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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Sep 11. 2016

현존하는 3대 요정, 삼청각을 찾아서

[7호] 성북동 문화재 답사기 | 박진하

  전날 성북동에서는 누리마실 축제가 있었다. 온 몸에 피곤이 젖어 일어서기 어려웠으나 어느새 또 다시 닥쳐온 원고 마감을 생각하며 막내딸의 연습장에서 메모할 노트 몇 장을 찢어 챙겨 삼청각 답사에 나섰다. 우리 아이의 연습장이란 것이 수학 문제를 풀던 것과 역사 시험을 위해 요약한 부분 등 여러 내용이 혼잡해 있고 중간 중간마다 여백이 많아 빈 페이지를 쉽게 찾을 수 있어 메모지로 사용하기에 좋은 까닭이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아내는 삼청각을 한두 번 가본 것도 아닌데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나가야 되느냐고 반문한다. 사실 그렇다. 두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녀왔다. 그러나 막상 글을 쓰려 하니 확인해야 할 것도 많이 있었고 보다 세밀한 답사 과정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른 새벽 7시에 출발했다.


  삼청각에는 두 개의 문이 있다. 하나는 자동차로 가면서 바로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메인 건물인 일화 정으로 바로 갈 수 있는 경로이다. 또 다른 방식으로는 걸어서 솟을대문을 거쳐 들어가는 것이다. 삼청터널 가까이에 있는 이 대문은 대단히 화려하다. 일반적으로 궁궐이나 사찰 이외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단청 장식을 하고 있다. 담장이 둘러싸인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대문을 중심으로 굽어 들어가고 있다. 멀리서 보는 담장은 정말 예쁘다. 크고 작은 사각 석 위로 흑 벽돌과 적 벽돌을 이용해 길상무늬 장식을 하고 기와로 쌓아올려 덮개를 만들어 올렸다. 그 사이로 큰 대문이 들어서 있다. 그런데 이것이 걸작이다. 2개의 높은 고주와 또 다른 2개의 기둥을 지주로 한 솟을 대문인 것이다. 특이하게도 ‘헛기둥’이 앞뒤로 두 쌍이나 있다. 대들보 위로 짧은 기둥을 만들어 받치는 동자주는 보아왔지만 허공에 메어 달린 짧은 기둥은 처음 본다. 사실 이건 기둥이라기보다는 허공에 매달려있기 때문에 오히려 하중부담만 커지는 역효과만 있다. 건축공학적으로 보면 이건 그야말로 웃기는 일일 것이다. 어찌 이렇게 만들었을까 싶어 가까이 가 보니 시멘트다. 그래서 이런 기괴한 대문도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는 유연한 곡선을 그리며 건물 안으로 객을 안내하고 있다. 왼편으로 담장이 있고 오른편으로는 자연 정원이 펼쳐진다. 이 작은 동산 위로는 소나무, 단풍, 진달래, 쥐똥나무, 구상나무 등이 서식하고 있다. 그리고 동백나무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만 자라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의외이다.


  그리고 이 삼청각은 산비탈 경사를 수평으로 깎아 평지를 만들고 그 지면 위로 건물을 배치한 것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의 지형을 살리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경사진 비탈길을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으로 자연석을 이용한 S자형 계단을 만난다. 그를 따라가다 보면 천추당이 보인다.


  이 건물은 팔작지붕의 전통 기와집이다. 정면 6칸, 측면 3칸의 규모로 계단 5개 높이의 기단석 위에 지어진 것이다. 정면 출입문은 격자창과 거북이 등껍질 무늬를 활용한 복합 유리문이다. 그 위로 큰 통유리가 있고 창방, 평방, 첨자 등이 있어 한옥다운 멋스러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 내부에는 영업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홀이 있고, 그 중심으로 툇마루가 그 주변을 감싸고 있다. 난간은 박쥐 무늬의 음각풍혈과 연꽃 무늬의 하엽(荷葉)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정면 좌우로 오동나무 두 그루가 식재되어 있다.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딸이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었는데 15년이면 크게 자란다. 그 나무로 딸이 시집갈 때 가구를 만들어 주기에 혼수목(marriage tree)이라고 불렀다. 다시 밖으로 나와 계단을 내려서면 왼편으로 줄을 서서 나가는 사람을 배웅하는 쥐똥나무 군락을 만날 수 있다.


