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을 하기로 결심했다.
베트남 생활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스페인 순례길을 걷는 것이었다. 다낭에서 살게 된 일은 그래도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사건 중에 하나인데, 한 달 동안 스페인 순례길을 걸으면서 이 사건을 아름답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큰 사건을 통해 과거의 한성호와 지금의 한성호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떤 한성호가 될 것인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베트남에서 생활을 하다 보니 내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마땅한 기술을 가진 것도 아니고, 부양해야 하는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잃으면 땅을 치고 후회할 만큼 많은 돈을 모아 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베트남으로 떠나오면서 알게 모르게 정리된 인간관계까지 나를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느끼게끔 만들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여행의 부피가 점점 커졌다. 잃을 게 없으니 뭐든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게 스페인 순례길까지 가는 길 또한 여행을 하며 가기로 마음먹었다. 그것도 비행기를 타지 않고 육로로만 다니면서 말이다.
다낭에서 지내는 일, 세계여행을 하는 일, 둘 다 굉장히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특별한 경험을 한 사람이니까 한국으로 돌아온 한성호의 모습은 보다 성숙해져 있어야 맞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여행을 하는 내내 나름대로 고군분투했다. 물론 여행도 결국엔 반복이라 지겨웠던 순간이 분명 있었고, 비교적 시간 여유가 많은 여행 었기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날들도 꽤 많았다. 그러나 나는 모든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붙잡으려 매일매일 일기를 썼다. 모든 순간을 기록으로 남겨,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다 언젠가 살면서 또 고군분투가 필요할 때, 인생이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 다시금 꺼내 볼 생각으로 매일매일 일기를 썼다.
여행 100일 차쯤 때부터 쓴 일기는 모아보니 꽤 많은 분량이 되었다. 그 당시 나는 그 일기를 개인 SNS에 업로드했었는데, 꽤나 인기기 좋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친구들과 부모님께만 말이다. 사실 남들은 내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내가 특별한 사람도 아니니 그럴 만도 했다. 굳이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인들이 나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좋아요를 눌러주고 댓글을 달아주는 일이 정말 기뻤다.
바로 그때, 나는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을 했다.
글을 쓰는 일, 그러니까 일기를 쓰는 일은 늘 즐거웠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어렸을 때 나는 관심종자였다. 그 당시 유행하던 미니홈피에 되지도 않는 감성글을 써서 친구들의 심금을 울리는 게 좋았고, 페이스북이 한창 유행할 때에도 글을 써서 올리고,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하는 일이 즐거웠다. 그런 의미로서 나는 계속해서 내 개인 SNS에 공개 일기를 썼다.
매일 일기를 쓰기로 스스로 약속 한 바람에, 이걸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버거울 때도 많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내게 도움이 되었기에 그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나는 나의 치유를 위해서 글을 쓴다. 내가 우울할 때, 어떤 고민에 빠져 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그럴 때면 글을 써서 내 생각들을 정리하게 되는데, 그렇게 정리가 되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하루 동안 들었던 복잡한 생각들을 나열하다 보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다 명확히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흐름에 맡겨 글을 쓰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하루 종일 내리지 못했던 질문에 답을 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나는 내 마음의 치유를 위해서 글을 썼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이, 어느 누구에게도 닿아 치유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더군다나 글을 잘 쓴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기도 하니까, 이 개인 SNS에 올렸던 글들을 엮어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렇게 여행이 끝나고 나면, 남은 돈으로 책을 출판하리라 마음먹었다. 그것이 내 여행의 진정한 끝이라고 여겼다.
나는 2020년 초, 전 세계적으로 아직까지도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웃긴 게 나는 여행도 1년을 채우지 못했다. 이 정도면 정말 내 팔자에 1년 동안 같은 일을 하는 팔자는 없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한국으로 돌아온 초창기에 나는 꽤 행복했다. 그런 행복한 마음으로 여행하는 내내 계속해서 꿈꾸었던 책을 출판하는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매일 같이 출근하듯 집 앞의 카페에 가서, 해가 질 때까지, 남들이 퇴근하는 시간을 한참 넘어서까지 '일기'라는 원석을 계속해서 세공했다.
