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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Oct 25. 2017

낯선 만남의 시작, 마을여행

[9호] 지역공동체 특집 | 글 김경서

  같이 정자에서 밥 먹었던 게 제일 좋았어요.


  재작년 마을여행을 마친 여행자가 내게 건넨 이야기다. 매일 먹는 밥, 종종 보는 흔한 정자 쉼터에서의 기억이 왜 가장 인상 깊고 좋았을까. 결국 마을여행의 감동은 그럴싸한 풍경과 그럴듯한 서비스, 고가의 선물이 아닌 누군가와의 만남이 주는 것 아닐까. ‘마을은 곧 사람’이라는 생각에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마을여행을 만들고 마을공동체를 만나 함께하는 마을살이를 꿈꾸게 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계속 이어가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풀리지 않는 궁금증, 마을여행은 과연 마을에 필요할까?


  2013년, 성북동 북정마을에서 마을사람들과 활동한 것을 계기로 간간히 마을공동체를 소개하는 마을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다가 서울시 마을공동체 종합지원센터와 함께 마을박람회에서 마을이야기 부분을 맡아 진행하게 되면서 ‘마을여행사무소 [마을로행]’을 개소하고 본격적인 마을여행 사업을 시작했다. 성북구 내에서도 ‘성북마을견문록’이라는 연수형 마을여행 프로그램을 성북구 마을사회적경제센터와 협력하여 개발, 운영하기도 하고 마을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기 위해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활동을 계속할수록 의문이 더해졌다. 마을여행은 과연 마을에 필요할까.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의미에서 초대했거나 혹은 초대하지 않은 손님을 맞아야 하는 걸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마을공동체의 일상을 알리고 그 경험으로 여행자들도 공동체를 꿈꾸게 하는 것이 현재 살고 있는 마을사람들에게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기 때문에 나의 의문과 고민은 깊어만 갔다.

  그러다가 2016년 공정여행국제포럼 조직위에서 마을분과를 운영하게 되면서 지자체의 마을과, 관광과, 마을협의체, 마을공동체와 관련된 분들을 모시고 간담회를 열게 됐고 긴 고민의 실마리가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물론 모든 상황에 딱 들어맞을 명확한 답은 아직도 없다. 다만 절대 하지 말아야할 것과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할 때 비로소 마을여행의 가치와 의미가 명확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를 위한 공정여행으로서의 마을여행


“마을주민, 마을공동체, 관광기업, 정부가 논의하는 마을관광위원회가 있습니다.”


  지난 해 9월에 있었던 국제공정관광포럼에 초대된 인도네시아의 수메시 만갈라세리 카바니투어 대표가 발제 시 들려준 이야기다. 마을관광위원회가 대형 리조트사에서 일하는 현지인들의 채용 비율과 임금 등을 논의·결정하며 소음, 쓰레기, 사생활 침해와 같은 문제들을 논의하고 타협점을 찾는다고 했다. 고민만 하다 끝날 것 같던 문제의 답이 보이는 듯 했다. 답을 내려했던 것이 오류였다. 답은 내가 내는 것이 아니고 모두 같이 논의하고 조율해야 하는 것이었다.

  책임관광을 넘어 공정여행은 그렇게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행복해지는 관광을 꿈꾼다. 그곳에 사는 사람, 찾아 온 관광객, 맞이하는 상인, 여행자를 안내하는 여행사 등 모든 관계자들에게 공정한 관광을 지향한다. 물론 모두가 만족할 수 있는 일은 없다. 하지만 모두를 위한 목적을 가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는 실로 크다. 목적은 모두가 만족하는 것이나 현실적으로는 ‘정말 원치 않는 것은 하지 말자’ 정도의 타협으로 끝날지 모른다. 그래도 그것이 아무 논의 없이 한 쪽 의견만으로 다른 누군가가 불편을 겪거나 고통받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믿는다.

  공정여행으로서의 마을여행은 아직은 갈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우선 공정여행을 이야기하기 전에 관광산업을 받아들일 만한 마을이 얼마나 될지도 의문이다. 오히려 지방에서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도심에서의 마을여행은 아직까지는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많다. 관광산업 측면에서는 시스템과 인프라 구축이 미흡하고, 마을공동체 측면에서는 관광산업으로서의 마을여행에 대한 자발적 의지가 크지 않다보니 그에 대한 악영향 또한 가늠조차 하지 못하는 마을공동체도 많다.



