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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열한백구 May 03. 2019

사진 한 장 ‘인권감수성에 대하여’

정신보건시설에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시행하는 인권교육을  4시간 받아야 한다. 인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모든 직종이 인권교육의 대상이 되는데 정신과 병동에 들어오고 첫 해의 인권교육은 정말이지 실망스러웠다. 병동의 실정에 맞지 않는 이론뿐인 교육이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때리지 않고, 빼앗지 않고, 강압적이 않는 것만이 인권이라고 오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그런 오해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처음에는 그랬었다. 이 이야기는 인권에 대한 나의 생각, 나의 인권 감수성에 대한 이야기 이다.    

수술실에서 근무하다 정신과로 넘어온 지 햇수로 2년째가 되었을 때이다

인권교육을 받고, 바로 밤 근무에 투입되었었다. 교대근무가 익숙해지기 전이었고, 낮에 교육까지 받았으니 그 날은 정말 피곤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피곤한 눈을 부릅뜨고 간호 인계를 들었다.

“A가 입원하셨어요.”

‘아뿔싸.. 하필이면 오늘같이 피곤한 날에 입원이라니.’

입원환자가 있었다. 이 환자분은 오래전에 양극성 정동장애 진단을 받았고, 입, 퇴원을 반복하다가 두어 달 전에 개인 사유로 퇴원했던 분이었다.

“약을 거의 드시지 않았데요."

정신과 질환에 대해 무지한 가족들이 야속했다. 퇴원 시 복약의 중요성에 대해 몇 번이고 교육을 했는데 환자의 고집에 밀려, 약을 먹이지 않았던 것이다. 인계를 들으며, 머리 속으로 A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 본다. 과잉행동이 주를 이루고, 수면 및 식사도 잘 하지 않았으며, 몇 번의 기물파손과 폭력적인 행동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었다.

‘오늘은 안정제 주사를 맞았으니 잘 자겠군.’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병동을 순회하며 환자상태를 살피고, A의 상태를 관찰하기 위해 안정실로 갔다.

고른 숨을 내쉬며 잠들어 있는 A가 보였다. 얼굴을 보니 이전 입원생활 중 치료자를 괴롭혔던 다른 일들이 몇 가지 더 생각이 났다. 저절로 나오는 한숨을 막을 수 없었다.

몸을 돌려 안정실을 나오려는 데 A의 머리맡에 놓아진 사진 한 장이 눈에 들어왔다.

결혼식 사진이었다.

‘아들 결혼식 간다고 퇴원 했어지.’

라이트를 비추어 사진을 보았다. 사진 속의 A는 낯설었다. 양복을 차려입은 A의 단정한 모습. 내가 아는 A는 양극성 정동장애로 수 차례 입원 경험이 있는 정신과 환자일 뿐인데, 사진 속의 A는 아들이고, 아버지이고, 남편이고, 할아버지였다.

‘우리 병동에 있는 모든 환자들이 누군가에겐 소중한 사람이구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신선한 충격이었다.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만 생각했었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그리고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나는 사람과 환자를 분리해서 생각하고 있었고 환자들을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지남침과도 같은 일이지만, 이날 이후 나는 정신과 간호사를 천직으로 삼았고, 인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마음에 새기게 되었다.

환자를 대하는 나의 태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치료자와 환자의 관계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 더 집중하게 되었고, 정신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위 비정상적인 환자들의 행동이나 사고에 대해서도 ‘의학적 소견’을 가지고 판단하기보다는 그 자체가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1년에 한 번 있는 인권교육의 소중함도 몸소 느끼게 되었다. 나와의 어떤 다름을 틀리다로 인식하는 순간이 상대의 인권을 훼손시키는 첫 번째 시작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오늘도 밤 근무이다. 역시나 인권교육을 마치고 바로 출근이다.

정신과에서 간호업무를 수행한지도 햇수로 7년. 정신보건간호사 과정, 중독전문가 과정을 거치면서 나름 유능한 치료자라고 자부하고 있지만, 오늘처럼 심신이 지치는 날에는 모든 것이 힘들다. 하지만 병동 안에서의 내 역할은 중요하다. 이 병동의 한 분 한 분이 누군가에게는 가장 소중한 사람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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