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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Sep 10. 2016

여유와 느림의 미학, 삼청각의 주련

[7호] 우리 동네 문화재 | 이준식

  성북동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는 예스러움과 고즈넉함이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얼핏 떠오르는 게 서울 성곽, 간송미술관, 길상사, 심우장, 최순우 옛집, 이태원 생가의 수연산방… 그리고 삼청각이다. 기실 서울 성곽을 빼고 나면 그리 예스러울 게 없는 근현대의 유적이지만 어쨌든 성북동이라 하면 그런 이미지로 다가온다. 생활 리듬이 워낙 바삐 돌아가는 현대인의 삶이다 보니 불과 백년도 채 지나지 않은 세월이건만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지는 탓인지 모르겠다.


  그중에서도 삼청각의 역사가 가장 짧다. 기록을 보니 삼청각이 7·4 남북공동성명이 나온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만찬 행사를 위해 지어졌다고니 하니, 그 역사가 40년 남짓이다. 이런 삼청각으로부터 예스러운 인상을 받게 되는 이유는 우선 그 궁궐에 버금가는 한옥의 웅대한 규모 때문일 터이고, 그에 더하여 주건물 일화당(一龢堂)을 비롯하여 청천당, 천추당 등 주변 건물의 기둥에 붙은 주련(柱聯)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주련은 문자 그대로 기둥에 붙여 놓은 글씨, 주로 한시 대련(對聯)인데 궁궐이나 사대부가, 대형 사찰의 기둥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한자 특유의 조형미를 한껏 살리려는 취지에다 건물주의 정서적 취향이나, 상서(祥瑞), 다복 등 갖은 바람을 담은 미사여구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한자, 특히 그중에서도 한시나 한문이 우리생활에서 아득히 멀어져버린 요즘 세대에게는 주련이 담고 있는 의미를 새겨볼 능력도, 관심도 별반 없는 게 사실이다. 그저 한자로 된 문장이 기둥에 떡하니 버티고 있으니 시각적으로 좀 고상해보일 수는 있을 것이다.


삼청각의 주련


  주련을 붙이는 것은 원래 고대 중국 당송(唐宋) 사이에 존재했던 오대(五代) 때부터 비롯된 풍속이라고 하는데, 현재까지도 중국에서는 웬만한 저택부터 작은 가게에 이르기까지 어렵지 않게 주련을 찾아볼 수 있다. 격에 맞지 않는 경우를 빗대는 말로 ‘가게 기둥에 입춘’이라는 속담이 있다. 입춘대길(立春大吉)이니 건양다경(建陽多慶)이니 하는 주련이, 조촐한 집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겠다. 하지만 적어도 중국에서는 작은 가게일지라도 주련을 붙여두는 사례를 곧잘 볼 수 있다. 이는 그것을 붙이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들이 두루 부담 없이 잘 받아들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심지어 중국 정부는 주련 문화가 한족 전통문화의 정수임을 인정하여, 국가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까지 해놓았다. 중국어로는 주련보다는 영련(楹聯), 대련(對聯), 춘련(春聯)이라는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는데 그 의미나 기능은 우리와 다를 바 없다.


  다만 우리의 경우, 특별한 소양이나 관심을 가지지 않는 한 주련 문화에 익숙해지기는 어렵다. 우선 문자 해독이 쉽지 않은 데다 내용도 긴박하게 돌아가는 현실 상황과 일정한 괴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현실이 각박하게 돌아가기에 현대인에게 오히려 더 필요한 것이 여유와 휴식이 아닐까. 주련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개 정서적 안정을 도모하거나 심리적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것들이 많다. ‘느림의 미학’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생활의 리듬을 한 박자 늦추어가면서 유유자적의 시간을 갖자는 의미이다.


  최근 서울 한강변에서 ‘멍 때리기’ 대회가 열렸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내용을 보니 좀 별스러웠다. 대회 규칙에는 잡담, 휴대폰 사용, 춤이나 노래, 독서 등을 금지하고 있었고 심지어 시계를 들여다보는 것까지도 못하게 한다고 했다. 한 마디로 아무 짓 안하고 멍 때리는 것으로 평소에 쌓인 긴장과 스트레스를 풀자는 의도였다. 온갖 경쟁과 욕망으로부터 자신의 뇌와 마음을 최대한 해방시키자는 게임이었다.


