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꿀차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은 Nov 12. 2024

소설 보다: 가을 2024

권희진, 이미상, 정기현

<걷기의 활용>

  

     본문   

내 잘못인가. 나는 여전히 그의 그 말이 괘씸하다.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해 누가 누구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이 말이 되는 말인가.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일이 잘못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내 잘못인가. 그렇게 질문이 돌고 돌다 보면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왜 아직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나, 하는 마음이 든다.


그때 미처 하지 못한 대답을 혼자서 정리하고 다듬고 덜어내다 보면 그런 바람들만 남는데 그 말을 그때 하지 못했다는 것이, 나는 그게 가장 슬프다.


     인터뷰   

걷는 목적이나 방향은 수시로 변합니다. 어느 순간에는 일이 될 수도 있고, 또 어느 순간에는 사랑이 되기도 할 겁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자주 허무를 느끼겠죠. 의지와 다르게 원하지 않는 길로 빠지기도 하니까요. 그럼에도 그 안에서 실컷 방황하다가 다시 다른 길을 찾아내고, 걷는 행위를 멈추지 않을 것 같아요. 지나고 보니 '나'에게 중요한 것은 '걷기의 완성'이 아니라 '걷는 일을 이어가는 것' 그 자체였다는 사실도 깨달을 테죠.

상대를 향해 일어나는 모든 감정을 내 마음이라는 그릇에 기꺼이 담아낼 수 있는 행위가 사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저마다 그릇의 '모양'은 제각각이겠지만 감정들을 최대한 많이 담으려면 꽤 커야겠지요. 많은 용기와 의지가 필요한 일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우리를 오해하겠지요. 모든 이해가 모종의 오해이고 모든 오해가 일종의 이해인 것처럼, '나' 역시 K만큼이나 태수를 이해하고 또 오해했을 것입니다.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시간과 관심이 필요한 일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그들이 한 노력은 사랑의 한 종류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다만 자신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타인을 해석하려다 보니 오해를 낳기도 했지만요. 그렇다고 그러한 노력이 헛되지만은 않습니다. 오해의 과정들이 있었기에 결국 각자에게 내재된 욕구를 마주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우리는 타인을 통해 자신에 대한 이해를 쌓아가지만 그중엔 분명 오해도 섞여 있을 거예요. 오해를 거르기 위해선 고독과 외로움의 시간을 거쳐야 하겠지요. 

어떤 결말을 향해 걷기보다는 '걷는 일' 자체에 의미를 둔 채로 걷고 있는 중입니다. 그 과정에서 타인에 대해 깊게 고민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작은 개인의 생각과 감정이 크게 다가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기록하고 싶습니다.



<슬픈 마음 있는 사람>

  

     본문   

기은은 자신이 비로소 슬픈 마음 있는 사람이 된 것에 아늑함을 느끼면서도 슬픈 마음을 가지게 된 덕분에 슬픔 속에 한참을 머물다 자리를 떴다.

  

     인터뷰   

다 좋아하는 일이지만 한쪽에 지치면 다른 한쪽으로 넘어가는 식으로 하루하루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기 앞의 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