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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북 Dec 12. 2017

홍대부고 언덕 마을의 일상

[5호· 특집] 골목 이야기 3│글 김기민 / 그림·사진 김철우

  북악산 자락에서 갈라져 나온 두 개의 언덕과 그 사이의 골짜기로 구성된 성북동에서의 삶을 이야기할 때는 가파른 오르막을 매일같이 오르내리는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성북동에서의 오래된 삶이란 대부분 그 언덕 위에 세워져 있으므로 당신이 하늘 가까운 언덕 꼭대기로 오르면 오를수록 그 높이에 비례하는 긴 세월동안 이 동네에서 살아왔던 분들을 만나기란 어렵지가 않다. 홍대부고 후문 언덕에는 삼십 년은 예사이고 그보다 더 오랜 시간, 삶의 상당 부분을 하늘 아래 가파른 땅에서 보낸 분들의 단단한 삶이 북악산 자락 밑에 움트고 있는 바위처럼 견고히 자리 잡고 있다. 그 동네에서 몇 년을 살다 노모의 고생을 덜어드리기 위해 평지로 내려온 김철우 선생님과 함께 젊게는 환갑을 넘기고 많게는 여든도 넘긴 어르신들도 매일같이 오르내리는 언덕 위 동네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으러 어느 토요일 늦은 오후 언덕을 올랐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느라 가슴은 쿵쾅쿵쾅 뛰고 땀이 삐질삐질 흘렀지만 올라온 사람이 그러든 말든 늘 그 자리 그곳에 가만히 있을 뿐인 언덕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고 모든 것이 태평스러웠다. 마을의 공터 한 귀퉁이에 놓인 원통 위로 1.5리터 플라스틱 페트병 소주에 생선과 콩 통조림을 안주 삼아 소박한 술상이 차려졌고, 그 주위로 모여 앉은 어르신들은 옛 이웃과 처음 보는 이웃을 반가이 맞아주셨다. 그 환대의 분위기 속에서 술잔과 젓가락 몇 개 더 놓는 건 일도 아니었다.

  공터는 동네에 들어오려면 지나가지 않을 수 없는 길목이라 그곳에 앉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짧은 시간 동안 생각보다 많은 분들을 맞이하고 또 환송했다. 마을 아래 평지에서 함께 택시를 타고 언덕에 다다른 주민들이 공터로 마실 나온 주민들과 반갑게 인사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풍경은 그곳만의 고유한 모습인 동시에 마을이란 정체성을 갖는 동네라면 어디를 가도 만나볼 수 있을 것 같은 익숙한 모습이기도 했다. 내가 너를 알고 네가 나를 알며 우리가 서로 아는 그 자리에는 비록 두서는 없었지만 놓쳐선 안 될 맥락이 있었다.



동네살이 : 봐 줄 수 없는 것



  어르신들에게 소박한 음식은 얼마든지 봐 줄 수 있지만 성의 없는 음식은 봐줄 수 없다. 생선과 콩 통조림에 두부 한 모로 차린 술상은 정감 있지만 코가 하나도 시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달기까지 한 고추냉이 소스로 버무려진 양장피는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단무지와 양파, 춘장, 그리고 서비스로 곁들여진 군만두 찍어먹을 양념장조차 빼먹은 건 도저히 봐줄라 해도 봐줄 수가 없다. 동네 사람 상대로 이렇게 장사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어르신들이 가장 봐줄 수 없는 건 이렇게 단 양장피는 양장피라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어르신들을 향해 우리 가게는 유명하다며, 사람들이 멀리서 찾아와서 먹는 맛집이라며 응수하는 음식점의 태도다. 정말로 그곳이 유명한 맛집일 수도 있고, 그 달큰한 양장피 맛에 환호하는 손님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코가 시큰할 만큼 얼얼한 고추냉이의 매운맛을 기대하는 어르신들의 기호가 대중적이지 않은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굳이 그 맛을 못내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빈말이라도 다음엔 맛나게 해드리겠다며 송구스러운 척 할 수도 있는 게 이번 한 번 보고 말 게 아닌 동네 장사의 수완이 아닐까. 그것도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성북동 곳곳에 뿌려진, 어디 있는지도 모를 외지 음식점의 판촉 할인 광고 전단지를 애써 무시하고 동네 가게에서 시켜먹어야 한다며 할인 행사 하는 음식점에 비해 가격도 더 비싼데 개의치 않고 부러 주문을 넣은 동네 주민의 입장에선 그게 못내 아쉽고 섭섭한 것이다. 그 말 한마디에서 보이는 자세가 뻔히 동네 사는 사람인 걸 알면서 쉽게 장사하려는 것만 같이 여겨져 야속한 것이다. 그 마음을 음식점 주인이 알지 못할 수도 있는 일이고,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 마음을 하나하나 다 헤아리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걸 어르신들도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섭섭하고 야속한 마음이 들어 버럭하는 마음을 끝내 참지 못하는 것이다. 뭘 또 그렇게까지 할까 싶다가도 끝내 봐줄 수 없었던, 봐 넘기지 않았던 어르신들의 그 마음을 나는 한편으론 이해하고 말았다.