  궁궐, 사찰, 기념관, 전통 한옥 등에 붙은 주련을 대하는 우리의 심사도 아마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일종의 ‘느림의 미학’이자 ‘멍 때리기’의 좋은 방편이 되지 않을까 싶다. 한자, 한문이 어렵다고 느껴진다면 그냥 자기가 아는 한자나 찾아보면 되고, 전서와 해서, 혹은 초서로 된 한자의 조형미에서 위안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삼청각에 붙은 주련도 바로 이런 ‘느림’과 ‘멍 때리기’를 통한 여유찾기의 일환이라고 치부해버리면, 뜻밖에 얻어 걸린 별미처럼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삼청각은 주 건물 일화당을 비롯하여 각기 규모가 다른 청천당(聽泉堂), 천추당(千秋堂), 취한당(翠寒堂), 동백헌(東白軒) 등이 있고, 각 건물의 기둥마다 주련들이 사방으로 돌아가며 빽빽이 붙여져 있다. 삼청각 전체의 주련 수가 얼추 보아도 일백 폭 정도는 되어 보인다. 아마 마음먹고 하나하나 제대로 짚어보려면 며칠은 족히 걸릴 듯하다. 하긴 그걸 일일이 살피는 작업이 곧 스트레스일 터이니, 그것은 주련을 붙인 본래의 의도에도 어긋날지도 모르겠다. 때론 멀찍이서 단아하면서도 기세 찬 서체를 즐기고, 때론 가까이 다가가서 애써 뜻을 새겨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삼청각 내 천추당(千秋堂) 전경


  고맙게도 삼청각 각 건물의 모든 주련 아래에는 한글과 영어 풀이가 붙어 있어서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질라치면 어려울 것 없이 그 뜻을 알 수 있다. 눈 가는대로 서체를 즐기면서 임의롭게 뜻을 되씹어볼 수 있게 한 배려가 돋보인다. 서예가 초정(艸丁) 권창륜(權昌倫) 선생의 글씨로 알려져 있다.


  앞서도 이야기한 바 있지만 삼청각에서 규모가 가장 큰 건물은 정채에 해당하는 일화당이다. 일화당의 인상적인 부분은 지붕, 웅대한 위용을 가진 지붕이 건물을 반나마 내리누르는 듯 앉아 있다. 이곳의 주련은 단출해서 다른 건물의 주련들이 다닥다닥 붙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래서 건물 정면의 대련 한 폭이 금방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詩書禮樂乾坤大(시서예악건곤대)
日月星辰政敎明(일월성신정교명)


  그 아래에 새긴 한글 번역을 보니 “시서와 예악은 천지처럼 위대하고, 정치와 교화는 일월처럼 밝다”라고 되어 있다. ‘시서예약’은 유가의 경전, 그 내용이 심오하고 풍부하다는 뜻이 담겨있다. 그래서 천지만큼 위대하다고 했다. 정치와 교화가 일월처럼 밝다는 말은 지금이 태평성대라는 것을 강조하려는 말이다. 전체 내용이 다분히 정치적, 교훈적이어서 건물의 외양만큼이나 위압적인 느낌이 든다. 당초 일화당이 고위급 국빈을 맞이하는 용도로 건립되었다고 하니 이런 내용이 그런대로 어울릴 법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고급 음식점에 불과

하니 이런 주련 내용에 대해 사람들이 얼마나 공감할지는 알 수 없다. 명(名)과 실(實)이 잘 합치하지 않는다는 느낌이다. 한글 번역에서도 대련의 주요한 특징인 대칭성을 충분히 살린 것 같지는 않다. 이 주련에서는 ‘시서예악’과 ‘일월성신’이 짝을 이루고, ‘건곤’과 ‘정교’, 그리고 ‘대’와 ‘명’이 각각 짝을 이룬다. “시서와 예악은 천지처럼 위대하고, 일월과 성신은 정교처럼 밝다”라고 해도 정치와 교화가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는 살아난다. 한자 대련의 운율미가 한글 번역에도 그대로 반영되었으면 좋을 뻔했다. 어쨌거나 시원스레 써내려간 멋들어진 글씨에 아쉬우나마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일화당 앞쪽으로는 청천당(聽泉堂), 여긴 주련들이 기둥마다 빽빽하다. 건물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는데 일화당의 주련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聽裏泉寒流如達(청리천한유여달)
望中山碧立如愚(망중산벽입여우)