마을탐방, 마을관광 그리고 마을여행


  우리가 통상 마을여행이라 부르고 있는 것은 마을과 관광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기준으로 나눠볼 수 있다. 그 첫 번째로 현재 ‘마을여행’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많이 행해지고 있는, 마을 측면에서의 요소들이 관광 요소보다 많은 ‘마을탐방’이 있다. 마을탐방은 마을공동체의 활동과 그 마을 구석구석에 숨은 이야기들에 관심이 있다. 말 그대로 마을을 둘러보고 학습하고자 하는 의미가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관광 요소 위주의, 소위 말하는 로컬관광으로서의 ‘마을관광’이 있다. 대개 쇼핑, 관광지 관람 위주로 구성된 마을관광은 지방에 비해 도심에서는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았으나 이화동, 서촌, 북촌, 익선동, 서울로 일대 등 점차 도시재생과 맞물려 그 수가 많아지는 추세다. 안타깝게도 마을관광은 마을탐방과 비교해 볼 때 마을공동체가 배제된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마을관광지들은 소비여행이 주를 이루고,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또는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관광과 젠트리피케이션의 합성어로, 지역의 관광지화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과 같은 몸살을 겪는다. 마을공동체 형성과 유지에 매우 큰 영향

을 미치는 주거기능이 사라지고 마을이 상업화되면서 관광지가 된 곳들의 공통적인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마을과 관광 모두의 측면에서 그 요소들을 고루 갖춘, 공정여행으로서의 ‘마을여행’이 있다. 마을공동체가 배제되지 않고 그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공동체의 활동을 나누며, 한편에서는 문화관광자원들을 관람하고 맛있는 음식점과 카페에 들려 한껏 여유를 부리는, 또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적 이익도 마을로 다시 돌아갈 수있는 그런 의미의 마을여행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이와 같은 기준에 부합하는 마을여행은 아직은 많지 않은 것 같다. 필자도 함께 기획에 참여한, 얼마 전에 있었던 문화재청의 ‘성북동 문화재 야행’ 또한 성북동의 문화재들과 다양한 역사문화자원들을 관람하는 마을관광에 가까웠다. 하지만 다양한 관광요소들과 상업지역이 있고 마을공동체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성북동은 마을관광이 아닌 마을여행으로의 발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공정여행으로서의 마을여행, 성북동 문화재 야행


  한양도성, 성락원, 한국가구박물관, 최순우옛집, 이종석 별장, 수연산방 등 정말 많은 문화재들이 즐비한 마을, 성북동. 그 문화재들을 야간에 둘러보고 문인들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성북동 문화재 야행이 지난 5월 19, 20일 양일간 진행됐다. 첫 번째 행사라 많은 아쉬움이 남기도 했지만 큰 가능성을 볼 수 있었던 계기였음은 분명했다. 특히나 앞서 구분한 마을여행으로서 성북동 문화재 야행이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기대가 크다. 만해 한용운의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심우’, 어린이 음악극 ‘깨비깨비돌도깨비’, 조지훈의 시를 모티브로 한 무용음악극 ‘주도18단’ 등 창작된 문화콘텐츠들과 기존에 지역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문화재들은 마을여행의 관광적 요소로 부족함이 없다. 이와 더불어 마을로서의 성북동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마을공동체와 마을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들려줄 수 있다면 훌륭한 마을여행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주체들이 모여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성북동 마을계획단, 성북동 상인회, 성북동 친환경음식문화 자율추진위원회, 주민자치위원회, 마을공동체, 성북문화원, 성북동주민센터, 성북동 소상공인 등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논의할 테이블이 필요하다. 물론 어렵고 지난한 과정일 것이라 짐작하지만 그것만이 공정여행으로서의 마을여행을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한다. 모두가 행복한 여행은 어쩌면 꿈같은 이야기일지 모른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믿기에 부족하고 어렵더라도 한 자리에서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고 상대방을 배려함을 경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지속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야 비로소 마을이라는 공동체가 더욱 건강해지지 않을까.

  나는 성북동이 다른 관광지가 된 마을처럼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5월에 이어 9월에 있을 하반기 성북동 문화재 야행에서부터라도 조금씩 마을여행으로서의 요소를 담아내길 개인적으로 바라는 이유 중 하나다.



낯선 만남의 시작, 마을여행


  공정여행으로서의 마을여행은 아직 많이 낯설다. 서로의 입장차도 있을 것이고 바라는 점도 확연히 다를 것이며 이야기 나누는 것 자체를 원치 않을 수도 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자기 입장만을 고집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렵고 끝없을 것 같은 과정을 겪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누군가의 독단적 결정으로 파생되는 수많은 고민과 고통을 안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은 낯선, 어찌 보면 새로운 개념처럼 들리는 마을여행이 모두에게 공정한 여행이 될 수 있도록 지금부터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만나 이야기할 수 있길 바란다. 그렇게 마을의 주민, 상인, 여행자 그리고 그들을 안내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돕는 행정 모두가 웃으며 낯선 이들을 맞이할 수 있는 마을여행을 꿈꾼다.



김경서는 마을문화기획사를 표방하는 예비사회적기업 ㈜아트버스킹 대표이다. 마을여행사무소 [마을로행]를 함께 운영하고 있다.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9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7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7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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