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호] 성북동의 숨은 보물 찾기 | 글 최성수
후두둑 빗방울 사내가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선다
그 가게, 조선시대 음식 책 이름을 닮은 ‘디미방’
오래 고인 우물처럼 가라앉은 자리
지난 겨울 함박눈이 힐끗 사내에게 주었던 눈길을 거둔다
순간, 뚝배기 속 뜨거운 국밥도 숨결을 멈춘다
느릿느릿 깍두기 보시기를 밀어주는
주인장 손길은 낡은 축음기의 바늘처럼
흔들린다
지나가던 늙은 총각도
늦은 잔업에 시달린 노동자도
생의 뜨거운 국밥 한 숟가락을 뜨는 곳
성북동, 천천히 걸어 다다르는 곳의 허리 쯤
천 년 전부터 자리 잡고 시간 여행자를 기다리는
그 국밥집은 늘 고여있다
과거와 현재가 함께 어울려
막걸리잔을 들고 국밥을 먹는 곳
성북동의 숱한 골목과 지붕 낮은 집들처럼,
혹은 간송미술관이나 길상사처럼
오랜 시간을 거꾸로 흘러가고 있는 디미방,
지워지고 사라져도 늘 그 자리에서
국밥을 말고 술잔을 내밀
그리운 기억 속의 옛 집은
오늘도 우두커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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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수는 시인이며 청소년 문학 작가이다. 그동안 시집 〈장다리꽃 같은 우리 아이들〉〈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사랑은〉〈천 년 전 같은 하루〉〈꽃, 꽃잎〉을 냈으며, 청소년 소설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꽃비〉〈무지개 너머 1,230마일〉을 내기도 했다. 성북동에 50여년을 살다 지금은 고향인 강원도 안흥 보리소골로 귀향하여 고향과 성북동집을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성북동이 사람들의 행복한 꿈을 담아내는 터전이기를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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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9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7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7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