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벨 아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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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친구들, 자녀들이 매일 찾아와 번갈아가며 자기들이 관조한 것 - 풍경, 장면, 얼굴, 빛의 효과 등을 묘사해 준다. 돈 후안 리베로의 빈틈없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매우 세밀하게 관찰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그 과정에서 그들의 삶도 변한다. 더 이상 세상을 습관적으로 가볍게 살 수 없게 되고, 선생님의 눈으로 사물을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빛은 사진의 언어이고 세상의 영혼이란다. 그림자 없는 빛이 없고 고통 없는 행복이란 존재하지 않지." 그것은 돈 후안 리베로가 십칠 년 전 아르마스 광장의 스튜디오에서 나를 가르치던 첫날 해준 말이다. 지금도 그 말이 잊히지 않는다. 그러나 앞서 나가지 말아야겠다. 나는 이 이야기를 한 걸음 한 걸음, 한 마디 한 마디 있는 그대로 들려줄 생각이다.
나는 세상 모든 사람이 아니라 나에게 진실로 중요한 사람들에게만 기쁨을 주면 되고, 그런 사람이 많지도 않다.
기억은 허구다. 우리는 부끄러움 부분은 잊어버리고 가장 밝은 부분과 가장 어두운 부분만 선택하여 인생이라는 널찍한 융단에 수를 놓는다. 나는 사진과 글을 통해 내 존재의 덧없는 상황을 이겨 내고 사라져 가는 순간들을 붙들어 과거의 혼돈을 벗겨 내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매 순간은 순식간에 사라져 금방 과거가 되어 버린다. 현실은 하루살이같이 덧없고 변하는 것이며 순수한 그리움일 따름이다.이 사진들과 이 글 덕분에 나는 기억들을 생생하게 간직한다. 이것들은 덧없는 진실, 그러나 어쨌든 진실이기는 한 무언가를 찾기 위한 실마리다. 이 사건들이 일어났고 이 인물들이 내 운명을 거쳐 갔다는 것을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나는 내 유년 시절의 오랜 비밀들을 밝혀 내 정체성을 찾고 나만의 전설을 만들기 위해 글을 쓴다. 우리가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이라곤 결국 우리가 엮어 놓은 기억뿐이다. 각자 자기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한 빛깔을 고른다. 나는 백금 사진의 영구적인 선명함을 고르고 싶다. 그러나 내 운명에는 그런 빛나는 구석이 조금도 없다. 나는 모호한 색깔들과 불분명한 미스터리, 불확실성 속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내 인생의 이야기는 세피아빛 초상의 색조를 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