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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Sep 18. 2016

이름을 불러주었을때, 잡초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7호] 성북동 마을여행 - 야생화 탐방기 | 글·사진 이파람

  성북동천 사무실에서 우연히 그 단어를 보았을 때, 내 마음은 몹시 설레었다. 언제 어디서든 만나게 되는 그 이름 모를 풀들의 정체가 무척이나 궁금했었는데, 드디어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햇살이 뜨겁게 쏟아지던 5월의 끝자락 설레는 마음을 안고, 안내받은 대로 성북동 쉼터에 도착했다. 성곽 아래 정자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초록초록 풀이 눈에 들어왔다. 전영문 선생님의 안내와 함께 우리의 여정도 시작되었다. 


  가장 먼저 보였던 노란 꽃은 얼핏 보면 작은 민들레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놀랍게도 고들빼기였다. 쌉싸름한 맛이 좋아 김치로 즐겨 먹는 고들빼기가 알고 보니 서울의 길가 어디에서도 볼 수 있고, 심지어 돌담의 작은 틈바구니에서도 무럭무럭 잘 자라는 흔한 풀일 줄이야. 그 옆으로는 살철쭉이 늘어서 있었는데 살철쭉 꽃은 진달래와 비슷하게 생겨 혼동하기 쉽다. 하지만 진달래는 화전으로도 먹는 좋은 식재료인 반면, 살철쭉의 꽃에는 독성이 강하게 들어있어 먹으면 안 되니 잘 구별해야 한다. 풀이 가진 독은 우리가 풀을 분명하게 구별하고 알

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성북동 야생화 탐방의 길잡이, 전영문 선생님


  모양은 그저 흔한 풀이지만 이름을 알고 보면 재밌는 풀이 많았다. 식물의 잎이나 줄기, 열매 등의 모양새를 보고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발견한 지명이 따라 붙을 때도 있다. 생강나무처럼 향기로 구분하거나 예로부터 전해지던 전설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지천에 널린 노랗고 예쁜 꽃의 이름은 애기똥풀. 줄기를 똑 따면 그 부위에서 아주 진한 노란색 액체가 흘러나오는데 그 빛깔이 마치 애기의 똥 같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애기똥풀 역시 독성이 강해 먹을 수는 없지만, 사마귀가 난 곳에 노란 즙을 바르면 금방 낫는다고 한다. 계란꽃이라고도 불리는 개망초는 참으로 불운한 운명을 타고 났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국에서 왔는데, 하필이면 그즈음 을사조약을 맺게 되어 나라를 망하게 했다고, 망초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거기다 앞에 ‘개’자가 붙었다. 예나 지금이나 개의 삶은 각박하구나 싶다. 그열매가 꼭 쥐똥처럼 생겨 쥐똥나무라는 고약한 이름이 붙은 나무는, 그 이름이 무색하게도 하얗게 피어있는 꽃내음이 흠뻑 취할 만큼 향긋했다. 꽃이 달리는 부분이 비비꼬여 있어서 비비추, 뱀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에서 난다고 하여 뱀딸기, 잘 익은 줄기를 따서 껍질을 벗겨 속살을 쭉 밀면 마치 국수 같은 것이 나온다고 해서 국수나무까지. 때때로 잡초라고 천대받기도 하는 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알아갈수록 마치 친구가 하나하나 느는 느낌이 들었다.


  한양도성 성곽길로 가기 위해 언덕을 오르다 ‘북정마을’이라는 표지판 앞에 섰다. 이 곳 성북동은 옛날에 ‘마전터’였는데, 마전이란 대마를 양잿물에 삶아 표백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라고 운을 떼신 디미방 박진하 선생님의 말씀에서 동네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 당시 이곳에서 일하던 아낙네들의 북적북적 이야기 소리가 언덕 위에까지 들렸다 하여 ‘북적마을’이 되었다가 지금의 ‘북정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성곽길에 다다르자 선생님이 질문을 하셨다. 노란 꽃이 피었을 이 나무의 이름은 뭘까요? 담벼락 부근에서 둥그런 이파리만 무성한 키작은 나무였는데 아무도 그 답을 알지 못했다. 정답은 개나리. 봄철이면 흔히 볼 수 있는 꽃임에도 불구하고 꽃이 지고 나니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풀을 사계절 동안 지켜보아야만 알 수 있다고 하신 말씀을 쉽게 수긍할 수 있었다.


