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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Dec 11. 2017

성북동의 가로수

[5호] 특별 기고│글 전영문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인간의 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함에 따라 도시화, 산업화가 이루어지게 되면서 인간은 자연생태계를 벗어나 인공생태계를 형성하여 왔다. 도시생태계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가장 큰 규모의 인공생태계로서 자립할 수 있는 자연생태계와는 달리 비생물적 요소들이 주로 분포하는 곳이다. 도시생태계 속에서 가로수는 생명적 공간으로 기능하는 대표적인 생물적 요소라 할 수 있다. 특히 생물적요소가 빈약한 도심지 내에서 생태계서비스(생태계가 인간에게 주는 서비스: 기후안정, 공기정화, 토양침식 방지 등) 기능뿐만

아니라 도시 녹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선상 연결 녹지축으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가로수(街路樹, street tree)는 시가 및 강변지역 등의 가로와 노변에 줄지어 심은 나무를 가리키는 말로 법적으로는 도로의 부속물로 규정되어 있다. 가로수의 역사는 서양의 경우 고대 이집트를 시작으로 그리스, 중동지역 등에서 무화과나무, 플라타너스(양버즘나무), 아몬드 등이, 동양에서는 중국 주나라, 진나라, 당나라 등에서 복사나무(복숭아나무), 자두나무, 소나무, 버드나무 등이 식재되었다는 기록들이 전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로수는 조선조 초에 각 역로(驛路)의 거리별(10里 또는 30里)로 이정표를 나타내는 나무를 심도록 하는 후수(堠樹)가 그 시작이었으며, 1453년(단종 1년)에는 서울 교외 도로 양편에 소나무, 배나무, 밤나무, 회나무, 버드나무 등을 심고 보호하도록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정조 때에는 수원 북문, 즉 장안문에서 북쪽으로 향한 도로 양변에 나무를 심게 하였는데 그 때 가로수로 식재된 소나무들이 현재 일부 남아 있다. 한편 우리나라에 근대적인 의미의 가로수가 심어지기 시작한 시기는 1895년(고종 32년) 내무아문(조선 말기 내무행정을 관장하던 부서)에서 도로 좌우에 나무를 심도록 각 도에 공문서를 보낸 것에서부터 유래하며, 신작로라는 이름의 넓은 길이 뚫리면서 가로수에 적합한 양버즘나무, 양버들, 미루나무, 튤립나무 등이 수입되어 식재되기 시작하였다.

  가로수는 가로 및 도시의 경관을 아름답게 하는 효과를 비롯하여 여름철 쾌적한 그늘을 제공함으로서 보행자에게 신선함 제공, 태양복사열 흡수에 의한 기온 조절 및 도시 기후 조절 효과, 수관의 가지와 잎이 먼지와 분진을 흡착하고 유해가스를 흡수하여 대기오염을 정화, 토양안정화에 따른 토양 침식 방지, 그리고 방음 효과 등에 대한 기능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야생동물의 서식 및 이동통로로서 그 역할이 중요시 되고 있다.

  가로수의 수종 선정은 위의 여러 기능들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사용가치가 높은 수종을 선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국가나 지역별 기후와 입지환경의 차이를 우선하여 고려하여야 한다. 대륙별로 식재되는 주요 가로수종으로는 아시아의 경우 중국과 일본에서는 은행나무, 버드나무류, 회화나무, 녹나무, 플라타너스, 단풍나무류, 칠엽수 등이, 유럽에서는 플라타너스, 피나무류, 포플러류, 칠엽수 등이, 북미지역에서는 단풍나무류와 플라타너스가, 그리고 남미와 오세아니아에서는 야자나무류와 유칼리류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식재되고 있는 가로수로는 칠엽수(마로니에), 은행나무, 플라타너스(버즘나무, 양버즘나무), 백합나무(튤립나무, 목백합) 등이다.

  우리나라 도시 가로수는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서울의 경우도 이 두 수종의 비율이 90%에 육박하는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그 밖에 벚나무, 히말리야시다, 수양버들, 은수원 사시나무, 포플러, 느티나무, 메타세쿼이아 등이 주요 식재종들이다.


  성북동지역의 가로수는 성북동의 주요 도로인 성북로(한성대입구역~우정의 공원)을 따라 형성된 도로의 중앙분리대와 인도변에 주로 식재되어 있다. 중앙분리대의 가로수는 한성대입구역 사거리에서 성북로길 초입(신한은행 성북동지점)에 이르는 0.7km의 거리에 분포한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종로구 혜화동과 인접하여 있는 한성대입구역 사거리에서 성북동 주민 센터 사이의 왕복 4차선 도로의 중앙분리대에는 수고 14~16m 범위의 플라타너스가 식재되어 있다.

  4~5월에 본 플라타너스는 가지를 전지당하여 앙상한 줄기만 남아 많이 안쓰러웠는데 어느새 탄탄해 보이는 근육질 몸매에 녹음이 더해져 도로 한가운데를 도열하여 늘어서 있는 모습이 늠름해 보인다.