동네살이 : 봐줄 수 있는 것


  초저녁부터 이미 거나하게 취기가 오른 어르신이 계셨다. 밖에서 헤매고 계신 것을 보고 동네로 들어오던 다른 어르신이 택시에 태워 모셔 왔는데, 흥에 겨우셨는지 아니면 동네에서 못 보던 사람을 만나 반가우셨는지 그렇게 노래를 부르고 또 부르셨다. 어렸을 적 꿈이 가수였으나 6·25 전쟁이 터지면서 가족을 모두 잃고 평생 꿈을 가슴에 묻고 살았다는 (동석했던 마을 어르신들께선 이미 익히 듣고 또 들어 거의 외울 정도가 된) 이야기를 나는 어르신 옆에 앉아 가만히 듣고 또 들었다. 동네 분들은 다들 얼른 집에 들어가서 쉬라고 권했지만 듣지 않으셨고, 배달 주문했던 양장피가 도착한 뒤 사람이 늘어 좀 더 넓은 테이블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계속해서 노래를 불러주셨고 소싯적 꿈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배달된 양장피가 입에 맞지 않다고 하자 한 어머님은 집에서 꽃게탕과 우거지된장무침, 밥을 가져와 식탁을 풍성히 채워주셨고 젊으니까 많이 먹으라며 특별히 고봉밥을 퍼주셔서 첫 술을 떴는데 옮긴 자리로 함께 오지 않고 혼자 계셨던 어르신께서 (더 이상 아무도 당신의 노래와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 서운하셨는지) 성큼 다가와 역정을 내며 밥상을 뒤엎는데,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아침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그 상황에 나는 몹시 당황스러웠을 법도 한데 신통방통하게도 아무렇지 않았다. 동석했던 다른 어르신께서 젊은 사람 앉혀 놓고 험한 꼴 보였다며 송구스러워 하셨지만 참 희한하게도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나는 마을잡지에 실을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밖에서 찾아온 어느 청년이었다면, 뒤엎어진 밥상 옆에서 밥과 국, 반찬을 뒤집어 쓴 다음에는 왠지 나도 이 동네의 이웃이 된 것처럼 거리감이 확 좁혀졌던 까닭이다.

  처음 가보는 동네에서 생판 모르는 남으로부터 이런 일을 겪었다면 아마 나는 몹시 화가 나지 않았을까? 처음 뵙고 인사드린 나도 이럴진대 수십 년을 한 동네에서 이웃으로 부대끼며 살아온 마을 주민들은 말해 뭐할까. 당장은 화도 나겠지만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내일이 오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또 마주할 것이다.

  결국은 거리와 시간, 그리고 관계다. 얼마나 가까운 곳에서 서로 마주하며 오래도록 함께 해왔느냐가 마을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깊이를 가늠하여 보여준다. 멀면 멀수록, 함께 나눈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줄어들고 그러려니 하고 넘길 수 있는 여지가 좁아진다.

  평생을 함께 사는 부부와 가족이 때때로 서로를 이해할 수 없어 부딪히고 갈등하는데 주민들은 옆집, 건너집 사는 이웃들과 한 동네 살면서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얼마나 많았을까? 어쩌면 서로 들어맞는 것보단 맞지 않는 게 더 많았을 그 오랜 세월 볼 거 못 볼 거 다 봐가며 동고동락해온 이웃들은 가족들의 관계가 그러하듯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화가 나기도 하고 언성을 높일 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쌓인 세월과 정 앞에서 부부싸움이 칼로 물 베기인 것처럼 함께 만들어 온 역사의 폭과 깊이 앞에서 쉽게 허물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이 너무나 자명해 보였다.




공터 : 마을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


  홍대부고 언덕 마을은 위로는 대사관로가 있지만 도로와 마을 사이를 산비탈이 가로막아 차량 통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마을과 바깥세상은 성북로에서 갈라져 언덕까지 이어진 길을 통해 들고 남이 숱하게 반복되어 왔다. 덕분에 성북로8 다길의 끝은 주차장을 겸한 마을의 공터가 되었고, 그곳에서 주민들은 자투리땅을 이용해 텃밭을 가꿔 농작물들을 기르기도 했으며, 공동주차장으로 쓰기도 하고, 작은 테이블과 의자에 둘러앉아 술잔을 주고받는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별 거 없는 빈 공간이지만 별 게 없기에 주민 누구나 부담 없이 오고 가며 소일하고 담소 나누며 일상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편안한 공간이 되었음을 공터가 있는 마을에서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은 과연 알까? 알 수 있을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비어있는 공간으로 모여들어 이야기를 나누며 새로운 소식을 전하거나 듣고, 그 대화 속에서 상호간의 잉여나 부족을 확인하면서 때때로 서로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기도 했다. 광장, 시장, 공원 따위의 것들은 공터에서 알음알음 일어났던 활동들이 확장되면서 나타난, 오랜 시간에 걸쳐 꾸준한 반복을 통해 만들어진 사회적인 결과물이다.

