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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꿀차

제인 에어

샬럿 브론테

by 성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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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아동용 세계문학전집으로 제인에어를 읽고 지금까지 신데렐라 스토리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반성해야겠다.

제인 에어의 내면을 정말 잘 묘사하고 있다.

내가 읽은 이 시대 영국 소설은 대부분 3인칭 시점인데, <제인 에어>는 1인칭 시점이라는 점이 신기하다.

그래서 <미들마치>나 제인 오스틴의 책들에 비해 훨씬 내면 묘사가 풍부하다.

사실 사건들은 아동용 전집 버전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각 사건에 대한 묘사가 매우 길고 세밀하다는 점이 다르다.

고전에서 스토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작은지 알 수 있다.

고전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은 느린 전개 속도이다.


제인이 이렇게 매력적인 인물인지 몰랐다.

자기주도적으로 생각하고, 반항심도 가지고 있고, 똑똑하고, 자기 삶을 개척하려는 진취적인 성격이다.

그렇지만 로체스터에 대한 감정 묘사를 읽을 때는 미련해 보이기도 하고 순진해 보이기도 한다.

현실감이 있는 인물이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계속해서 삶을 계발해야 하는 사람이라 공감이 갔다.


어렸을 때는 제인이 대체 왜 로체스터랑 결혼했는지 이해가 안 됐는데 원본으로 읽으니까 이제 이해가 된다.

평생 돌봄이 필요한 남편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것만 생각했는데, 사람의 기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책에서는 제인이 로체스터와 완벽하게 동일한 기질을 가지고 있다거나, 세인트 존과 있을 때에는 억압된 채로 본연의 모습을 드러낼 수 없다는 등 기질에 관한 언급이 많이 등장한다.

사실 나 자신이 가진 여러 가지 특징들은 살아가면서 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제인의 내면을 훌륭하게 서술한 고전인 건 분명하지만, 시대적 한계도 있다.

정신질환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동양에 대한 서양중심적인 사고는 물론 프랑스인이나 독일인을 무시하는 등 영국중심적인 사고가 드러나 있다.


그렇지만 현실적이면서도 주체적인 의식을 가진 강력한 여성 캐릭터를 창조했다는 점, 로체스터와 세인트 존 역시 각자의 결함을 지닌 인물로 직조해냈다는 점이 좋았다.

제인과 로체스터, 세인트 존의 인생관을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굳건한 신앙심을 가지고 항상 옳은 일을 행하려고 하는데 때로는 주변 사람들을 숨 막히게 하는 세인트 존.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지만 마음속에 강렬한 열정을 간직하고 있어서 충동적이기도 한 제인.

올바른 원칙을 가지고 있지만 주로 열정과 충동에 이끌려 살아가는 로체스터.

로체스터와 세인트 존은 우리가 삶에 대해 가질 수 있는 태도의 양 극단에 있는 듯하다.

본문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나보다도 평온한 생활에 얽매여 있고 또 수백만의 사람들이 그 운명에 말없이 항거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반란을 제외하고서도 얼마나 많은 반란이 지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격동하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성은 대체로 평온한 존재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도 남성과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오빠나 동생들과 똑같이 자기의 능력과 노력을 발휘할 터전을 필요로 하고 있다. 너무도 가혹한 속박, 너무나 완전한 침체에 괴로워한다는 점에선 여성도 남성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 여성들이란 집 안에 처박혀서 푸딩이나 만들고 양말이나 짜고 피아노나 치고 가방에 수나 놓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보다 맣은 특권을 누리고 있는 남성들의 소견 없는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관습에 의해서 여성에게 필요하다고 선고된 일 이상의 것을 하고 또 배우려고 하는 여성을 탓하거나 비웃는 것은 소갈머리 없는 짓이다.
지금까지 나는 듣고 보고 움직였을 따름이다. 이끌리고 인도되는 대로 따라갔을 뿐이다.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사건을 바라보고 계속해서 드러나는 비밀을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스스로 생각했다.
'내가 나를 걱정한다. 쓸쓸하고 고독하고 아무도 의지할 사람이 없으면 없을수록 나는 나 자신을 존경한다. 나는 하느님이 내려 주시고 인간에 의해 인정된 법을 지키리라. 지금과 같이 미치지 않고 바른 정신일 때 내가 받아들이는 원칙대로 살아 나가리라. 법이나 원칙은 유혹이 없을 때를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지금과 같이 육체와 정신이 그 준엄성에 대해 반기를 들었을 때를 위해서 있는 것이다. 법과 원칙은 엄정한 것이며 침범되어서는 안 된다. 만약에 나 개인의 편의를 위해 침범해도 좋은 것이라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그것들은 가치 있는 것이다. 나는 항상 그렇게 믿어 왔다. 그런데 이제 내가 그것을 믿을 수 없다면, 그건 내 정신이 이상해진 탓이다. 아주 미쳐서, 혈관은 불같이 달아오르고 심장은 박동을 셀 수도 없을 만큼 빨리 뛰고 있는 까닭이다. 지금 내가 지켜야 할 것은 전부터 품어 온 의견, 전부터 가지고 있던 결심뿐이다. 나는 거기에 꿋꿋이 발을 디뎌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람이었고 사람만이 가지는 욕구를 가지고 있었다. 그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언제까지나 머뭇거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방금 일어난 내 잠자리를 돌아보았다. 미래에 대한 아무 희망도 없이 나는 이것만을 원했다. 내가 잠자는 동안에 하느님께서 내 영혼을 불러 가실 생각을 하셨더라면, 그리고 이 피로한 육체가 죽음에 의해 더 이상 운명과 싸우지 않아도 되게 되어, 조용히 썩어 가지고 이 황야의 흙에 편안히 묻혀 버렸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러나 생명은 모두 요구와 고통과 책임을 그냥 지닌 채로 아직도 나의 것이었다. 지워진 짐은 날라야 했다. 욕구는 충족되어야 하고, 고난은 견뎌야 하고 책임은 다해야 했다. 나는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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