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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꿀차

바깥 일기

아니 에르노

by 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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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 일기>는 자신의 내면을 기술한 일기가 아니라 외부를 관찰하고 사회의 단면을 모아 놓은 일기이다.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줄거리는 없지만, 사진을 찍듯이 주변을 묘사한 파편들이 오히려 현실을 더 잘 묘사한다.

이 책 역시 아니 에르노의 다른 작품들처럼 짧지만, 극도로 정제된 문체로 쓰여서 밀도는 엄청나다.

본문
자유롭게 대학에 입학할 권리를 옹호하는 창의적이고 <유머> 가득한 대학생들의 동맹 파업은 미래 지배자의 파업이었다면, 살기 위해 조금 더 많은 돈을 무겁게 요구하며 외면적 <멋>이라고는 없는 철도 종사자들의 파업은 피지배자의 파업이었다.
청춘이 자신의 시대와 이뤄 낸 완벽한 합일, 새로운 것의 우월함에 대한 믿음 - 아름다운 것, 그것은 <방금 나온> 것이다 - 달리 말하자면 이는 자신을 믿지 않으며, 미래는 더더욱 믿지 않는다는 의미이리라.
어떤 행위의 개인적이고 현재적인 의미를 그 행위로부터 생겨날지도 모를 미래의 의미 및 그 결과와 분리하는 것이 가능할까?
즉, 자신이 어떤 말들을 이제는 사용하지 않으면 그 말들이 사라졌다고, 자신이 먹고살 만하면 가난이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기. 또 다른 법칙, 그것은 정확히 그 반대인데, 오래전에 떠나왔던 도시로 돌아가면서 과거 그대로 변하지 않은 사람들을 다시 만나리라고 지레짐작하기. 두 경우 모두, 현실에 대한 몰이해, 그리고 유일한 척도가 나뿐이라는 공통점을 가짐. 첫 번째 경우가 타인 전부를 자신과 동일시하기라면, 두 번째 경우는 우리가 도시를 떠날 때 마지막으로 본 그 이미지에 영원히 머물러 있는 존재들에게서 예전의 나를 되찾으려는 욕망.
사실을 마주했을 때, 두 가지의 행동 방식이 가능함을 깨닫는다. 정확하게, 꾸밈없이, 전체 이야기를 고려하지 않고 그 사실들과 순간 속에 드러난 그것들의 성격을 기록하거나, 그것들을 따로 간직하고 있다가 <소용>(경우에 따라서)되게 만들고, 전체(예를 들면 소설) 속에 그것들을 편입시키기. 내가 여기에 써나가는 글들처럼 단편들은 내게 미진한 느낌을 남기며, 나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구성 작업(하루하루와 마주침의 우연에 복종하지 않는)에 뛰어들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하지만 RER에서 보이는 장면들, 사람들의 자기 자신을 위한 동작과 말들을, 비록 그것들이 아무 데도 소용되지 않는다 해도 옮겨 적어야 할 필요 역시 느낀다.
그러니까 바로 바깥에, 전철이나 RER의 승객들과 갈르리 라파에트나 오샤의 에스컬레이터에 오른 사람들 안에 나의 지나온 삶이 침잠되어 있다. 자신들이 내 역사의 일부를 보유하고 있다는 의심조차 않는 무명의 사람들, 내가 결코 다시 보게 되지 못할 얼굴들, 육체들 안에. 아마도 거리와 상점의 군중에 섞여 든 나 역시 타인의 삶을 지니고 있으리라.
옮긴이의 말
계급 이탈자로서 상징적 폭력을 직접 겪었음을 고백하기도 했던 작가는 눈에 띄지 않게 은밀히 작동하는 힘의 관계를 지하철, 쇼핑몰, 슈퍼마켓 등 일상의 공간에서도 여지없이 간파하고, 지배 계급의 힘의 원천은 바로 그러한 <비가시성>에 있다고 폭로한다.
자신의 언어를 찾아내기 위한 작가의 부단한 분투는 한마디로, 에르노는 무엇을 쓸 것인가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어떻게 쓸 것인가가 중요한 작가임을 보여 준다.
에르노에게서 문체는 문학적으로 아름다운 문장에 대한 고뇌와 무관하다. 오히려 피지배 계급에서 지배 계급으로 이동한 자신의 현실과 자기 부류의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 언어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벼려 낸 무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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