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판단을 위한 십계명

최근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해서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근거로서의 십계명

by 강성호

<9계명과 최근 논란: 공론의 장에서 일어나는 과도한 비난 혹은 거짓 증언에 대한 기독교 윤리적 소고>

1. 들어가며
조금이라도 관련되어 있거나 인연이 있는 사람(고등학교 동문 선배)을 옹호하는 글을 쓰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그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글의 근거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기독교 윤리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이 사안이 윤리학적 논의가 가능한 사안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글은 일차적으로 기독교인들을 위한 글입니다. 동시에 이 사안에 대해서 윤리학적인 논의의 한 방편이 될 것입니다.


2. 거짓 증언, 거짓말을 다룬 9계명
십계명과 산상수훈은 기독교 윤리의 가장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안에 대해서 9계명,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를 중심으로 논의를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십계명은 성경의 기록된 열 가지 계명이며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에게 주어진 것이지만, 도덕법으로서 서구의 법 제정에 근본 토대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십계명 중 9번째 계명은 "네 이웃에게 거짓 증거하지 말라"입니다. 9계명의 가장 직접적인 그리고 문자적인 적용은 이웃을 해롭게 하는 거짓말을 법정에서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차적으로 법정에서 위증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뜻하지만, 9계명은 법정이라는 상황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는 도덕적 명령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삶의 모든 부분에서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하며, 특별히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는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9계명을 해설한 윤리학자들은 "선의의 거짓말"에 대해서도 경계합니다. 선의라는 이름으로 거짓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개인과 공동체가 거짓말을 정당화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타인의 글이나 말을 비판할 때 "완곡어법" 혹은 "외교적 수사" 등을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엄격한 도덕적 잣대로 보면 이 모든 것들도 다 거짓말에 속합니다. 불가피하게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여도 거짓말 자체를 정당화하지는 못합니다. 선의를 위한 거짓말이란 말은 언제든지 "대의" 혹은 "명분"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되어서 거짓말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리학자들이 9계명을 무조건적으로 모든 상황들에 적용하는 것을 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독일 나치 정권에서 유대인들을 집안에 숨겨준 사람에게 "지금 당신 집에 유대인이 있느냐?"라고 물을 때 9계명을 지키기 위해서 사실대로 말하는 것은 살인하지 말라는 6계명을 어기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 가지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더 많은 도덕적 명령들을 위반하는 모순을 피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9계명을 해설한 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은 9계명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반드시 나는 누구를 대하든지 거짓 증언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왜곡하지 않으며, 험담하거나 욕을 하지 않고, 분별없이 사정을 들어보지 않고 어떤 사람을 정죄하지도, 정죄하는 일에 가담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9계명은 분명하게 ”분별없이 사정을 들어보지 않고" 과도하게 비난하거나 정죄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경력과장 혹은 허위(9계명을 어긴 것)를 빌미삼아 “분별없이 사정을 들어보지 않고” 과도하게 비난하는 것은 스스로 9계명을 위반하는 행위가 됩니다.


3. 9계명의 현대적 적용

9계명을 현재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해서 적용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는 표현은 관행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학계 관계자들의 확인 발언들도 있었습니다. "참여"의 정도를 과장해서 표현했다면, 엄겸한 도덕적 기준에 따르면 분명 그 또한 일종의 거짓말이 됩니다. 하지만 책의 서문에서부터 그는 "나는 인공지능을 전공한 전문가는 아니다”라고 명시적으로 밝혔을 뿐만 아니라 본인이 언론에 "인공 지능 전문가로 소개"될 때마다 "불편하고 민망했다"라고 분명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또한 "밝힐 수 없었던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스스로 이번 기회를 통해서 책에서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이 서문은 자신의 경력에 대한 하나의 성명서(statement)의 기능을 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경우에, 이 저자를 "허위 경력자"로 비판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9계명에 대한 지나친 적용이고 과도한 비난입니다. 잘못한 정도에 비례한 비판은 정당한 것으로 인정받지만, 잘못한 정도를 고려하지 않은 과도한 비난은 정확하게 9계명을 어기게 됩니다. 공공의 장에서 타인에 대한 "거짓 증언"을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거짓 증언으로 억울한 피해자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근거없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하여 죄인의 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 다수의 사람들이 잘못을 저지를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되며, 다수의 사람들이 정의를 굽게 하는 증언을 할 때에도 그들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너희는 또한 가난한 사람의 송사라고 해서 치우쳐서 두둔해서도 안 된다.

