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중에 선택하기
제가 삶의 조건들에도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영화 한 편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영화가 제 인생에서 가장 절박한 순간들이 어떻게 제 인생에서 가장 축복된 순간으로 바뀌는지 설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제한된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한된 삶은 일상의 연속이자 반복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지만 살아온 삶의 시간이 더 많아질수록 매일 의미 있게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 일상은 별다른 변화 없는 무의미한 시간들이 일일연속극처럼 계속 비슷하게 반복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인생 최고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소설가 이영도가 『드라곤 라자』에서 말한 “마법의 가을”처럼 우리 인생을 새롭게 하는 최고의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 최고의 순간이 우연히 찾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진정 영향을 주고 감동을 주는 것은 우연이나 행운으로 찾아오지 않습니다. 그것은 눈물과 땀, 희생과 사랑이 뒤범벅되어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그 최고의 순간이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우리에게 알려주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 이야기를 통해서 가장 절망스러운 순간에 우리의 선택이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 핸드볼의 결승전의 감동을 재구성한 영화입니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나 등장인물들의 삶의 이야기는 영화에 맞게 다시 구성했습니다. 서울 올림픽과 바르셀로나 올림픽 이후 점차 밀리기 시작한 여자 핸드볼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는 메달도 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고 아테네올림픽에서는 본선 진출도 겨우 턱걸이로 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모든 악조건 속에서 이뤄낸 결승 진출이었고 최종적으로 획득한 은메달이었습니다. 5개의 실업팀의 한국과 1035개의 실업팀을 보유한 덴마크와의 경기는 누가 보아도 덴마크의 확실한 우세였습니다. 결승 진출에 만족하며 우승은 포기한 채 경기에 들어섰다고 하여도 누구 하나 한국 여자 핸드볼팀을 감히 비난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임순례 감독은 결승 경기 전 미숙이 남편에게 하는 말을 통해서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바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업 실패와 빚에 쫓겨 자살을 선택한 남편이나 덴마크를 상대로 결승전을 앞두고 있는 미숙의 상태나 희망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미숙의 남편은 자살을 시도 끝에 병원으로 옮겨져서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희망이 없는 인생의 한 지점에서 포기를 선택한 남편에게 아내인 미숙은 다음과 같이 얘기했습니다.
“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당신도 포기하지 마.”
마치 제 상황처럼, 이 영화는 삶의 조건만으로 판단하면 포기하고 절망할 만한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대표팀의 감독로 복귀했지만 리더십 부족과 이혼 경력으로 선수로 강등된 혜경, 불임으로 고생하는 정란, 생활고에 시달리는 미숙 등 이들의 이야기는 희망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주며 서로를 감싸 주고 함께 일어서도록 서로를 도왔습니다. 그리고 함께 땀 흘리며 눈물 흘리며 이를 악물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 그들 생애 가운데 최고의 순간을 함께 경험했습니다.
생애 최고의 순간은 이렇게 완성되었습니다. 좋은 삶의 조건이나 주변 여건들로 인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포기하고 좌절하는 것이 당연한 상황 속에서도 포기를 선택하는 대신 최선을 선택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선택이 반드시 최고의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은 결과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는 과정 가운데 형성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생애 최고의 순간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순간을 함께 바라본 모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결코 포기하지 않는 최선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최고의 순간이 한 번은 우리 생애에 있을 것입니다. 저 또한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고 느낄만한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제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 제 삶의 조건들 덕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비록 제게 주어진 삶의 조건과 시간이 전혀 희망적이지 않았지만, 저는 포기를 선택하는 대신 최선을 선택했습니다. 제게 주어진 삶의 조건들만으로도 저는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제게 주어진 모든 여건들과 기회에 감사하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제가 포기를 선택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절망적이고 부정적인 제 삶의 상황이 지금 제게 주어진 삶의 순간들을 지배하게 내버려 두는 것이 싫었습니다. 제가 제 삶을 희망과 감사의 눈으로 바라보며, 제 삶의 순간들에 최선을 다한다면 저는 결과와 상관없이 제 삶의 조건들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미 고통스러운 삶의 조건들이 제 마음까지 지배하고 무너뜨리게 내버려 두는 것은 정말 싫었습니다. 만일 어떤 더 나은 여건들이 제 인생에서 최고의 순간을 만들어 주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제 인생의 최고의 순간이 나와 이익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만 감동과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저를 아는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 보이신 삶의 모습은 지금도 모든 믿는 자의 마음에 밝은 빛으로 머물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이 세상의 빛으로 비취길 소망합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빛에 잇닿아 있어 우리의 희생과 수고로 많은 이들의 가슴에 그리스도가 머물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생애 최고의 순간이 그렇게 이루어져 우리 가운데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