  플라타너스에는 아시아산과 미국산, 그리고 잡종플라타너스인 런던 플라타너스가 있으며, 역사적으로 서양 가로수의 시초였으나 지금은 동양을 포함하여 전 세계적으로 가장 폭 넓게 식재되고 있는 가로수의 왕으로 되어 있는 나무이다. 서울에서도 가장 많이 식재되어 있는 플라타너스는 줄기가 굵고 강인하여 위로 올라가서 잔가지가 여러 개로 갈라진다. 그리고 수관이 둥글고 커서 녹음으로서의 효과, 소음을 약화시키는 효과, 그리고 먼지를 잡아 두는 효과가 매우 크다. 영국의 수도 런던은 플라타너스 가로수가 유명하다. 겨울에 잎이 지고 난후

방울 같은 열매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은 우리의 동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반면 성북동 주민 센터에서 신한은행 성북동지점 사이에 있는 중앙 분리대에는 복층구조의 형태로 식물들이 식재되어 있다. 상층부에는 수고 7~8m 범위인 느티나무, 중층부에는 수고 3~5m 범위의 감나무, 그리고 수고 1m 이내의 하층부에는 회양목을 중심으로 남천과 철쭉이 띄엄띄엄 분포한다. 한편 하층부 식재 수종들 사이사이에는 강아지풀, 개망초, 메꽃, 가중나무, 명아주, 원추리, 왕씀배, 서양민들레, 애기똥풀, 괭이밥, 쑥, 꽃마리 등이 “잡초”로 취급되어 언제 뽑힐지 모르는 상황 하에서 가슴을 졸이며 잠시 터를 잡아 살고 있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나무이기도 한 느티나무는 귀목, 규목, 괴목, 정자나무 등 지방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양한데, 은행나무와 함께 1,000여 년을 헤아리는 노거수들이 전국적으로 많이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마을의 동구 밖에는 정자목(亭子木)으로 한두 그루 거수(巨樹)가 심어져 있는데 사람들은 신목(神木), 영목(靈木)으로 받들어 숭배하고 신성시하였다. 수형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풍부한 녹음으로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고 가을철에는 황금색이 나는 노란색이나 밝은 붉은색의 아름다운 단풍이 들어 공원수, 가로수, 녹음수, 기념수 등으로 즐겨 심고 있으나 대기오염에 취약해 낙엽이 조기에 지는 단점이 있다.

  한성대입구역과 성북동 주민 센터 사이 도로변과 인접한 성북파출소 성북1치안센터 앞에는 수령 약 61년, 수고 8~9m 범위로 추정되는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이 1957년 4월 5일 식목일을 기념하여 3~4년생의 느티나무 묘목을 전해주어 식재된 것으로 현재 “성북구의 아름다운 나무”로 선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감나무는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양권에만 있는 온대 과수로서 밤, 대추와 함께 빠뜨릴 수 없는 제수(祭需) 품목이며 풋감은 염색용, 홍시, 곶감, 잎, 감꼭지 등은 민속식 뿐만 아니라 감미료와 약용, 그리고 재목은 고급 가구재의 원료로 쓰이고 있는 등 우리 생활 속에 깊이 관여되어 있다. 감나무는 가을이 되면 붉은 감 열매와 붉은색에 노란색이 섞인 단풍이 풍성하여 감 주산지인 상주시, 청도군, 영동군 뿐만 아니라 인천시에서도 감나무 가로수 길들이 조성되어 있다. 성북동에서도 성북구의 대표나무인 감나무가 가로수로 더 많이 식재되어 까치밥의 추억과 가을의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게 되길 기대해 본다.


  성북동지역에는 넓은 인도에 가로수가 심어져 있는 색다른 길이 있다. 성북동주민센터 도로 맞은편 성북로 10길 초입부에 위치한 “참나무닭나라” 가게에서부터 시작되는 인도는 성북로 14길이 시작되는 “성터갈비집”까지 2차선 도로만큼이나 넓어 은행나무, 주목, 느티나무, 소나무 등이 식재되어 있으며 부분적으로 나무를 둘러싸고 나무 벤치가 구비되어 있어 도심의 작은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을 걸을 때면 왠지 모르게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발걸음이 편안함을 느낀다. 그것은 아마도 넓은 인도와 가로수가 주는 넉넉함이 서려있어서이지 않을까? 비록 공간의 길이는 길지 않지만 유럽의 인도에서나 접할 수 있는 이국적인 느낌이 들어서인지 인근의 술집들에는 가게 안에 빈자리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인도의 가로수를 벗 삼아 술잔 기울이기를 기꺼이 즐겨 한다.

  나 또한 6월 중순의 늦은 밤에 막걸리 잔을 앞에 놓고 식당 밖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빗줄기의 소리와 그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서 있는 느티나무 가로수의 모습을 한동안 아무런 상념 없이 바라보았던 한때가 있었다.

