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에세이
누군가 그랬다. 진짜 인연은 보이지 않는 붉은 실로 이어져 있다고.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나랑 500일 동안 함께 살고 있는 그와 나는 얼마나 굵고 붉은 실로 연결되어 있는 것일까.
2019년 7월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녕하세요. 새로 입사한 PD님이시죠? 저는..."이라며 내가 그에게 명함을 건넸던 순간 붉은 실이 꿈틀 됐던 것일까. 당당한 어쩌면 당돌한 나의 이미지가 인상 깊었다고 그는 말한다. 비즈니스 관계로 만나 3개월 만에 연인이 되었고, 4년째가 되던 날 부부가 되었다.
넓은 평야의 나와 넓은 바다의 그는 정반대였다. 열정적인 사랑 뒤에는 다툼도 있었고, 기다림도 있었다. 4년 동안 하나둘씩 맞춰가고 이해하고 포기하기도 하면서 붉은 실은 오밀조밀 잘 꼬아져 굵어지고 있었나 보다. 붉은 실을 살포시 당기니 어느새 우리는 웨딩홀과 드레스를 고르고 있었고, 한번 더 당기니 신혼집과 혼수를 장만하고 있었다. 또 한 번 힘껏 당기니 우리 둘이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걷고 있었다. 그렇게 500일이 지났다.
내가 그와 결혼을 결심한 이유를 생각해 보자면,
밥을 먹을 때 항상 나를 먼저 챙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면 무조건 나는 두 입을 먹고 그는 한 입을 먹었다. 밖에서 맛있는 것을 먹게 되면 내 것을 꼭 챙겨 오고, 맛집을 알게 되면 항상 데려가는 마음이 예뻤다. 그만의 특유한 섬세함, 나에게 없는 섬세함이라서 좋았다.
그는 정말 웃기다. 개그코드가 잘 맞고 둘 다 상황극에 능하다. 나만의 개그콘서트가 펼쳐진달까. 40대의 아재 개그가 나에게 통했다. 무슨 개그를 쳐도 다 받아내는 나도 대단하다. 얼굴만 예뻤어도 연예인을 하는 건데 말이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굶기지 않겠구나'하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판단에 있어서 이성적이고 정신력이 강하다. 내가 배우고 싶은 점이기도 하다. 세상에 힘들지 않은 일이야 없겠지만 PD라는 직군 자체가 업무 강도가 세지 않은가. 나보다 인생 선배로서의 경력도 무시하지 못한다.
그와 나는 취향, 취미가 잘 맞는다. 둘 다 어렸을 때부터 예체능을 중심으로 커온지라 아무래도 서로의 감성을 이해한다. 스포츠, 미술, 사진, 여행이 우리 부부를 대표하는 키워드가 아닐까. 그를 만나기 전, 오래전부터 품어온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나는 글을 쓰고, 남편은 사진을 찍어서 에세이집을 출간하는 것이었다. 아마 곧 그 버킷리스트를 달성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이유들은 사랑을 기반으로 한다.
그를 만나기 전, 이적, 유인나, 양세형이 나오는 '선다방'이라는 TV 연애 프로그램에 섭외가 되어 출연을 고민했었다. 나갈까 말까 수십 번 고민하다가 부담이 되어 출연을 고사했다. 만약 이때 내가 선다방에 출연했다면 아마 지금의 남편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붉은 실은 이때부터 나를 이끌고 있었을까. 시간이 흘러 내 앞에는 그가 앉아있다.
결혼한 지 500일이 되는 오늘 퇴근길에 이 글을 봐줬으면 좋겠다.
머스마 같은 와이프랑 살아줘서 고맙다고.
나는 매일 이불을 걷어차고 자는 그에게 이불을 덮어준다.
그는 매일 침대 영역을 침범하는 나를 요리조리 피해 잔다.
여전히 서로의 코골이에 놀라는 우리는 아직 신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