The Holy Bible: New Korean Standard Version, electronic ed. (South Korea, n.d.), Ex 23:1–3. 성경전서 새번역, 출애굽기 23:1-3.


“Do not spread false reports. Do not help a guilty person by being a malicious witness. “Do not follow the crowd in doing wrong. When you give testimony in a lawsuit, do not pervert justice by siding with the crowd, and do not show favoritism to a poor person in a lawsuit.

The New International Version (Grand Rapids, MI: Zondervan, 2011), Ex 23:1–3.

공론의 장에서, 잘못의 크기에 비례하지 않는 과도한 비난을 퍼붓는 것은 거짓 증언이 되기에 충분하며, 억울한 사회적 판단을 받는 피해자를 만들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는 사항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안에서 교수의 이력과 관련하여 과도하게 비난하는 것은 (기독교) 윤리적으로 지지받기 어렵습니다.


4. 다른 계명들을 적용하여 생각하기
십계명은 9계명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6계명과 도둑질하지 말라는 8계명도 있습니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는 10계명도 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6계명은 단순히 살인만을 금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이웃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그들을 미워하거나 해치거나 죽이지 않기를 원하십니다."(하이델베르그 교리문답, 105문답 중에서) 그러므로 잘못한 정도에 비해 지나치게 과도한 비난은 9계명 뿐만 아니라 6계명 역시 위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8계명은 도둑질하지 말라는 명령을 주고 있습니다. 그 명령은 제 110문답에서 다음과 같이 해설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공공연한 도적질과 강도짓만을 금하신 것이 아니라, 거짓된 저울과 자, 속여서 물건을 파는 것, 돈을 위조하는 것, 고리대금과 같은 악한 계획들과 간계들도 금하십니다. 우리는 이웃에게 힘으로든지 또는 정당한 권리를 가장해서든지, 다른 어떤 방식으로도 속여 빼앗으면 안 됩니다.또한 하나님께서는 모든 탐심,그리고 하나님의 선물들을 남용하거나 낭비하는 것을 금하십니다."


저작권 침해와 표절은 8계명을 위반하며(10계명도 함께 위반합니다), 6,8,9계명은 모두 현대 국가의 법조항에서도 그 정신을 담고 있습니다. 저작권 침해와 표절은 법적 책임과 윤리적 도덕적 책임을 함께 감당할 사안이지 법적 판단으로 윤리적 도덕적 책임을 면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경력이 과장되었다는 비판은 기본적으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비판이 됩니다. 그러나 그 윤리적 비판에도 한계가 있으며 정도의 비례성이 있어야 합니다. 더불어서 상대에 대해서 도덕적 윤리적 비판을 하려면, 본인 또한 동일하게 도덕적 윤리적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근본적으로는 도덕적 윤리적 비판을 면제받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습니다. 법적인 판단만으로 모든 것이 해소될 것이라는 주장은 최소한 도덕적 윤리적 비판을 법적인 판단 아래에 두려는 시도가 될 수 있으므로 이또한 적절하지도 정당하지도 않습니다.


5. 결론
최근 논란이 된 이 사안은 기본적으로 "윤리적" 문제였습니다. 또한 지금은 법적인 판단까지 함께 내려져야 할 사안이 되었습니다. 상대가 나를 먼저 부당하게 비판했기 때문에(그렇게 생각할 자유는 본인들에게 있습니다), 내가 상대에게 가하는 비판은 (지나칠 정도로 과하다고 해도, 또 속단하여 상대를 매도한다고 해도) 정당하고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은 윤리적으로 합당한 주장이 되지 못합니다. 기독교 윤리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일반 윤리학에서도 인정되지 않는 주장입니다. 법적 판단은 법정에서 이루어지지만, 도덕적 윤리적 성찰은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이 사안이 시작된 시점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절실히 필요했던 일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참고문헌
감동근. 바둑으로 읽는 인공지능. 서울: 동아시아, 2016.
강영안. 강영안 교수의 십계명 강의. 서울: IVP, 2009.
김헌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서울: 성약, 2011.
Dauma, Jochem. The Ten Commandments: Manual for the Christian Life, Phillipsburg: P&R Pub, 1996.
Smedes, Lewis B. Mere Morality: What God Expects from Ordinary People. Kindle Edition. Grand Rapids: Eerdmans, 1983.
Ursinus, Zacharias and Williard, G. W. The Commentary of Dr. Zacharias Ursinus on the Heidelberg Catechism, Cincinnati: Elm Street Printing Company, 1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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