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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열한백구 Jul 26. 2019

네팔에서 온 편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트레킹

50일간의 인도·네팔 여행.

 “나는 기다릴 자신이 없으니, 나랑 헤어지고 가!” 그녀는 지금 내 곁에 없다.

김광석의 노랫말처럼 ‘내가 떠난 것도,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여행 16일 차.  네팔 1일 차

육로를 통해 인도에서 네팔로 넘어왔다.

삼면이 바다이고, 한쪽은 북한으로 막혀있는 섬나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육로를 통해 국경을 통과하는 것은 특별한 경험일 것이다. 인도의 바라나시에서 국경을 넘어 네팔의 포카라까지, 기차와 버스를 타고 이어지는 24시간의 긴 여정을 돌이켜 보면, 트로트풍의 가요를 흥얼거리는 네팔 소녀의 상큼한 미소와 우리네 재래시장과 닮은 버스 안 풍경이 떠올려지지만, 당시의 감정을 남긴 기록에는 씨 X, 개XX, 등의 욕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두 번은 하고 싶지 않은 경험임에 분명했다. 포카라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9시. 현지 호객꾼을 못 이기는 척 따라가 허름한 숙소에서 짐을 풀고 잠을 청했다.    


네팔 2.3일 차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방을 잡았다. 국경을 넘는 여정이 너무 힘들어서였는지,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히말라야 트레킹 permit을 받고, 해 질 녘쯤이 되어서야 어슬렁거리며 포카라를 돌아다녔다. 허름한 한식당 ‘소비 따네’에서 네팔 전통주인 ‘창(막걸리와 비슷함)’과 김치전을 먹고, 현지에서 만난 친구들과 기타 치고 노래 부르며, 서로의 삶을 나눴다.   


네팔 4일 차. 트레킹 1일 차.

우연히 알게 된 버스 덕분에 편안하게 첫 목적지에 도착하게 되었다. 버스 하차 후 2시간 정도 완만한 길을 올라  간드룩에 도착했다. 아직은 한국의 산천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풍경이지만, 이미 해발 1940M, 한라산 보다 10M쯤 낮은 곳이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천둥 번개, 비바람이 몰아쳤다. 남쪽에서 올라온 비구름이 히말라야를 넘지 못하고 쌓이고 쌓여 오후 즈음 미친듯한 날씨 변화를 보여준다고 했다. 한국과는 다른 천둥번개의 무서움도 느꼈다. 시선이 미치는 모든 하늘을 찢어버리는 듯한 번개와 땅을 흔드는 천둥소리에 옛사람들이 왜 제우스를 최고의 신으로 생각했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한국의 사고소식을 접했던 참이라 마음이 무거웠다. 뒤집힌 배 안, 어둠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을 아이들의 마음을 나눈 것 일까? 갑자기 어두운 방안에 혼자 있는 것이 두려워졌다. 울며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다.


트레킹 2일 차

거짓말 같이 맑은 날씨. 멀리 설산이 보였다. 해발 3000M 이상부터는 고산증에 대비해야 해서  트레킹 초반 이틀은 이동거리를 길게 잡았다. 로지 비용을 지불하고 출발했다. 숨이 찰 때쯤 등 뒤에서 딸랑거리는 방울소리가 들렸고 등짐을 지고 산을 오르는 당나귀 떼를 볼 수 있었다. 1000M 고도를 내리고 올라 촘롱에 도착했다. 이른 점심을 먹고, 건너편 산자락에 보이는 시누아를 바라보았다.

2일 차의 목적지였다. 눈 앞에 보여 만만하게 생각했는데, 끝없이 이어지는 돌계단은 두어 걸음에 한 번은 쉬어야 할 정도로 힘든 코스였다.

내가 걸었던 코스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로 줄여서 ABC 트레킹이라고 불린다. 안나푸르나는 에베레스트의 8000M급 산중 하나이고, 네팔어로 풍요의 여신이란 뜻이다. 이름처럼 트레킹 코스 양쪽으로는 가파른 언덕을 깎아 만든 계단식 밭들 볼 수 있다.

