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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열한백구 May 03. 2019

병식(insight) : 병을 알다

며칠 전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었다. 잠을 잘 수가 없었고, 짜증이 늘었고, 작은 소리나 빛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 진통제를 먹고 1시간 정도 낮잠을 자고 나면 괜찮아져서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니 진통제 먹는 횟수도 줄어들고 아픈 머리에 신경 쓰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그렇게 그냥 지나가는 편두통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머니는 걱정이 되었던지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보신 후 나를 한 병원으로 데리고 가셨다. CT, MRI 등 여러 가지 검사를 하였고, 의사와 면담을 하는데 내 머리에 뇌종양이 있다고 하였다. 믿을 수가 없었다. 지금은 두통도 없고, 잠도 잘 자고, 검사 결과에서도 종양이라고 보이는 어떤 덩어리도 보이지 않는데, 뇌종양이라니..

의사의 말이 최근에 발견된 종양으로 현대의학으로는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장비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통증을 겪었을 때의 나의 상태나, 옆에서 어머니가 관찰했던 내용을 들어보니 통계상 뇌종양이 확실하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병원에 입원을 했고, 특별한 증상이 없었지만, 치료진이 주는 약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약을 먹으면 정신이 몽롱해져서 하루의 대부분을 잠을 자야 했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았으며, 양 손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약을 먹고 싶지 않았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이 약들을 그만 먹고 싶었다. 하지만 약을 먹지 않으면 뇌종양이 커져서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데 말이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만들어 보았다. 이 이야기가 정신질환이 없는 사람들에게 얼마만큼 와 닿을지 짐작할 수 없지만, 병식이라는 주제를 다루기 위해 나름의 입장을 가지고 써 본 이야기이다.     

우리는 아플 때 병원에 간다. 아프지 않은데 병원을 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신질환을 가진 대부분의 환자들은 스스로를 ‘아프지 않다.’라고 여긴다. 그런 그들을 치료자는 ‘병식(병에 대한 인식)이 없다.‘라고 이야기한다. 병식이 없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 그것이 정신병원(지금은 정신건강의학병원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하는 일이다. 병식이 없는 환자에게 치료자나 가족은 자신을 병원에 가두어 놓은 나쁜 사람들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일반인들도 정신병원의 치료자나 환자의 가족들은 인권을 유린하며, 강제적으로 감금과 학대를 하는 나쁜 사람들로 보일 것이다.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은 없다. 보호자에 의한 동의입원이 있을 뿐이고, 가끔 그 보호자가 국가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잘못된 방식에 의한 입원을 방지하기 위해 몇 가지의 법적 장치도 만들어져 있다.   

 

정신과적 진단을 내리는 도구로 정신장애진단통계 편람이라는  것이 있다. DSM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발전을 거듭해 최근 DSM-5가 나왔다(1부터 시작해서 2,3,4로 발전함). “이러이러한 증상이 얼마간 지속되면 이 질환이다”.라는 통계적인 내용이다. 객관적은 진단도구라고 말하지만, 병식이 없는 환자입장에서는 전혀 객관적이지가 않다. 팔이 없는 사람에게 팔이 있고 없고를 설득할 필요는 없지만,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이들에게 이런 통계적인 잣대를 들이밀며, 환자로 만들어 버리고, 심지어 많은 부작용으로 불편해지는 약을 먹인다면, 과연 누가 그 환자 역할을 수용할 수 있을까?.

이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읽는 분들이 오해를 말아야 할 것은 DSM의 내용은 상당히 방대하고, 내가 경험한 정신질환을 가진 분들 중에 이 DSM에 어중간하게 걸리는 환자분은 ‘없었다.’라는 것이다. 누가 봐도 딱 정신질환이 있구나 하는 그런 분들이 입원 치료를 받고 있다는 게 정신병원의 진실이다.

그러니 어떤 한 원의 잘못으로 인한 뉴스를 가지고 모든 정신건강의학에 종사하는 치료자를 나쁘게 여기지 않으셨으면 한다. 종합병원이 부정을 저지르고, 개인의원이 염의 온상이 되어도 여러분은 여전히 몸이 아플 때 병원을 신뢰하듯이, 정신건강의학을, 정신병원을 신뢰해 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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