  “귓전 울리는 맑은 여울 지나가고, 눈에 가득 푸른 산 우직스레 서있다”고 번역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어딘가 시원스레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도 싶다. 일화당과는 달리 인적이 드물고 녹음도 우거져 한참을 여유롭게 들러볼 마음이 저절로 동한다. 대련의 운율을 살려 “들리느니 차가운 샘물, 시원스레 흐르고/보이느니 푸르른 산, 우뚝하니 서 있다”로 굳이 바꾸어 되뇌어 본다. 눈길을 끄는 건 대련 속의 두 글자 ‘청(聽)’과 ‘천(泉)’이다. 청천당이라는 편액과 연관된다. 청천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이 시구를 붙였는지, 아니면 이 시구에 매력을 느낀 어떤 이가 그 이름을 거기서 찾아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또 이런 대련도 있다.


據德依仁游以藝(거덕의인유이예)
興詩立禮成于樂(흥시입례성우악)


  “덕과 인에 의거하여 예에 노닐며, 시와 예에 흥기하여 악을 이룬다”고 번역되어 있다. 옛 선비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겼던 유가의 덕목을 기리면서, 경전 공부에 몰두하겠다는 주인의 마음을 담은 것 같다. 하지만 한글세대에게는 한참 설명을 보태야 할 만큼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이런 내용의 주련들이 몇 폭 더 있지만, 망념(妄念)을 잊으려면 그냥 눈으로 짚고 가는 게 상책이다. 억지로 머리로 읽을 것까지는 없다는 말이다. 대신, 한가로움과 여유를 찾기에는 정면에 붙은 대련이 제격이다.


永日鳴琴尋舊譜(영일명금심구보)
小窓分紙寫新題(소창분지사신제)


  “긴긴날 거문고 퉁기며 옛 악보 뒤적이고/아늑한 창가에서 종이 갈라 새 글을 쓴다”라고 번역되어 있다. 조선 시대 문인학자 서거정(徐居正)의 <장하(長夏)>에서 따온 시구이다. 원시를 읽어보니 그가 한직에 머물면서 찾아오는 사람이 줄어들자 긴 여름날 한가로이 소일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그는 세종에서 성종에 이르기까지 학자, 문인, 관리로서 숱한 업적을 남겼는데, 음악과 시를 소일거리로 삼은 품이 고상하고 넉넉하다.


  선비들의 이런 여유는 천추당(千秋堂)의 주련에도 예외가 없다.


快日晴窓閑試墨(쾌일청창한시묵)
寒泉古鼎自煎茶(한천고정자전차)


  “쾌청한 창가에서 새 먹을 시험하기도 하고, 시원한 샘물 길어 옛솥에 차를 끓인다”라고 번역되어 있다. 시인이 ‘새 먹을 시험해본 것’인지 아니면, ‘한가로이 연습 삼아 글씨를 써본 것’인지는 명료하지 않지만, 어쨌든 어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글씨를 쓰지는 않았나 보다. 게다가 주인은 차가운 샘물을 길어 오래된 솥에다 차를 끓인다. 주인이 차 끓이기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건, 차가 ‘저절로[自]’ 끓는다는 데서 엿볼 수 있다. 쾌청한 날, 창으로 스미는 햇살을 받으면서 일필휘지, 붓글씨를 뽐내는 선비를 연상해본다. 차르르르 차 끓는 소리까지 퍼지는 어느 아늑한 서재…. 오늘을 사는 우리는 무엇에 쫓겨 이리 분주하게만 살아야 하는지!


