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열한백구 Dec 30. 2019

선생님. 선생. 선생놈

스승의 날을 위해 아껴둔 이야기.

중2 때.

담임이 젊은 체육선생이었다.

아침 조회시간마다 푸석한 얼굴에

입에서는 항상 술냄새가 났다.

그 선생 덕(과목이 체육, 아침마다 숙취)에 일주일에 몇 번 없는 체육시간

훈계 시간 또는 적립해놓은 빠따를 맞는 시간이 되었다.

(숙취로 피곤한 날은 노는 날,

컨디션 좋은 날은 빠따 는 날이다.)


그러던 어느 날 체육시간.

반 친구 중에 하나가 돈을 잃어버렸다고 했다.

다들 예상할만한

"선생님은 너희에게 실망했다."

"모두 눈감고 돈을 가지고 간 사람이 있으면 손을 들어라."

"지금 손들면 용서해 주겠다."

와 같은 멘트가 이어졌고,

당연하게도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한참 동안 작은 눈으로 좌중을 째려본 후

출석번호 1번부터 앞으로 불러 냈다.


"지금부터 돈을 훔쳐간 사람의 부모를 욕한다."

<이거슨 무슨 어이없는 시추에이션 > 인가 싶었지만

다들 키득거리면서 누군가의 부모를 욕하기 시작했다.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욕을 어찌 저리 구성지게 잘하는지

'누구 엄마', '누구 아빠'를 붙이며 더 심한 욕을 하기 위해 경쟁하는 듯한

아이들의 모습이 신기했다.

욕을 하지 않으면, 스스로 자백을 하는 느낌이랄까?

아이들은 욕설과 비방으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렇게 어느덧 내 순서가 다가왔다.

누군가의 부모를 욕한다는 것이 영 내키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욕을 하지 않으면 담임선생의 의심이

나를 향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커졌다.


사실 나는 슈퍼에서 음료를 훔쳐먹다 걸린 이력이 있었다.

음료를 훔쳐먹다 걸렸을 때

슈퍼 사장이 하는 부모님을 향한 욕은

죄책감보다는

'잘못은 내가 했는데 왜 우리 엄마 욕해.'라는

반항심을 앞서게 했다.

걸쭉한 욕을 뽑아낼 내공은 충분했으나

반 친구들 중 가장 약하고, 평범한, 강아지를 표현하는 그런 욕을 했다. 그마저도 죄책감을 느끼면서 말이다


짧고 수위가 약한 욕설에 무리가 조용해졌다.

자리도 돌아가 앉으며, 선생과 눈이 마주쳤고

나를 범인으로 확신하는 것 같은 선생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


누군가 돈을 잃어버렸다.

돈을 삥땅(?) 치기 위한 자작극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누군가돈을 훔쳐 갔는지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사람이,

교육공무원으로서 국민이 낸 세금으로 밥을 먹고산다는 사람이

그런 어이없는 발상을 하고 아이들에게

실행시켰다는 것에 화가 난다.

아직도, 가끔씩, 그 상황이 생각나고,

매년 오월이 되면 어딘가에서

스승의 은혜를 들으 '선생 입네.' 하고 있을 그 면상이 떠올라 더욱 화가 난다.

한 번은 교육청 홈페이지를 통해 그 선생을 검색해 보았다.

돈 많은 부모들이 많아 전근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ㅇㅁ 중학교에 체육선생으로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다른 선생님들은 전화번호도 노출시켜놓았던데

저도 찔리는 게 있는지 전화번호는 안 적어 뒀다.

실명을 거론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참아야겠지.

그날 함께 있던 50여 명의 아이들은

이런 내 마음에 공감을 표현해 주려나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혹시나 모를.

아니 사실 교육청까지도 이 글이 올라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 맺힌 한마디 남겨본다.

ㅈㅎ 선생!! (님은 붙이고 싶지 않다.) 밤길 조심하소!!


스승의 날 때 쓰려고 아껴뒀던 것인데

2020년 새해가 오기 전에

나쁜 감정을 버리는 심정으로 브런치에 글을 올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