급격한 내리막길 1시간. 급격한 오르막길 3시간을 내리고 오르니 로지촌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체력은 바닥이라 보이는 로지마다 방을 구해보았으나, 빈 방이 없다고 했다. 눈물을 삼키고 한 시간여를 더 올라 시누아(해발 2340M) 끝자락에 위치한 로지에방을 잡을 수 있었다. 운 좋게 한국인 한 분이 묵고 계신 방이 있었고, 남은 침대 하나를 얻 수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중국인 단체가 올라오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로지 주인들이 2인 1실인 방을 나에게 내어주지 않은 것이었다고 했다. 시누와를 지나면 표지판이 하나 있다. 육식을 금하고, 육류의 반입을 금하는 내용이 적힌 표지판이다. 네팔에서 산 신성 시 되기 때문에 이 표지판 이후로는 육식도 안 되고, 육류의 반입도 안 된다.

한국인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고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되었다.


트레킹 3일 차

3일 차 코스는 가이드북에 수월하고 이쁜 길이라고 소개되어 있었다. 뱀부와 도반을 지나 히말라야 호텔에서 점심을 먹고 데우랄리(3230M)까지 가는 코스였다.

히말라야 호텔을 지나면 풍경이 바뀐다. 수목한계선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녹색이 점점 사라지고, 눈 덮인 암석 자주 보였다. 본격적인 고산 트레킹의 시작이라고 가이드북에 적혀 있었다. 질소가 충전되어 있는 과자봉지들은 어느새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고, 조금만 움직여도 호흡이 가빠졌다. 그래서 더욱 고산병에 주의하면서 움직였다. 물도 자주 마시고, 혈액순환을 위해 아스피린과 나트륨을 배출해주는 이뇨제도 함께 복용했다.

어느덧 익숙해져 버린 늦은 오후의 불안정한 날씨를 즐기며 데우랄리에 도착했다. 어젯밤을 함께 보내었던 한국인 아저씨가 방예약해 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낯선 에서 나를 반겨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었다.    


트레킹 4일 차

아침에 일어나니 얼굴이 심하게 부어있었다. 고산 증상 중 하나라고 했다. 다행히 어지러움증이나 구토 증상은 없었다. 오늘은 마차푸레나 베이스캠프(MBC)에 숙소를 잡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에 가서 점심을 먹는 일정이었다. 지난밤에 로지 앞에 눈사태가 났었고, 계곡을 지날 때 특히 위험하다고 하여 풍경을 감상할 틈도 없이 열심히 걸었다. 그렇게 3시간을 걸어 MBC에 도착했다. 사방의 설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곳이었다. 설산 정상에서는 설연이 피어오르고, 맑은 날씨 덕에 파란 하늘이 대조되어 더욱 아름다웠다. 4일간의 고생이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MBC에 숙소를 잡고  한시간 정도 눈길을 걸어 ABC로 갔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공기층이 얇아서 인지 30년간 내가 봐 오던 하늘색이 아니었다. 지금도 눈을 감고 상상하면 그 선명한 파란색에 가슴이 떨리고, 눈앞이 아찔해지는 듯하다. MBC에서 잘 보이지 않던 마차 푸레나의 전체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세계 3대 미봉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았다. ABC에 조금 더 올라가면 산악인 박영석 대장의 묘비가 있다. 안나푸르나에 코리안 루트를 만들기 위해 등정하던 중 눈사태에 휩쓸려 다른 대원 두 분과 함께 돌아가셨다고 했다. 세분의 묘비 앞에서 누군가는 슬퍼했고, 누군가는 아쉬워했다.

'누가 불행한가? 또는 누가 행복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좇다 죽은 그대들과 꿈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저 살아가는 있는 우리들..

소비 따네에서 함께 불렀던,  John Lennon의 Imagien 이 귓가에 맴돈다

You may say that I'm a dreamer~~~    


트레킹 5일 차. 6일 차.

하산길이다. 나도 모르게 계속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ABC에서 보았던 설산과 하늘색은 꿈에서 본 것 마냥 현실감이 없었다. 박영석 대장의 밝은 미소만 생각이 났다.    

히말라야의 파란 하늘, 그 하늘과 대비를 이루는 하얀 설산,

밤하늘의 선명한 별빛과 하늘거리는 반딧불이가 그립다.  Namaste        


인도/네팔 여행 후 그 후유증으로 현실감없이
지내던 2014년 여름, 이 글을 부산간호 라는
부산시간호협회에서 발간하는 잡지에
기고하고 나서야 현실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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