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호] 성북동 마을여행 - 골목탐방 | 글 장영철
지난주까지 극성이던 미세먼지가 걷히고 봄의 끝자락에 성북동을 다시 찾았다. 다행히도 모처럼 하늘이 파란 본 바탕을 보이며 나를 맞아 주었고, 적당히 떠있는 구름은 근래 30도 가까이 오르며 여름을 재촉하던 날씨를 본래 봄의 자리로 되돌려 놓았다. 덕분에 성북동 나들이의 시작이 한결 가벼워졌다.
골목 탐방의 처음은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시작한다. 출구에는 언제 들어섰는지 역사문화마을 성북동이란 입간판이 서 있다. 꽤 자세하게 성북동을 소개하고 있어 성북동이 초행이라면 한번 읽어보고 걸음을 옮기는 것이 좋겠다.
오늘 걸어보고자 하는 골목길은 어느덧 성북동의 명물이 되어버린 나폴레옹 제과점을 시작으로 혜화문을 거쳐 혜성교회, 경신중·고등학교를 지나 한양도성 성곽길을 따라 걷다가 이어서 성북동 작은갤러리를 거쳐 최순우옛집을 끝으로 성북동 메인도로를 따라 내려오는 코스이다.
아는 분들이 많지 않을 것 같아 설명하자면, 원래 나폴레옹 제과점은 복개된 성북천 위 삼선시장 상가건물에 자리하고 있었으나 성북천이 복원되면서 지금의 성북동 자리로 이전하여 세상에 다시 알려지게 되었다. 물론 이전하기 전 나폴레옹 제과점의 빵맛도 지금보다 못하지 않았다.
조금 복잡하지만 나폴레옹 제과점을 거쳐 혜화문으로 가는 길을 택한것은 이 골목이 현 시점의 성북동에서 가장 빠르게 변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고, 골목골목 특색 있는 카페와 맛집들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전에는 앵두나무가 많아 앵두마을이란 애칭으로 불려 왔는데 현재는 앵두나무를 심은 집을 찾아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앵두나무가 심어져 있었다면 지금쯤 하얀 앵두꽃은 떨어지고 초록의 앵두가 오월의 햇살을 받으며 붉게 익어갈 텐데 말이다.
제과점 뒷골목을 통해 혜화문까지 도착했다면 어렵지 않게 한양도성의 성곽을 발견할 수 있다. 성곽의 목적이 우리가 생각하는 목적과 다르지 않기에 한양도성도 적들의 동선을 잘 내려다 볼 수 있도록 산의 능선이나 언덕에 세워졌다. 오늘 탐방은 탁 트인 전망을 보장하는 그 언덕길을 포함하는데, 성곽 왼쪽을 걷는 동안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언덕길 아래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과 그 너머 건너편 언덕 능선에 자리한 집들까지 성북동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고 왔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혜화문에 도착해 다시 오른쪽으로 걸어나가다 보면 한양도성 성곽길을 만나게 된다. 혜화문과 성곽은 생뚱맞게 단절되어 전혀 이어져 있었을 것 같지 않지만, 아랑곳 않고 성곽이 뻗어 나간 방향으로 따라 걸으면 된다. 걷다가 발걸음을 잠시 멈추면 자연석과 인공석을 교묘히 다듬어 쌓은 600년 역사의 한양도성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이 구간은 옛 도성의 흔적과 복원한 성곽이 어우려져 묘한 이질감과 어우려짐을 동시에 느낄 수 있고, 5월이 주는 선물인지 석축 사이사이 노란 들꽃까지 덤으로 볼 수 있어 즐거움을 준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성곽을 기준으로 안쪽은 종로구, 성곽 밖은 성북구로 나누어진다. 성곽 아래로 성북동을 내려다보면 검은 기와를 얻은 낡은 한옥이 밀집되어 있는데 현재 한옥마을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몇 년 사이 낡은 한옥들은 빠르게 헐리고 빌라나 상가 건물로 개축되면서 성북동의 정취를 상징하던 한옥이 줄어드는 것을 보는 아쉬움도 함께 느끼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여유와 멋을 주는 한옥이 한 번쯤은 살아보고 싶은 집이겠지만, 실제 거주하며 살아야 하는 주민들에게는 불편하고 경제적 이익을 보장하지 못하는 재산일 수도 있기에 성북동의 한옥마을이 보존되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든다. 한옥이라는 부동산을 소유한 개인의 입장과 그 한옥들이 지역과 어우러져 형성하는 경관 자원과 같은 공공의 가치가, 함께 존중받고 지켜질 수 있는 효과적인 대책이 서둘
러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함께 가져 본다.
성곽을 따라 계속 걷다보면 당연히 있어야할 성곽은 끊기고 밑둥만 남은 성곽에 걸쳐 누군가의 집이 들어서 있는가 하면, 성곽의 일부가 담벼락이나 텃밭의 경계로 사용된 집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100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 왕조와 왕권을 지키던 도성이 후에는 백성의 편이 되어 그들의 삶 안쪽으로 파고든 것이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성곽이 온전하던 때에는 혜화문 안쪽은 양반을 중심으로 한 왕과 고관들의 삶의 터전이었고, 혜화문 밖 성북동은 생포목을 삶아 표백하는 마전과 훈조라는 메주를 쑤는 일을 하는 양민들의 터전이었다. 그렇게 신분에 따라 삶의 터전을 구분 짓던 성곽이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낮아져 그 경계를 기꺼이 내어주면서 백성과 서민들의 집터가 되고 텃밭의 바람막이가 되어주었다. 본래 경계를 치는 목적이었던 성곽이 공간을 연결해 주는 기능을 하게 되었으니 사물의 역할이 이렇게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음도 배우게 된다.
계속해 걷다보면 곧게 뻗은 성곽에서 빗살처럼 아랫동네로 나 있는 계단을 만나게 된다. 실제로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은 온전히 동네 주민뿐일 것이다. 굳이 좁은 계단을 통해 이 길을 오를 이유가 이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십 차례 이곳을 걸어보았지만 나 또한 이 골목 계단을 통해 아래에서 위로, 혹은 위에서 아래로 관통하여 걸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여유가 있다면 아래로 나 있는 많은 길 중에 마음에 드는 골목 계단길을 하나 골라서 한번쯤 윗동네와 아랫동네를 관통해 보는 것도 재미난 경험이 될 것이다.
경신중·고등학교가 보이기 시작한다면 학교의 경계를 따라 점점 좁아지는 골목을 지나 혜화동과 성북동을 이어주는 도로와 마주친다. 성곽이 온전했다면 있지 않았을 도로이지만 이를 경계로 아랫동네는 마전터, 윗동네는 메주를 쑤던 북정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골목의 끝을 빠져 나와서 큰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 내려오다 보면 시민문화유산 1호로 보존된 혜곡 최순우 선생의 근대 한옥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이 골목 저 골목 조금 발품을 팔아야 혜곡 선생의 공간으로 초대받을 수 있을 것이다. 최순우옛집을 마지막으로 골목 탐방을 마무리 할 때쯤 눈과 마음으로만 점 찍어두고 아쉽게 지나쳐 온 성북의 맛집 한곳으로 들어가 성북동의 맛도 품어보면 더 없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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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철은 성북동에 대해 관심이 많은 직장인으로, 본지의 편집위원이기도 하다. 그동안 성북동을 공부하는 모임에 함께 하기도 했으며, 성북동이 이웃들과 정답게 살아가는 행복한 성곽마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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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9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7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7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