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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열한백구 Dec 07. 2019

닌빈 Ninh Binh

육지의 하롱베이, 베트남 닌빈

'육지의 하롱베이라는 말이 거짓은 아니군'

스쿠터의 속도를 유지하며 주변 풍경을 둘러본다.

카르스트 지형의  뾰족한 돌산들과 논들이 절묘하게 이어진다.


현지 여행사의 하롱베이 투어는

입맛에 맞지 않았고, 개인적인 이동을 고려하기에는

무비자로 허락된 15일의 일정이 빠듯했다.

과감하게 하롱베이를 포기하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루트를 찾던 중,

닌빈 Ninh Binh을 알게 되었다.

하롱베이를 포기한 아쉬움이 채 가시지 않은 여행자에게

'육지의 하롱베이'라는 닌빈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과도 같은 곳이었다.


하노이에서 여행자 버스에 몸을 싣고 두 시간여 만에 닌빈에 도착했다.

하룻밤을 잘 묵고, 숙소에서 빌린 스쿠터를 타고 닌빈의 시골길을 달리는 중이다.


#

차가운 빗방울 하나가 손등에 떨어졌다.

아침부터 하늘이 거뭇하더니

결국 비가 온다.

두어 시간 퍼붓고 나면

맑은 하늘이 펼쳐질 것이기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지만 않다.


진행방향 앞쪽으로 허름한 천막이 보이고

그 밑으로 몇 대의 오토바이가 주차되어 있다.

비를 피하기 안성맞춤인 듯하다.

천막 밑으로 스쿠터를 주차한 후

자리를 잡고 앉았다. 냉장고 안의 콜라를

구입했지만 시원하지는 않다.

굵어진 빗방울 사이로 몇 대의 오토바이가 더 들어온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빗물을 털어주며

낯선 이방인에게 잠깐의 시선을 던진다.

미지근한 콜라를 마시며, 가이드북과 지도를 본다.

다 훑어본 내용임에도 눈 둘 곳이 필요했기에 집중하는 척을 해본다.


현지인들의 힐끗거림이 느껴진다. 힐끗거리는 눈이 두 개에서 네 개가 되고

여섯 개가 될 때쯤.  고개를 들어 인사를 던진다.

빈 의자 하나를 자신들의 테이블로 당기더니

손짓으로 나를 부른다.

낯선 이방인에서 빗속에 갇힌 공동체일원으로 인정받은 듯한 기분이 든다.

서로 간 의사소통 되지 않는다.

짧은 영어와 바디랭귀지를 적절히 섞어가며

답답한 소통을 이어간다. 

결국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면 멋쩍은

웃음과 잠깐의 침묵이 곁들여진다.


핸드폰의 사진을 보여주며 한국을 소개하고

오래된 폴더폰의 부족한 화질로 베트남을 이야기한다.


베트남 사람은 미국을 이긴 것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던 것이 생각다.

베트남 여행을 준비하며 연습해온 필살기를

써보기로 했다.

 "베트남 짱. 존멋, 미쿡보다 베트남 싸움 잘해~"

마음에도 없는 폭풍 칭찬과 우러러봄을 시전 한다.

나는 여기서 소수자이니 최대한 잘 보이고 싶다.

다행히 한 사람이 'USA', 'Win' 은 알아들었다.

옆사람과 몇 마디 나누더니 단체로 치아를 보이며 밝게 웃는다.

갑자기 차를 권하고, 대나무 담배를 권한다.

내가 먹은 콜라 값까지 대신 계산해 주려고 한다.

사실 통할 줄 알았다. 세계 어디든 남자들에게는

이런 것이 먹힌다.


의사소통이 안되니 자신들도 답답했나 보다.

대화가 드문드문해지더니 각자의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길어진다.

2G 폰에 재미난 것이 있을 리가 만무한데, 진지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만지작 거린다.

가이드북에 집중하던 내 표정이 저랬을 것이다.


천막을 때리던 빗소리가 힘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기다렸다는 듯이 한 사람씩

짧은 인사를 남기고 오토바이와 함께 사라진다.

완전히 그치지 않은 빗줄기를 아랑곳하지 않을 정도로 이 어색한 공기가 싫었나 보다.

마지막 사람을 떠나보낸다.

십 년을 함께 싸워온 전우를 떠나보내는 듯한

진한 악수를 나눈다.


담배 한 대를 입에 문다.

김 빠진 콜라도 한 모금 마신다.

출발부터 비를 만나 두 시간이 지체되었지만

닌빈 여행의 시작이 나쁘지 않다.

비가 완전히 그치면 길을 나설 것이다.

무아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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