  얼핏 보면 죄다 비슷비슷하게 보이는 나무도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구별할 수 있었다. 산책로 사이에 울타리로 심긴 삐죽하고 납작한 잎이 앞뒤로 똑같이 생긴 것은 측백나무이다. 반면에 잎의 뒷면에 하얀 줄이 있다면 편백나무. 신혼집 인테리어를 직접 하다보니 피톤치드를 다량 내뿜어 가구재로 흔히 쓰이는 편백나무의 목재 단면은 잘 알고 있었지만, 그 잎의 모양새는 몰랐기 때문에 참 흥미로웠다. 참나무에 대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 하나는, ‘도토리나무’ 라는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다만 참나무의 열매를 총칭해서 도토리라고 부르는데, 가장 많은 신갈나무를 포함하여 갈참나무, 밤나무 등 참나무의 종류가 다양하지만 잎을 살펴보면 모양새가 각기 달라 뚜렷하게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혜화문에서 축대나 담벼락에 묻혔거나 길과 집에 밀려 자취를 감춘 한양도성 성북동 구간 성곽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곳, 성북동 쉼터에서는 꽃과 풀을 만나볼 수 있다.


  또 나무하면 빼놓을 수 없는 소나무는 잎의 개수로 그 종류를 구별할 수 있다. 자생소나무는 잎이 두 개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표적으로 바닷가에서 자라는 곰솔(해송)이 있다. 녹화사업으로 미국에서 건너온 리기다소나무는 잎이 3개이고, 잣나무는 5개의 잎을 가지고 있어서 오엽송이라고도 부른다. 가는 길에 누군가가 여쭌 나무는 너무 멀리 있어 잎이나 열매로 구별하기 어려웠지만 수피에 있는 가로 줄무늬를 보고 벚나무라고 알려주셨다.


  성곽길을 따라 걸으면서 외국에서 들어와 아예 자리를 잡은 귀화식물들을 많이 찾아 볼 수 있었다. 개망초, 서양 등골나무, 족제비싸리, 리기다소나무 등 등. 그런데, 비슷하게 생긴 우리나라 자생나무가 있는데 굳이 외국의 나무를 가지고 와서 심은 것은 왜일까? 외래종이 너무 많아져 우리나라 생태계에 문제를 발생시키는 일이 종종 뉴스거리가 되곤 하는데 나무도 피해갈 수가 없다. 언젠가 외래 식물은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급속도로 성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빠른 성장속도 때문에 선호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로인해 토종이 설 자리를 잃는다면 우리의 정체성이기도 한 고유의 모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요즘 집 앞 작은 텃밭에서 토종씨앗을 키우고 있는데 생각보다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많다. 물을 주고 햇빛을 잘 받도록 돕는 일 뿐만 아니라, 비슷한 식물로 인해 교잡이 되지 않게 꽃가루와 벌까지 신경 써야 한다. 이렇게 번거롭더라도 토종식물을 키우려는 이유는 다음 사람, 다음 세대에게 토종씨앗을 물려주기 위해서이다. 하나의 식물이 단순히 하나만은 아닐 것이다. 식물 하나를 키우더라도 책임감을 가지고 그 이후까지도 한 번 쯤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새하얗게 피어난, 이름도 예쁜 산딸나무를 끝으로 일일 야생화 탐방이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세 시간 동안 성곽길을 슬렁슬렁 산책하고 관찰하면서 배움으로 머리를 채웠으니, 이후에는 비워낸 에너지를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과 이야기로 채울 차례였다. 아담하고 정갈한 식당 디미방에서 아욱국 등 잘 차려진 밥상에 둘러앉아 모두가 한껏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참여하는 모임이라 다소 걱정도 되었지만 동네 이웃이라는 느낌으로 따뜻하게 맞아주신 분들께 참 감사하다. 사계절 동안 하나의 풀을 관찰해야 그 풀에 대해 전부 알 수 있다는 말씀을 새기고 나니, 지금의 푸르른 모습이 가을에는 어떤 색깔과 향기로 바뀔지 무척 기대가 된다.




이파람은 정릉동 주민이다. 성북동과의 인연은 몇 해 전 직장으로 맺어졌다. 퇴근길의 고즈넉한 성곽의 저녁과 부드러운 나무냄새를 좋아했다. 지금은 산과 가까운 곳에 신혼살림을 차리고 매 달 강원도로 자연농을 배우러 간다. 어떠한 풀과 곤충도 차별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고 싶은 미래의 자연농부이다.




성북동천은 성북동 주민과 지역에서 활동하는 민간 법인·단체, 비영리조직, 전문가 및 예술인들이 모여 설립한 주민 공동체로, 성북동에서 마을잡지 발간, 마을탐방 진행, 교육·문화 프로그램 기획, 지역 내 공론의 장 마련 등 마을공동체 형성과 주민간 연대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는 성북동천 내 마을잡지 편집위원회가 발행하는 마을잡지이며, 7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의 '2016 마을미디어 활성화 주민지원사업'에 선정되어 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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