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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열한백구 Oct 21. 2020

바람도 쉬어 가는 곳

간월재 억새 군락지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뚜렷하다고 초등학교 때 배웠는데

언제부터인지 가을이 짧아지기 시작했다.

가을 옷을 따로 구입하는 것이 사치라고 느껴질 만큼의 짧은 계절이 되어버린 가을.


그런데 올해는 가을이 유독 길게 느껴진다.

코로나 덕분에 대기오염이 감소된 탓인지,

아니면 장마가 길어져 뜨겁지 못했던 여름 탓인지,

어찌 되었든

내가 쇼핑 사이트에서 '남자 가을 옷'을 검색하고 있을 정도이니

가을이 길어진 것은 확실하다.

가을맞이 산행을 나선다.

억새 군락지로 유명한 간월재.

(행정구역상 울산이다. 부산사람이 부산여행기에 간월재를 소개하는 것에 대해 울산시민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바람이 쉬어갈 정도로 아름답다고 하는 이곳인데

오늘은 칼바람이 지나는 이들의 몸을 움츠리게 만든다.

가을 햇살 아래에 가만히 앉아

하늘거리는 억새를 지겹도록 바라보려던 욕심은

추위를 이겨내지 못한다.

대피소에서 삶은 달걀과 컵라면을 사 먹고

하산길로 접어든다.

세 걸음에 한 번은 뒤를 돌아본다.

아쉬움을 남기고, 그런 아쉬움이 동행에게 전해지길 바란다.


"너무 이쁘다. 정말 올라오길 잘했어."

흐린 날씨 탓에  반에 반도 못 미치는 간월재건만

칭찬을 아끼지 않는 동행이다.

십여 년 전에 처음 간월재에 왔을 때 느꼈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한다.

파란 가을 하늘, 은빛으로 출렁이던 억새,

가을 햇살에 혀진 의자의 온기, 적당히 식은 보온병의 커피,

기분 나쁘지 않던 다리의 통증 등등


그 아름다움을 너와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더 아름다운 간월재는 내년을 위해 아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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