

[2호· 특집] 골목 탐방기|글 장영철

* 탐방 일시 : 5. 31(토) 15시 ~ 16시 30분

* 출발 장소 : 성북초등학교 정문 입구

* 코스 : 쌍다리 식당 - 북정마을 – 주민 자택방문 – 주민인터뷰 – 심우장 골목 – 우정의 공원


  성북동은 이제 서울의 대표적인 골목 투어 코스로 알려져 있다. 주말이면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성북동을 찾아온다. 어떤 이는 외국에서나 볼 수 있는 저택이 볕 좋은 언덕위로 즐비한 부촌으로 상상하고 성북동을 찾아온다. 성북동을 방문한 외지 손님들은 성곽을 걷고, 고택을 방문하며, 이국적인 대사관들과 재벌가 저택의 위압적인 품격에 주눅 들고, 내가 이곳에 이방인이로구나 하는 이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는 지나치게 왜곡된 성북동에 대한 선입견에서 비롯된 결과다. 성북동은 결코 부촌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 성곽 아래나 3구역 일대에는 처마를 맞대고 가난을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부촌의 어마 무시한 담벼락도 없고, 이웃의 얼굴조차 모르는 삭막함도 그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랜 세월을 함께 견디며 살아온 사람들의 삶의 풍경이 그곳에는 배어 있다.

  오늘 우리가 찾은 성북동은 성북동의 가장 깊은 속살이며, 성북동을 가장 마음 깊이 품고 살아온 분들의 고향 같은 곳이다. 그들의 향기와 모습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 바로 북정마을이 우리의 오늘 탐방지이다. 북정마을은 여느 서울의 골목투어에서 느끼는 인위적인 꾸밈이나 장식 없는 민낯의 마을살이를 볼 수 있는 몇 남지 않은 서울의 서민동네이다.


  오월의 마지막 날, 성북초등학교에서 시작된 골목 투어는 때 이른 무더위와 함께였다. 북정마을 입구에는 이름만 남은 쌍다리가 있다. 지금은 맛집인 돼지불백 기사식당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예전 성북천이 복개되기 전에는 쌍다리가 놓여있어 쌍다리라는 명칭을 기억하게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북정의 첫 인상은 여느 서울 동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고 평범하게 시작되었다. 얼마간 오르막을 여유롭게 걷다보면 삼거리가 나오고, 차츰 옛 기억 속의 서울모습을 간직한 주택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어지는 오르막을 걷다보면 사람이 살지 않는 빈 주택인지 어느 예술가의 작업실인지 독특하게 자리잡은 반지하 공간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오르는 내내 오랜 기간 정원을 가꾸고 공들여 단장한 듯한 주택들이 길 주변으로 나란히 줄지어 있다. 특히 주변에 아파트라고는 한 채도 볼 수 없고 단독주택과 낮은 연립들이 가지런히 지어져 조용한 성북동 마을에 들어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서울의 여러 지역들처럼 북정마을도 재개발을 둘러싼 갈등으로 첨예하게 맞서 있다는 것이 서글픈 느낌을 들게 하기도 한다. 70~80년대 서울 모습을 간직한 북정마을이 언제 재개발로 여느 도심의 판박이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 혹은 돈 많은 사람들의 고급 한옥으로 탈바꿈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을 곳곳에는 70년대의 옛 슬레이트 벽돌로 담을 쌓은 주택과 재개발 갈등을 보여주는 벽보가 혼재해 있다. 옛 추억을 간직한 마을이 혼란스러운 풍경이 되어버린 것 같다. 아이러니 하게도 재개발 논란 속의 북정마을을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것은 500년 넘게 서울을 품고 있는 서울성곽이다. 문화재란 이름으로 보존되고 50년 넘게 주민들의 삶과 함께 한 마을이 재개발이란 미명하에 사라지거나 흩어질지 모르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성곽이 보이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북정마을 골목 투어가 시작된다.

  예전 북정마을 연탄가게 였다는 파란 대문 집 사이로 난 골목을 따라가면, 어릴 적 숨바꼭질 놀이라도 했을 법한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게 된다. 어디로 나 있는지 모를 골목길 사이로 빠져 들어가면서 고추며, 상추, 깻잎 그리고 이름 모를 화초들을 붉은색 대야에 가꾸어 골목 텃밭을 만들어 놓고 지내시는 어르신들도 만났고, 뒤돌아 보이는 성곽과 북정의 아랫마을을 내려다보며 도심의 혼잡함을 벗어나 여유로움도 느껴 보았다.

  좁은 골목을 따라 난 북정마을의 동쪽 끝에는 막다른 골목이 하나 있다. 덕수교회와 이종석별장, 성북구립미술관, 대사관저와 북정마을이 묘한 대치점이 되는 경계의 자리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성북동의 풍경은 마치 그림처럼 아름답다.

  동쪽 끝 골목의 아래에서 빨래를 너는 윗집 어머니와 옥상 텃밭을 가꾸는 아랫집 아주머니의 정겨운 대화를 엿듣는다. 대화 속에 묻어나는 북정마을의 사람 사는 향기가 물씬하다. 골목 끝에서는 멀리 성북동을 대표하는 간송미술관도 보인다. 일제 강점기 민족정신의 보존을 위해 전 재산과 바꾼 귀중한 문화재를 보관하기 위한 보화각의 또 다른 이름 간송미술관. 멀리보이는 간송미술관 옥상의 초록색의 색감은 혹시 북정마을 여기저기 가꾸는 텃밭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보며, 북정마을 가장 높은 북정경로당을 향한다.

  북정마을 경로당은 성북동의 하늘이요, 가장 시원스러운 풍광을 간직한 곳이다. 사방어디도 막힌 곳이 없다. 북악산이 보이는 곳으로 북정마을을 경유하는 마을버스의 회차 지점이기도 하다. 성북동하면 떠오르는 간송 전형필선생의 간송미술관이 내려다보이는 이곳이 성북동의 진짜 명당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북정경로당을 지나 북정 미술관을 거쳐 민족시인 한용운선생의 심우장으로 내려오는 내내, 나는 마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마을은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고, 그 사람들이 오랜 세월 일구어놓은 생활문화가 살아있는 곳이리라. 그렇다면 북정마을이야말로 다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간직해야 할 우리의 문화가 아닐까? 부디 재개발의 광풍을 견뎌내고 북정이 지금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기는 비는 마음이 더욱 간절해진다.



장영철은 성북동에 대해 관심이 많은 직장인이다. 그동안 성북동을 공부하는 모임에 함께하기도 했으며, 성북동이 이웃들과 정답게 살아가는 행복한 성곽마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2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4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4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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