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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열한백구 Dec 08. 2019

직업재활.

"꼭 가야 해요?"


현재 근무 중인 병원에는 직업재활센터가 있다.

매년 12월 경, 송년의 밤을 알리는 초대장이 병동으로 날아온다.

신규 간호사에게 동행을 권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이 시원치 않다.

시간 외 수당을 지급하는 것이 아니기에 강제할 수는 없지만

일상생활을 잘 유지하는 정신장애인을 지역사회에서

만나는 것은 치료자에게 소중한 경험이라고 생각하기에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권한다.

"끝나고 맛있는 거 사 줄게~"


정신장애인 대신 당사자로 칭을 대체해서 적었습니다.

원내의 경우에는 환자 호칭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

정신의학과의 대표적인 질환인 조현병의 경우

당사자의 삼분의 일은 치료종결 후 정상적인 생활을 한다.

다른 삼분의 일은 증상이 비교적 양호하여 외래치료를 받거나,

또는 아무런 치료를 받지 않고 사회생활 유지하고 있다.

나머지 삼분의 일은 병원에서 장기적인 입원생활을 한다.

(대략적인 수치입니다.)


원내에서 만나게 되는 환자의 경우

만성적인 상태로 장기입원 중이거나

재발로 인해 입/퇴원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로 인해 치료자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은 반복적인 일상에 지치게 되고,

치료자로서 행하여진 노력결과를 체감하기가 어렵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 정신과 간호사를 시작한 나는

정신과 입사 3년 차에 접어들 때쯤부터 직업에 대한 자괴감과 함께,

정신의학과 치료시스템에 대해 불신을 가지게 되었다.

번아웃(burnout)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을 무렵,

정신보건요원 자격과정에 수련생으로 선발되었다.


정신건강요원 (당시에는 정신보건요원이라는 이름이었다)

수련과정 중에는 지역사회 실습이 포함된다.

근무조정이 어려워 다니던 병원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한 여름 땡볕과 함께 두 달여를

정신보건센터(현재의 정신건강복지센터)로 실습을 나갔다.

주간 재활팀의 프로그램 진행 및 보조를 맡기도 하고,

사례관리라고 하는 퇴원 후, 센터에 등록한 회원의 집을 방문을 하기도 했다.

정신건강캠페인과 야외활동, 당사자 캠프에도 동행하면서

지역사회정신보건이라는 분야에 눈을 뜨게 되었다.

입원생활을 하는 분보다 증상 조절이 더 안 되는 회원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병원 밖에서 생활하는 당사자와의 만남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중 직업재활에서 취업의 전 단계 격인 보호작업장에서의 경험이 가장 소중하다.


정신의학과에서 완치라는 표현은 조심스럽다.

그래서 증상 조절 후 재활을 통 사회복귀가 치료의 목표가 된다.

세상살이의 가장 중요한 것이 먹고사는 것임을 누구나 동의하듯이

사회복귀의 끝은 자연스럽게 취업과 연결되고

그래서 직업재활이야 말로 정신재활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취업에는 정신질환에 대한 기업의 이해가 수반되어야 하

회원들에게 직장생활에 걸맞은 생활습관을 익히도록 하는 데, 그곳이 보호작업장이다.

여유로운 출퇴근 시간이 적용되고, 업무강도도 낮지만,

일상을 고정된 일정에 맞춰나가는 것은

회원들에게는 힘든 과정 중 하나이다.


실습 이후 병원으로 돌아가 보니

환자들이 달라 보였다.

병원 밖 환자들의 삶을 직접 보고 나서 일까?

입원 중인 환자분들의 치료 목표가 선명하게 보였다.

정신병원 간호사의 일상이 돌고 도는 쳇바퀴 같다고 느꼈던 것은

인간의 짧은 잣대로는 측정할 수 없기에

그저 변화가 없다고 인식해 버린 결과였다.

우리가 느낄 수 없었을 뿐, 목표를 향한 변화는 날마다 이루어지고 있었다.

덕분에 쓸데없는 생각을 접어 버릴 수 있었고,

치료자로서 나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초원 위를 뛰어노는 동물들을 보고 나서도

동물원을 돌아보며 감탄을 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렇게 까지 말했는데도 가고 싶지 않다면 어쩔 수 없고





재미없지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추가 내용))

정신재활의 순서를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아래와 같다.

폐쇄병동→ 개방병동→낮 병원(중간집)→주거시설(직업재활)→사회복귀

정신재활을 책으로 배울 때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지역사회의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역사회에서 직접 보고 느낀 점은 인프라의 부족이 아니라

인프라 사이를 조정해 줄 제도와 기관의 부재였다.

현재의 정신재활에서는 비어있는 제도와 기관의 역할을 가족이 대신하고 있고,

이에 따른 한계점은 분명히 존재한다.

전국 최다 낮 병원 회원수를 보유하고 있는 병원도,

역사와 전통이 있는 직업재활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병원도

마치 고인물과 같다.

신규회원의 유입은 찾아보기 힘들고,

입원 중인 환자가 재활을 위해 다음 단계로 이환되는 경우는 특히나 더 귀하다.

환자 당사자에게도, 가족에게도, 치료기관에도 그래야 하는 동기가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수급비를 받고 있는데 취업으로 수급자에서 탈락할 필요가 없는 당사자.

병원에 입원시켜놓으면 신경 쓰일 일 없어 편한 가족.

환자도 보호자도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입원보다 낮은 급여를 받는 낮병원으로 보낼 필요가 없는 병원


재미없지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추가 내용 두 번째 ))

당사자 모임이라는 것이 있다.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분들의 모임이다.

당사자 100명에게 가장 필요한 것에 대해 질문을 했고

<보호 취업>이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정신장애인도 취업을 할 수 있다.

적어도 당사자 모임에 참여하는 분들은 취업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다.

장애인 취업을 위한 제도 속에 정신장애인을 위한 특화된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신질환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정신장애인의 고용지원에 대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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