  취한당(翠寒堂)은 무슨 의미일까? 청천당, 천추당은 한자의 뜻만으로도 그 의미를 짐작하겠건만 취한당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마침 놀러 나온 몇몇 중년 사내들이 ‘취한당, 취한당…’을 입으로 되뇌면서 고개를 갸우뚱한다.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까? 중국 옛 선비들은 여름 피서를 위한 정자나 별채에 더러 ‘취한(翠寒)’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곤 했다. 여름의 녹음에서 ‘취(翠)’를 따서, 피서의 장소로 삼기에 적합하다고 붙인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취한당에서 본 주련 가운데 한시의 특징적인 형식 하나가 눈에 띄었다.


古松流水三間屋(고송유수삼간옥)
皓首鳴琴百世人(호수명금백세인)


  번역문은 “옛 소나무 흐르는 시냇물 오막살이집, 흰머리에 거문고 퉁기는 태고적 사람”으로 되어 있다. 특징적 형식이란 바로 두 구에 쓰인 단어들이 모두 명사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흔한 예는 아니다. 번역문은 명사의 특징을 다 살리지 않았는데, 시인은 “노송, 유수, 오막살이집/백발, 울리는 거문고, 나이든 사람”, 이 여섯 개 명사로만 시구를 지었다. 술어나 부사를 전혀 쓰지 않았는데도 묘하게 그 의미가 선연하게 들어온다. 예사 기교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동백헌(東白軒), 필자의 개인적 소견이지만 편액 이름만으로는 청천당이 인상적이고, 주련의 내용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시구는 이곳에 있다.


牢籠歲月淸樽裏(뇌롱세월청준리)
搬運江山素壁間(반운강산소벽간)


  “세월은 술잔 속에 잡아 가두고 강산은 바람벽에 옮겨 놓았다”라고 번역해 놓았다. 고려 말 문인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의 시구에서 따온 말이다. 시인이 병으로 휴가를 얻은 뒤 사립문을 걸어 잠그고 여유롭게 지내던 정경을 표현한 부분이다. 세월이 흐른대도 나는 결국 내 술잔 속, 그 흐르는 세월을 한탄하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호기이자 느긋함이다. 시인은 서재의 하얀 벽에 산수화 한 폭 걸어두었을까? 강산을 옮겨다 놓았다는 표현에서 과장과도 같은 패기와 자신감, 나아가 선비의 여유로움을 발견한다.


  주련은 문학이자 철학, 놀이이자 이야기, 문화이자 예술이다. 또한 주련은 건물의 장식물 같은 존재이다. 웬만큼 규모를 갖춘 한옥이라면 으레 붙어 있는 주련은 어쩌면 맛있는 요리 위에 올린 고명이나, 예쁘게 차려 입은 한복을 돋보이게 하는 노리개에 비유할 수 있다. 공들여 잘 지은 한옥에 주련이 빠지면 바로 그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물론 음식에 고명이 빠진다고 해서 주재료의 맛이 결정적으로 손상될 리는 없고, 또 한복에 노리개가 빠졌다고 해서 그것이 흠결이라고 나무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고명이나 노리개의 역할을 생각해보면 주련이 사람들에게 주는 이미지도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마음을 달래고 머리를 식히려 삼청동, 삼청각을 찾았다면 우선 눈으로 주련이 주는 산뜻한 조형미부터 감상해보자. 성현들의 교훈이나 철학적 사색은 잠시 지나칠지라도 옛 선비들의 풍류나 기개, 여유와 느긋함은 혹시라도 공감할 기회가 되지 않을까.




이준식은 현재 성균관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중국고전시가를 전공했다. 대학 박물관장, 현대중국연구소장, 한국중어중문학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한양도성 서울성곽을 비롯하여 간송미술관, 길상사, 심우장, 우리 옛돌 박물관 등 성북동에 소재한 여러 유적과 명소를 탐방하면서, 그 아름다움과 매력을 전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성북동천은 성북동 주민과 지역에서 활동하는 민간 법인·단체, 비영리조직, 전문가 및 예술인들이 모여 설립한 주민 공동체로, 성북동에서 마을잡지 발간, 마을탐방 진행, 교육·문화 프로그램 기획, 지역 내 공론의 장 마련 등 마을공동체 형성과 주민간 연대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는 성북동천 내 마을잡지 편집위원회가 발행하는 마을잡지이며, 7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의 '2016 마을미디어 활성화 주민지원사업'에 선정되어 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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