  다시 조금 오르면 편운당(片雲堂) 쉼터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2층 누각으로 팔각 정자이다. 조각구름이라는 당호도 낭만적이지만 다른 이름인 유하정(幽霞亭)도 좋다. 즉 이곳에서 볼 수 있는 저녁 노을 풍광은 그윽해서 감상해 볼만하다는 의미 일게다. 1층은 내부시설로 거북 등껍질 무늬를 기본으로 한 장식 벽면으로 둘러싸여 있다. 본래의 기능을 담당하는 2층 누각은 8각 정으로 앞 5면은 완(完)자형 유리창으로 되어있다. 한 면이 4개의 유리 창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밖으로 덧댄 이중 유리창은 통유리라 안쪽 창문을 열어 두었을 때 그 개방감을 크게 할 수 있다. 이는 밖의 아름다운 풍치를 안으로 끌어들이는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다만 그 내부로 출입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어 그를 확인할 수 없음이 아쉬웠다. 나머지 3면은 무대 뒤로 벽면처리를 했다. 정자 주위로 난간을 설치해 둘러 볼 수 있게 했는데, 난간과 바닥을 잇는 부분은 닭의 다리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계자각이라는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것이 시멘트 콘크리트로 만들어 졌다는 사실이다. 또 건축물 상부에 있는 화반이나 첨자 그리고 판벽 등도 전부 시멘트로 되어 있다. 다만 색칠을 더해 멀리서 보면 목재처럼 보인다.


청천당(聽泉堂)


  이 전망대 앞 도로를 건너면 취락문(聚樂門)이 눈에 들어온다. 이 문 좌우 담장 구석에는 조그마한 화단을 만들어 갖은 화초를 키우고 있다. 여염집 대문과는 달리 화려한 장식의 이 문을 지나면 잔디 위로 꾸불꾸불한 S자형 바닥석을 깐 보행로가 보인다. 본래의 목적은 잔디를 보호하기 위함이었겠지만 그 유연한 것이 보기에도 좋았다. 그리고 그 소재도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는 회색 응회암으로 되어있기에 단아한 느낌을 가져다준다. 이 길 왼편으로는 고운 담장을 배경으로 자연석을 이용한 작은 동산을 만들고 향나무, 진달래, 단풍 등을 심어 작은 숲을 조성해 두었다. 그 반대편으로는 담장 대신 여러 나무를 식재하여 다른 공간과 구분되도록 경계선 역할을 하도록 했다. 좌우가 대칭되도록 하는 것보다 이런 비대칭이 주는 변화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즐겁게 한다.


  이 공간의 주인공인 청천당(廳泉堂)은 출입문 2칸을 중심으로 좌측 2칸, 우측1칸을 배치하여 역시 이 또한 파격이다. 입구의 출입문은 너무 평범해서 편안하다. 지나친 장식이 너무 거슬려 보인다했는데 이 당호의 창호는 너무나 서민적이다. 시골집에서 흔히 보던 그대로이다. 밖의 창호지 문은 거의 꾸밈없이 위 아래로 네 칸을 구분하여 위 3칸은 창호지로 아래 한 칸은 판재로 막아 버렸다. 보통 누워있으면 밖에서는 그 사람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게 한 것이다. 그러나 앉아 있거나 서 있으면 창호지 밖으로 그 사람의 실루엣이 비쳐나가 존재 여부를 알 수 있게 된다. 이중창으로 안으로 덧낸 방열창도 격자무늬의 유리 창문이다. 과한 장식과 지나친 치장이 졸부의 취향처럼 느껴지게 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처럼 평범함은 너무나 돋보이는 것이었다. 돌아 나오니 마당에 재미있는 장식이 보인다. 거의 탄성을 지를 뻔 했다. 응회암 조각을 이용해 작은 원형 모양으로 마당 장식을 한 것이다. 아마도 바닥 석을 깔고 남은 돌로 이런 모양을 만든 것 같다. 어느 것 하나도 같은 모양의 돌은 없다. 제각기 다른 돌 조각을 모아 모자이크 식으로 둥근 원형을 만들었다. 장인이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 남은 돌로 이런 것 하나는 남겨 두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어 이 삼청각의 주 건물인 일화당으로 걸음을 옮긴다. 대문 앞에 서니 마당 공사가 한창이다. 잔디를 심고 있는 것이다. 잔디를 까는 정원은 서양식이나, 우리 고유의 방식만을 고집할 수 없으니 반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대형 건물의 담장은 정말 다양하다. 단순한 꽃잎 무늬 장식부터 길상무늬, 한자 기쁠 희(喜)자를 활용한 것과 거북등 껍질(龜甲, 귀갑) 장식까지 총 출동했다. 상류층에서 사용할 수 있는 담장 장식을 모두 동원한 미담 박물관인 것이다.