이 '일기'는 보석이 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누구보다 특별한 여행을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글쎄,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여행가들이 참 많겠지만, 나처럼 육로로 세상을 여행하려고 했던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런 의미로서 나는 스스로를 여행자가 아닌 여행 가라고 생각했고, 이 여행가의 이야기는 꽤 차별성이 있을 것이라고 자부했다. 무엇보다 내겐 베트남에서 3개월간 오토바이를 타며 여행했던 이야기가 있으니, 이 이야기만큼은 꽤 먹어주는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대형 출판사와의 계약을 꿈꿨다. 독립출판이 아닌 대형 출판사와 계약을 맺어 아주 유명한 여행기가 될 것이라는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다듬어진 나의 일기는 말이 좋아 원고였지, 다듬고 다듬어도 '일기'일 뿐이었다. 소위 말하는 '뻘글' 말이다. 나는 자고로 원고는 것은 책으로 출판이 되고 나서야 원고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책으로 출판되기 이전까진 그저 단순한 글일 뿐, 그것을 원고라고 부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 그렇다면 내 글은 그냥 글이었다. 그것도 '뻘 글'. 자신감에 가득 차서 나의 이야기로 여러 출판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내 이야기를 반겨주는 출판사는 없었으니까 말이다.
'출판사의 성격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원고 투고에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출판사의 재정이 어려워 당분간 출판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제와 다시 그 글을 읽어보면, 거절당하고도 싼 글이다. 재미라곤 찾아볼 수 없음에도 도대체 왜 나는 꽤 승산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욕심을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여전히 욕심쟁이였나 보다. 하루에 많게는 20곳, 적어도 5곳에는 매일 원고를 투고했는데, 그렇게 투고한 만큼 내 메일함은 거절의 의미를 담은 메시지로 가득해졌다. 그리고 메일함에 그런 메일들이 쌓여 가는 만큼, 내 자신감은 차츰차츰 줄어들었다.
글쎄, 누군가 내게 여행작가가 꿈이었냐고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답해야 할 것만 같다. 생각보다 나는 여행작가가 되는 일을 진심으로 바랐다. 나보다 더 어린 사람이, 나보다 더 멋진 문체로 쓴 여행기가 서점에 걸려있고, 그것이 사람들 사이에서 자꾸만 회자되고 인기를 끄는 게 배가 아팠던 거 보면 나는 정말 진심이었다. 나는 여행작가가 꿈이었다.
그러나 내 꿈은 정말 쉽게 꺾여 버렸다. 거듭되는 거절 속에, 나는 더 이상 글을 쳐다보고 싶지도 않아졌고, 이만하면 정성을 보였지 않나라고 생각하며, 노트북을 덮었다. 다시 수정해서 도전해 볼 생각은 하지조차 않았다. 오래도록 꿈꿔온 일이 아니어서일까, 참 쉽게 무너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시 한번 출판에 도전을 해보고자, 요새 들어 다시 그 글을 수정하고 있다.
나는 여행 작가가 되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아니 솔직한 마음으로, 그래, 되고 싶었다. 내 여행기를 팔아 돈벌이를 하고 싶었다. 그런데, 첫 시작만큼은 여행 작가가 되고자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여행작가가 되기를 실패한 지금,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그때의 마음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책을 출판하고 싶다고 맘을 먹던 그때, 그때는 여행작가가 되건 말 건, 책을 내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나는 관심종자니까. 내 글이 사람들에게 읽히는 그때의 조마조마함이 좋았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그 당시의 난, '나의 치유를 위해 썼던 글이, 누군가에게도 치유 의미로 닿았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굳이 작가가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내가 쓴 글을 치유가 필요한 사람에게 선물하면 되는 것이다. 이것은 오히려 여행작가가 되어 내 글이 읽히는지 안 읽히는지 알지도 못한 채 여기저기 뿌려대는 것보다, 훨씬 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과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훨씬 더 원초적이고, 훨씬 더 순수하며, 훨씬 더 의미 깊은 일이다.
그래서 다시금 도전해보고 있다. 이번에는 내 돈 주고라도 책을 꼭 출판할 것이다. 여행자가가 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내 책을 출판하는 것, 그 자체가 목표였으니까. 그렇게 출판한 책을 내가 바라는 대로,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하나씩 하나씩 선물할 생각이다.
그래, 내 돈 주고라도 출판하자.
근데, 남의 돈으로 출판하고 싶은 이 욕심은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