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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창문 30화

이름 옆의 단어

by 성은

9월과 10월에는 12월이 굉장히 멀게 느껴졌는데 정말 한국에 돌아간다니,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만큼 잘 적응했다는 뜻인 것 같아서 뿌듯하면서, 한국에 돌아가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보고 먹고 싶었던 음식들을 먹을 생각을 하니 설렜다.

교환학생 생활의 끝은 예과 생활의 끝을 의미하기 때문에 아쉽기도 했지만 본과에서 하게 될 도전들이 기대되기도 했다.

교환학생 생활에서 얻은 것 중 하나는 도전에 대한 준비였다.

밤새워 공부하기도 하고, 매일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하고, 두 달간의 노력 끝의 기숙사 방도 바꾸고, 혼자 캐나다도 다녀오고.

제일 큰 목표는 영어 실력을 키우는 것이었는데, 영어로 수업을 들으며 많이 늘었다.

원어민 학생들 앞에서 대본 없이 발표해야 했던 해부학 수업이 떠올랐다.

통계학 수업으로 응용통계학 부전공도 마쳤고, 책도 많이 읽었다.

이곳에 오기 전 기대했던 것보다도 단기간에 많이 강해진 것 같아서 인생이 조금 더 만만하게 느껴졌다.

나를 더 믿어줄 수 있고, 새로운 도전에 더 용감해질 수 있다.

그리고 더 사랑할 수 있다.

이런 결론을 얻기까지 4개월을 지나오며 가장 많이 느낀 것은 주변 사람들의 소중함이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눈 시간들로 기억된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정말 그렇다.

내가 떠난 자리에 남는 것은 그들과 함께한 기억일 테니까.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으로, 누군가에게는 수업 시간에 잠깐 본 적이 있는 사람으로.

룸메이트 문제로 속상해하면서 한국이 그리워 울던 밤에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늘 시간 차를 두고 도착하는 것 같은 부모님의 마음과, 다른 사람들에 대한 마음이 일차함수라면 나에 대한 마음은 고차함수라는 말.

멀리 떨어져 있는 나를 생각해 주고 엽서를 보내준 친구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샴페인에서의 생활을 함께 헤쳐나갔던 한국인 언니오빠들과 종종 수업도 같이 듣고 밥도 먹었던 일본인 친구들.

신경해부학 랩 수업에서 나만 처음 보는 조원이었는데도 먼저 다가와줘서 한 학기 동안 재미있게 수업할 수 있도록 도와준 미국인 친구들.

친구들과 함께했던 기억이 샴페인에서의 추억 중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처럼 나도 그 시간으로 기억되겠지.

내 이름 옆에 떠오르는 말들이 어떤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좋은 사람이었다고 기억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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