  그 맞은편으로 웅장한 ‘일화당(一龢堂)’이 서 있다. 가운데 한자가 음독도 안 되고 해석도 불가능하다. 집으로 와 두꺼운 한자 사전을 들추어 보고야 알게 되었다. 화할 화(和)자의 고어란다. 각 건물에 붙어있는 편액이나 각 당호의 기둥에 걸린 주련의 서체가 예사 솜씨가 아닌 듯해서 삼청각에서 근무하는 직원에게 물었더니 친절하게 알려왔다. 특히 편액의 글씨는 전서체의 대가인 심당 김제인 선생의 작품이란다. 전서체라는 서체가 다른 것보다 가장 먼저 쓰여 진 고체인 까닭에 글자체가 우리가 흔히 아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삼청각의 주련 해석


  우리가 이 삼청각을 답사하는 재미중에 가장 으뜸은 당호와 주련을 살펴보는 것일 것이다. 우리 조상은 당신이 좋아하는 시구나 고전 문구를 집안 건물 내 기둥에 붙여두고 아침저녁으로 되새기곤 했다. 지나치게 많다 할 정도 많은 주련이 있는 장소가 삼청각이다. 주련과 당호의 관련성을 확인해 보는 것이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더불어 당호를 명명한 배경 시구를 주련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왜 ‘일화당’이라는 당호를 만들었을까? 이 건물 후면에 있는 주련을 통해 그 수수께끼를 풀 수 있다. “백예 겸전 물아일(百藝 兼全 物我一)”과 “천음 교감 신인화(天音 交感 神人和)”이라는 2개의 주련이 그것이다. 앞 문구의 마지막 한 자인 일자를, 뒤의 문구에서 화자를 차용해 일화당이라 명명한 것이다. 이는 예술의 경지가 지극해지면 듣는 자와 연주하는 자가 하나가 될 수 있고, 더 나아가 자연의 소리와 음악이 서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을 정도에 이르게 되면 자연과 사람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볼 수 있으리라.


  이 건물은 정면 5칸에 양측 면으로 3칸씩을 덧붙인 대형 건축물이다. 정면 출입구 한 칸이 대형 유리창 4개로 구성되어 있고 독특하게도 여닫이 방식으로 되어 있다. 다른 벽면은 커다란 사각 석 위에 적색과 회색 벽돌을 이용해 장식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ㄷ’ 자 배치를 하고 있다. 주 건물을 중심에 두고 양측으로 두 개의 건물을 돌출형으로 붙여 두고 있다. 측면은 6칸일 정도로 대형이다. 목조 건물처럼 보이지만 앞선 것과 다름이 없이 이 모든 게 다 시멘트이다.


삼청각의 담장


  사실 이 건물을 보고 크게 실망한 적이 있다. 그래서 답사기 쓰는 것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었다. 이 삼청각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1972년 만들어져 74년 남북적십자 회담 만찬장으로 사용되었다. 모든 것이 정치적인 계산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삼청각이라 명명한 것도 정치의 중심인 삼청동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삼청터널도 일반의 편의 보다는 이 요정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은 아닐까? 기존의 다른 요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 차원에서 이런 시설을 만든 것은 무슨 이유가 있어서 일까? 비밀이 샐 수 없도록 완벽한 보안시설을 갖춘 비밀 요정이 필요해서 일까? 아님 다른 서민들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흥청망청 즐겨보자는 생각에서 이런 기발한 건물을 만든 것일까?


  삼청각이 시멘트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것을 보면 당시 건설을 담당한 사람들의 조급함을 엿볼 수 있다. 우리 전통적인 건축기법이나 미적 장식 기술을 총동원한 건물이라기보다는 겉만 모방한 얼치기가 되었다. 그런 까닭에 이 삼청각은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추해 보인다. 이는 E. A. 포우의 ‘안경’이라는 단편 소설을 연상케 한다. 소설 주인공은 시력이 매우 나빴음에도 불구하고 외관상 보기 흉하다는 이유로 안경을 쓰지 않았다. 어느 날 오페라 하우스에서 멀리 있는 어떤 미모의 여성을 보고 반하게 된다. 그런데 알고 보니 첫눈에 반한 이 미모의 여인이 할머니이었던 것이다. 멀리서 보면 멋진 전통 한옥 건물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콘크리트 흉물인 것이다. 사실 콘크리트라고 해서 나쁠 것은 없다. 콘크리트라는 소재로도 얼마든지 훌륭한 건물을 만들 수 있다. 일본의 천재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오히려 노출 콘크리트를 많이 사용함으로써 간결하고 단순하지만 차갑지 않게, 또 자연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건물을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삼청각의 문제점은 이런 콘크리트 건물을 목조 건물처럼 보이도록 한 것이다. 어찌 되었든 이 비밀 요정은 성북동에 건립되었고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좋든 싫든 정리는 한번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다시 보고 살 핀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새로운 사실을 보게 되었다. 이런 문제점은 대부분 주 건물인 일화당에 한정된 것이고 다른 건물에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보존하거나 답사할만한 가치를 찾게 된 것이다. 아니 멋지고 아름다운 면을 더 많이 보게 되었다. 지금에야 고백하지만, 슬쩍 보고 조급하게 판단한 선입감으로 인해 가치 있는 여러 것들마저 놓칠 뻔 했다.


