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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열한백구 Jul 31. 2019

Thai story wity my mom

우연히 보게 된 사진 한 장..

우연히 보게 된 사진 한 장..

그 사진은 배낭여행을 하고 있는 엄마와 아들의 사진이었다.


잊을만하면 뉴스를 장식하는 항공 사고소식에 해외여행을 꺼려하시는 어머니를 6개월간 설득하고, 준비하여 태국의 방콕에 다녀왔다. 어머니에게 배낭여행의 자유로움과 여유를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는데, 요즘 부쩍 무릎이 안 좋으신 관계로, 자유여행이지만 현지 여행사의 패키지를 최대한 이용하는 일정을 계획하였다.

삼십여 년 간 한 번도 볼 수 없었고, 아니 보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한 여자의 모습을 가슴에 담을 수 있었던 3일간의 소중한 추억을 짧은 글로 정리해 보려 한다.


어머니는 서른셋의 젊은 나이에 남편을 여의고 삼 남매의 보호자이자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내 어렸을 적 기억의 어머니는 늘 강한 모습이었다. 아버지의 외투를 걸치고 가게 일을 하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김해공항의 출국장에서부터 방콕의 호텔까지 나의 소매를 놓지 못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은 조금은 낯설고, 신선하고,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낯선 곳에서의 긴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싫어서, 어머니는 그토록 아들과의 여행을 거절하셨었나 보다.    


호텔에서 간단한 아침식사 후 첫날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수상버스를 이용하여 왕궁과 사찰을 둘러보고, 열대성 폭우 속에서 어머니와 단둘이 비를 피하며 점심도 먹고, 길을 잘못 들어 한참을 헤매기도 했지만, 어머니와 함께 하는 매 순간순간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태국 마사지로 하루를 마감하고 숙소에 돌아와 하루종일 찍은 사진을 봤다. 사진 속의 어머니는 굳은 표정을 풀지 못하고 계셨다.   

 


다음 날은 현지 여행사 패키지를 이용하여 방콕 근교의 수상시장에 다녀왔다. 지난 방콕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라 어머니에게 그 느낌을 전해 주고 싶었다. 몇 년 전 보다 더 관광지 화 되어버린 수상시장이라 예전 정취를 느끼기는 힘들었지만, 내가 전해 주고 싶던 감정이 어머니에게 조금은 전달되었으리라 희망해 본다. 예전 방콕 여행에서 잠깐 스쳐갔던 한 여자에 대해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름도 국적도 모르고, 보트를 타고 스치며 카메라로 서로의 모습을 담았던, 용기가 없어 배를 세우지 못했던, 3초 정도의 인연에 대해서 말이다. 한국에서는 이야기할 수 없었고, 할 생각조차 없었던 주제의 이야기들이 술술 잘도 나왔다.

숙소로 돌아온 오후에는 옥상의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내었다. 한 번도 입어 본 적이 없을 비키니 수영복을 어머니께 권했다. 극구 사양하셨지만, 육중한 서양 여성들의 비키니 자태를 보시고는 고민하는듯한 표정을 지으셨다. 몇 번 더 권했으면 입으셨으려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살짝 후회되는 부분이다. 붉은 조명의 노천카페에서 저녁식사와 함께 한국에서 가져간 소주로 둘째 날을 마무리했다.   


셋째 날은 아유타야 패키지를 예약해 둔 상태라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섰다. 방콕의 카오산 거리는 더 이상 어머니께 낯선 곳이 아니었다. 노천카페에서 망고 셰이크와 커피를 주문하고 여행자 버스를 기다렸다. 옆자리에 영국의 노신사가 말을 걸어도 전혀 당황하지 않으시는 우리 어머니.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여유를 찾으신 듯하다. 동남아 특유의 느림에도 익숙해지신 듯, 버스가 50분이나 늦게 도착했지만 전날과 달리 당황하지 않으셨다. 지난 방콕 여행 때는 홍수로 아유타야 가지 못했었는데 어머니와 함께 새로운 곳을 가게 되니 이 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일정 관계로 포기했던 코끼리 트레킹도 저렴한 가격에 할 수 있었다. 뒤늦게 찾으신 여유로움 만큼, 여행의 막바지를 아쉬워하시는 어머니를 달래며,  함께할 다음 여행을 계획해 본다.     


혼자만의 여행을 고집하다 처음으로 함께한 동행이 어머니라는 것이 나에게는 특별했다. 방콕은 낯익지만 어머니와 함께 있는 방콕은 신선했다. 어머니와 함께 관광하는 것도 좋았지만 오롯이 둘이써 차 마시고, 밥 먹고, 대화 나눌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된 것에 더욱 감사함을 느꼈다.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큰

변화 생겼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만 둘만의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생긴 것은 확실하다.


                                                       2015.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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