식당 ‘디미방’의 사장님은 성북동의 1경에 포함될 수 있는 경관이라고 농담 삼아 말씀하시고 나 또한 동조하며 술잔을 기울였던 모습은 지금도 내 마음 한 구석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성북초교 삼거리 이후에서부터 좁아진 도로변에는 가로수가 없다. 다만 도로 양쪽에 늘어선 집들에 심은 소나무, 감나무, 매실나무, 향나무, 황매화, 라일락, 목련, 잣나무 등의 조경수들이 가로수 몫을 하고 있을 뿐이다. 성북구립미술관을 지나 쌍다리 앞에 이르면 가로수가 허한 길들을 보충해 주려는 듯 녹음으로 가득한 북악산의 전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함을 느끼면서 이러한 감정이 우리 주변에서 일상으로 접할 수 있게 되길 바래본다. 길가에서 자주 만나게 되는 콘크리트나 벽돌담과 같은 인공물들에 마삭줄, 등나무, 담쟁이덩굴, 능소화, 나팔꽃, 수세미오이 등 덩굴성 식물로 초록의 옷을 입히면 어떨까? 또한 가로수가 없는 지역에는 키가 작은 나무와 화초류를 식재할 수 있는 통나무 화분들을 설치하거나 집 앞에 작은 화분 하나 내 놓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성북동은 북악산 동북쪽 사면으로 흘러내린 골짜기에 자리 잡은 고을로서 성곽 북쪽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선시대에는 군사조직인 어영청의 북둔(北屯)이 주둔하였던 곳으로 북둔의 복숭아꽃[北屯桃花]은 예로부터 꼽아주던 경승의 하나로 지금은 복사길이란 이름이 남아 전해오고 있을 뿐이다.

  복사나무(복숭아나무)는 잎이 지는 작은키나무로서 중국이 원산지인 과수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신선이 먹는 선과(仙果) 또는 악기(惡氣)를 쫓는 주술적인 나무로 신성시하였다. 우리나라에 복사나무가 도입된 것은 약 2,000년 전으로 보고 있으며 삼국시대 이후 조선왕조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재래 과일나무로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복사나무를 보는 우리의 민속 또한 중국의 영향을 받아 귀신을 물리쳐 주는 신목(神木)으로 믿어오고 있다. 가로수로서 복사나무는 고대 중국의 주나라시대부터 언급이 되고 있어 동양에서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가로수는 매연이나 배기가스에 노출되는 정도가 심하고 생육에 필요한 빛, 수분, 양분 등이 부족하기 쉬운 입지에 식재되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수종을 선정할 때는 위의 내용을 포함하여 수형, 수종의 크기, 잎의 크기와 색깔, 그리고 지역적, 역사적 특성 등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특히 성북동은 역사문화지구로 지정되어 있는 곳으로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향토 수종의 식재를 고려해 봄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는 성북동에 산재한 한옥들과 인접한 북악산과 조화를 이뤄 지역의 주민들 뿐만 아니라 성북동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신선함과 친근감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가로수를 선정하는데는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고려해야 할 내용들이 많다. 특히 점점 심해지는 도시의 대기오염에 대해 어느 정도 내성이 있는지를 우선적으로 평가하게 된다. 복사나무와 감나무는 성북동에서 역사적, 지역적, 전통적 특색을 가지고 있으나 대기오염에 취약한 수종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다행이도 북악산과 인접하여 있는 성북동지역은 공기청정도가 서울에서 최고 수준인 곳으로 측정된 바 있어 이들 수종들을 가로수로 검토하거나 확대하여 식재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로수는 딱딱하고 단조로운 도시의 일상에서 지루해지기 쉬운 도시민들에게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가로수는 온 몸으로 태양빛을 막아주고 아스팔트 도로 위의 이글거리는 열기를 받아주며 도시인들에게 청량감과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도심의 에어컨이다. 그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애정어린 눈길을 보내 주고 관심을 가져 주자. 그리고 성북동의 멋을 더할 수 있는 특색 있는 가로수길을 함께 꿈꿔 보자. 봄에 연분홍의 아름다운 복사꽃이 피고, 한 여름 연붉은 색깔의 탐스런 복숭아열매가 달리는 복사나무 가로수길을 따라 걸으며 도화골 계류변에서 “삼배통대도(三杯通大道) 일두합자연(一斗合自然)”이라며 자연과 벗삼아 풍류를 즐겼던 옛 선인들의 정취를 아련히 떠올려 볼 수 있는 때가 오기를….



전영문은 식물생태학을 전공하였으며 송광생태연구소를 이끌고 있다. 주로 우리나라의 아고산대가 분포하는 지역(설악산, 덕유산, 지리산, 한라산)을 대상으로 식물군락(구상나무, 분비나무, 가문비나무 등)의 생로병사(生老病死),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 그리고 보존을 위한 조사와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5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5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5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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