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도의 "드래곤 라자"에 등장하는 "마법의 가을"은 그 책에 소개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 구절이 더 유명한 편이다.
"어떠한 한 사람이 자신의 인생 중 어느 가을, 그 가을엔 첫눈이 올 때까지 온갖 희귀한 별의별 일들이 벌어진다. 대부분은 당시에는 인식하지 못하다 훗날에 아 그때가 마법의 가을이었지 하고 되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만일 자신이 마법의 가을에 들어섰다는 것을 깨달으면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가을이 되면 언제나 떠오르는 장면 중 하나는 과학고 입학시험을 마치고 진주에서 거제도로 돌아오는 풍경이다. 시험을 마치고 진주성 앞에서 이문세 베스트 테이프 하나를 샀고, 함께 시험을 본 친구들과 중국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은 후 거제도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 중학교 담임선생님의 차를 탔던 것 같다.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 진주에서 거제도로 가는 길은 꽤 멀고 길었다. 3시간 반에서 4시간가량 걸렸는데 가을 석양이 든 풍경 속에서 버스가 아닌 승용차를 타고 집으로 가고 있다는 게 비현실적이고 꿈만 같았다.
시험장까지 데려갈 수 있는 가족이 없었고, 시험 전 날 숙박을 해결해 주기 위해 함께 있을 수 있는 어른이 없어서 친구들의 부모님 차를 얻어 타고, 식사와 잠자리도 친구들 부모님께서 해결해 주셨던 것 같다. 시험을 마치고 거제도로 돌아올 땐 중학교 담임선생님이 진주까지 와서 태워 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통영 근처 학섬 휴게소에 들러서 잠깐 쉬었다 집으로 가게 되었다.
그날 진주에서 거제도로 돌아오는 풍경을 나는 평생 잊지 못한다. 지금은 거의 이용하지 않는 진주에서 고성을 거쳐 통영으로 가는 그 국도 길에 저녁노을이 내려왔을 때 부모님 돌아가신 후 3년의 세월이 응축되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친구 부모님이 잡은 진주 시외버스터미널 앞 여관방에서 시험 전 날 잠을 잘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부모님 돌아가신 후 3년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최선을 다해서 했으니 한 번만 도와달라는 기도 같은 호소를 꿈속에 했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이 무너진 갱도에서 아버지에게 "아버지 힘이 듭니다. 산다는 게 참 힘이 듭니다"라고 한탄하듯 외쳤던 것처럼, 아버지에게 한번 도와달라는 말을 꿈속에서 했었다.
시험 친 다음 날, 원래 공지한 것보다 이틀 빨리 합격 소식을 들었다.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셨던 선생님이 경남과고로 전화해서 직접 확인해 주셨다. 같이 본 다른 친구들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소식을 듣고 쓰러지듯 감사와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그날의 기억은 마법의 가을처럼 내게 남아있다. 나를 키워준 누나와 가족들에게 은혜를 조금이나마 갚은 날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