  유감스럽게도 괴물 같은 도시라 비난받는 서울이란 도시 공간 내에서 대단위 아파트 단지화가 부단히 진행되어왔고, 자연 발생적 공터들은 마치 원래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완벽하게 소거되거나 쉼터나 놀이터 등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의 생활이 축적되지 않은 임시적 공간들로 대체됨에 따라 지금의 광장과 시장, 공원은 인위적으로 조성된 곳들이 태반이다. 게다가 그 대체된 공간들에 역사가 채 쌓이기도 전에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거나 떠밀려 쫓겨나고, 심지어 그 임시적 공간마저 얼마 가지 않아 또 다른 새로운 공간으로 대체되기를 반복하는 도시에서 공터의 본래적 가치와 의미를 찾기란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것 마냥 뜬금없고 바늘구멍에 낙타를 밀어 넣는 것처럼 힘겨운 일이 되고 말았다.

  물이 굽이쳐 흐르다가도 때때로 고이며 천천히 흐르듯, 사람이 살고 지나가는 곳 또한 그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곳들이 있는가 하면 자연스레 멈춰 서서 쉬어 가는 곳이 있기 마련이지만 서울의 공터들은 대개 생뚱맞고 뜨악하여 왜 여기서 멈춰야 하는지 알기란 쉽지가 않다. 일찍이 사람들은 제아무리 노는 공간이 널려 있어도 푸근한 맛이 없는 곳에서 쉬이 늘어지지 못했고, 여기서 쉬라고 명해진 곳에서 따로 만날 약속을 잡아 계획적으로 치밀하게 조직되는 만남들은 공터의 본질에 반할 수밖에 없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것들이 변함에 따라 과거와 현재의 세상이 확연히 달라졌으므로 그 다름을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한 이치이겠지만 그 본질에 역행하여 너와 나, 우리들의 머무름이 자연스레 일어나지 않는 곳을 과연 우리는 공터라 부를 수 있을지, 그리고 그런 공터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주택들의 집합체를 우리는 마을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홍대부고 언덕 마을과 그곳의 중심에 자리한 공터는 ‘그 때가 참 좋았지’와 같이 단순히 옛날 옛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공간으로 그 의미가 한정되지 않는다. 오랜 거주, 그 오랜 시간 속에서 얽히고 설키며 엮이고 꼬인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그 공터와 단단히 결합되어 있고, 그것은 그 어떤 무엇으로도 갈음할 수 없다. 그 대체 불가능성이야말로 공터의 진정한 의미이자 세상이 변하고 천지가 뒤바뀌어도 달라지지 않을 마을의 본질이 아닐까?



# 곰실마트 (성북로8길 14, ☏765-7253)

  홍대부고 언덕 마을로 올라가는 오르막 초입에 위치한 작은 동네슈퍼. 이곳을 지나면 더 이상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이 없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마을에서 가장 가까운 가게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생활에 적잖은 편의를 제공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주민들에게 곰실마트의 배송 서비스는 삶에 도움이 되고 보탬이 된다.


* 근처에 좀 더 큰 규모의 슈퍼마켓으로는 삼성할인마트가 있고, 이곳 또한 배송 서비스가 제공된다. 

성북로6길 26, ☏ 02)742-8811



# 허물어져 가는 주택들

  재개발 움직임이 가시화된 이래 오랜 세월 방치된 홍대 부고 언덕마을의 주택들은 제대로 보수되거나 관리되지 않아 노후도가 몹시 심해 거주민들의 안전이 우려된다. 방치된 빈집의 증가는 주거지역의 슬럼화를 가속화시키고 있으며, 도시가스 설치되지 않았거나 상하수도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구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불편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김기민은 ‘성북동천’의 총무이며, 마을 활동가다. 성북동을 사랑하고, 성북동에서 자신의 꿈을 펼쳐낼 날을 꿈꾸는 성북동 주민이기도 하다. 한때 운영하던 카페 ‘티티카카’를 접고, 지금은 그 공간을 ‘동네공간’이라는 마을 공간으로 운영중이다. 다음 호부터 본지 편집위원으로 함께 마을 잡지를 만들어갈 계획이다.


김철우는 화가이며 ‘성북동천’ 대표이다. 마을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마을이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소중한 공간이기를 꿈꾸는 사람이다.


※ <성북동 사람들의 마을 이야기> 5호는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2015 마을미디어 활성화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지원받아 간행되었습니다. 소개된 글은 2015년도에 쓰여져 잡지에 실렸으며, 2017 동 사업을 통해 웹진으로 발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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