  이 건물은 앞에서 보면 1층이지만 뒤쪽에서는 2층이다. 아마도 산의 경사면을 비탈진 곡면 그대로 놓아둔 채 건물을 세웠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일화당을 뒤로 둔 채 담장과 내부 기계실 사이 길로 나아가면 비슷한 규모의 한옥 두 채가 나온다. ‘취한당’과 ‘동백헌’이다. 이 쌍둥이 한옥은 정원이 볼 만하다. 대개 우리 한옥의 정원은 대청마루에서 관찰해야 조성자의 의도를 확인해 볼 수 있다. 먼저 취한당은 급경사를 이루며 내려간 평지 위에 건립되어 있다. 그러니 앞의 정원도 폭이 좁고 길게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일차적으로 가장 위단에 담장을 쌓아 위로부터의 토사 흘림을 막고 있다. 이것도 예쁘다. ‘오래 살 수(壽)’자를 이용한 장식과 거북 등껍질 및 길상무늬를 반복한 미담이 무척이나 고와 보인다. 그 밑으로 여러 나무와 화초를 심고 하단에는 흙막이 사각석으로 마감해 뜰과 구분이 되도록 했다. 이 조그마한 정원은 본래의 지형을 자연스럽게 살린 것으로 두 그루의 소나무가 크게 성장하여 지붕 위로 뻗쳐 있다.


  이와 대비되는 것이 동백헌의 정원이다. 완만한 경사가 보다 여유롭게 보인다. 그저 담장도 없이 수풀을 만들어 놓아 탁 튀인 개방감을 느끼게 한다. 단풍과 철쭉, 소나무, 담쟁이덩굴 등이 군락을 이루면서 무성하게 자라 있다. 하단은 화강암을 이용해 2단 높이로 경계석을 세웠는데 그것이 구불구불 요철을 이루고 있어 부드러운 여성의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삼청각의 장승 가족


  답사를 마치고 숲을 거쳐 처음 들어오던 대문으로 향하던 중에 재미있는 장승 가족을 만나게 되었다. 부부가 있고 아이 2명에 할아버지가 있는 대가족 장승 군이었다. 사내 장승은 옹이를 잘 활용하여 성기까지 만들어 두었으며 코 위에 있는 옹이는 고집스러운 남성의 상징처럼 보인다. 그 옆에 따로 떨어져 있는 남자 아이는 아래 이빨이 서너 개 빠진 개구쟁이 남자 아이다. 코와 머리 부분이 망가져 있어 아쉬우나, 아이의 천진스러움은 여전히 남아있다. 반대편으로는 엄마 장승과 따님 장승이 나란히 서 있고 그 옆에는 할아버지 장승이 춤을 추고 계신다. 우리가 이 장승이 할아버지라는 것을 짐작케 하는 것은 염소수염이 한쪽으로 비스듬하게 자라있기 때문이다. 이들 가족 장승을 볼 수 있는 것은 삼청각 답사과정에서 마지막으로 제공받는 보너스라 할 수 있다.




박진하는 성북동의 명소인 작은 식당 ‘디미방’을 부인과 함께 운영하고 있고, 요가와 명상 전문가이기도 하다. 우리 잡지의 편집위원으로 성북동을 사랑하는 마음을 늘 간직하고 있는 진정한 성북동 사람이다.




성북동천은 성북동 주민과 지역에서 활동하는 민간 법인·단체, 비영리조직, 전문가 및 예술인들이 모여 설립한 주민 공동체로, 성북동에서 마을잡지 발간, 마을탐방 진행, 교육·문화 프로그램 기획, 지역 내 공론의 장 마련 등 마을공동체 형성과 주민간 연대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는 성북동천 내 마을잡지 편집위원회가 발행하는 마을잡지이며, 7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의 '2016 마을미디어 활성화 주민지원사업'에 선정되어 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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