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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열한백구 Dec 30. 2019

선생님. 선생. 선생놈

스승의 날을 위해 아껴둔 이야기.

중2 때.

담임이 젊은 체육선생이었다.

아침 조회시간마다 푸석한 얼굴에

입에서는 항상 술냄새가 났다.

그 선생 덕(과목이 체육, 아침마다 숙취)에 일주일에 몇 번 없는 체육시간

훈계 시간 또는 적립해놓은 빠따를 맞는 시간이 되었다.

(숙취로 피곤한 날은 노는 날,

컨디션 좋은 날은 빠따 는 날이다.)


그러던 어느 날 체육시간.

반 친구 중에 하나가 돈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다들 예상할만한

"선생님은 너희에게 실망했다."

"모두 눈감고 돈을 가지고 간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어라."

"지금 손들면 용서해 주겠다."

와 같은 멘트가 이어졌고,

당연하게도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한참 동안 작은 눈으로 좌중을 째려본 후

출석번호 1번부터 앞으로 불러 냈다.


"지금부터 돈을 훔쳐간 사람의 부모를 욕한다."

<이거슨 무슨 어이없는 시추에이션 > 인가 싶었지만

다들 키득거리면서 누군가의 부모를 욕하기 시작했다.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욕을 어찌 저리 구성지게 잘하는지

'누구 엄마', '누구 아빠'를 붙이며 더 심한 욕을 하기 위해 경쟁하는 듯한

아이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욕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 자백을 하는 느낌이랄까?

아이들은 욕설과 비방으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덧 내 순서가 다가왔다.

누군가의 부모를 욕한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욕을 하지 않으면 담임선생의 의심이

나를 향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커졌다.


사실 나는 슈퍼에서 음료를 훔쳐먹다 걸린 이력이 있었다.

음료를 훔쳐먹다 걸렸을 때

슈퍼 사장이 하는 부모님을 향한 욕은

죄책감보다는

'잘못은 내가 했는데 왜 우리 엄마 욕해.'라는

반항심을 앞서게 했다.

걸쭉한 욕을 뽑아낼 내공은 충분했으나

반 친구들 중 가장 약하고, 평범한, 강아지를 표현하는 그런 욕을 했다. 그마저도 죄책감을 느끼면서 말이다


짧고 수위가 약한 욕설에 무리가 조용해졌다.

자리도 돌아가 앉으며, 선생과 눈이 마주쳤고

나를 범인으로 확신하는 것 같은 선생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누군가 돈을 잃어버렸다.

돈을 삥땅(?) 치기 위한 자작극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누군가돈을 훔쳐 갔는지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사람이,

교육공무원으로서 국민이 낸 세금으로 밥을 먹고산다는 사람이

그런 어이없는 발상을 하고 아이들에게

실행시켰다는 것에 화가 난다.

아직도, 가끔씩, 그 상황이 생각나고,

매년 오월이 되면 어딘가에서

스승의 은혜를 들으 '선생 입네.' 하고 있을 그 면상이 떠올라 더욱 화가 난다.

한 번은 교육청 홈페이지를 통해 그 선생을 검색해 보았다.

돈 많은 부모들이 많아 전근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ㅇㅁ 중학교에 체육선생으로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른 선생님들은 전화번호도 노출시켜놓았던데

저도 찔리는 게 있는지 전화번호는 안 적어 뒀다.

실명을 거론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참아야겠지.

그날 함께 있던 50여 명의 아이들은

이런 내 마음에 공감을 표현해 주려나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혹시나 모를.

아니 사실 교육청까지도 이 글이 올라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맺힌 한마디 남겨본다.

ㅈㅎ 선생!! (님은 붙이고 싶지 않다.) 밤길 조심하소!!


스승의 날 때 쓰려고 아껴뒀던 것인데

2020년 새해가 오기 전에

나쁜 감정을 버리는 심정으로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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