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에 들지 않는 파티원에게 복수하기" - 2

다낭에서 생긴 일

by 한성호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내가 진행하는 투어의 마지막 코스에는 마사지샵이 있었다. 추가 금액을 내고 마사지 코스까지 예약한 손님들은 투어가 다 끝나고 나면 나의 안내에 따라 마사지샵으로 이동했다. 그런 마사지샵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당신네들이 예약해 놓은 마사지샵에서 마사지를 받다가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이에 따른 보상을 요구합니다.'


그 손님은 마사지를 받으러 방으로 들어가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참을 지나도 마사지사가 들어오지 않자 의아해하고 있는데 마침 땀으로 범벅이 된 어떤 여자 마사지사가 들어왔다고 했다. 그 마사지사는 손님에게 마사지 가운으로 환복 하는 것을 안내하지 않고, 그저 옷을 벗으라는 이야기만을 반복했다고 한다. 그렇게 의아해하며 마사지를 받는데, 땀으로 젖은 마사지사의 터치가 마사지가 아닌 성추행으로 느껴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회사에다 클레임을 건 것이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가이드분이 있었다면 제가 이런 일까지 당했을까 싶네요'라고 이야기했다.

그 마지막 한마디가 나까지 이 사건에 연루되게 옭아맸다. 물론 그 손님의 이야기대로 내가 더 끝까지 손님을 신경 썼더라면 그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로서 그런 일을 당하신, 그런 기분을 느끼신 그분의 사연이 정말 진심으로 안타깝다. 그러나 공식적으로 내 업무가 종료되는 것은 마사지샵으로 안내하는 것까지였다. 마사지샵에서 마사지 예약이 잘 되었는지 체크하고, 몇 시까지 나오시면 저희 기사님이 묵으시는 호텔까지 안전하게 모셔다 드릴 것이라는 걸 안내하는 게 나의 마지막 할 일었다. 그러니 나는 판단만으로 일찍 퇴근한 것이 아니라, 공식적인 나의 업무가 끝이 났기 때문에 퇴근을 한 것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웃긴 점이 하나 있다. 그날 나는 끝까지 마사지샵에 남아 있었다는 점이다. 마사지샵 직원들과 수다를 떠느라, 그 손님이 나오는 모습까지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 그리고 그 손님과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고, 숙소까지 잘 이동하실 수 있게 버스까지 태워드렸는데, 이런 클레임을 제기한 것이다. 글쎄, 그날 마사지를 받는 사람이 많았어서 내게 웃어 보인 그 사람이,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그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그렇게 웃어 보였던 사람이 흑심을 품고 회사에 그런 클레임을 걸었다는 거에 배신감을 느꼈다.


"사건이 생각보다 커져서 법정 소송을 앞두고 있어. 하... 물론 나는 네가 잘 못한 게 없다고 생각해"


image_3782096171542945248248.jpg


사건을 접하자마자 걸려온 팀장의 전화였다. 텍스트로만 봐서는 굉장히 나를 위로하는 착한 팀장 같아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굉장히 잘라내고 다듬어 순화시켜서 표현했을 뿐인데, 그녀는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클레임을 걸었던 그 손님을 육두문자를 섞어 욕하고 있었다. 나를 위로하기 위한 전화는 단언컨대 아니었다. 그저 이런 상황이 생겨서 짜증 난다는 것을 히스테리적으로 내게 풀어 댈 뿐이었다. 게다가 종종 한숨 섞인 어조로 '그러게 도대체 왜 그랬어'라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나는 근 한 달 동안 이 사건에 시달렸다. 투어가 끝나면 문제의 마사지샵을 찾아가 증거를 수집했다. 그때 그 마사지사는 지금 어디 있는지 수소문을 했고, (그 마사지사는 마사지샵 소속이 아닌, 그날만 일당을 주고 부른 마사지사여서 어떤 방법으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마사지를 하기 전에 손님이 작성한 체크리스트를 찾아다녔다.(물론 이 또한 손님이 썼는지 안 썼는지 알 수도 없을뿐더러, 체크리스트에 본인 이름을 적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기에, 찾을 수가 없었다) 아주 사소한 증거라도, 회사의 승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기에 매일 저녁 증거 수집을 해서 장문의 카톡으로 팀장에게 보고해야 했다. 그리고는 '이 모든 게 한성호 네 탓이다.'라는 뉘앙스가 가득 담긴 '알겠어'라는 짧은 답장을 보고 잠들기를 반복했다.

처음엔 너무 어벙벙한 상황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이건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편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는 사람인데, 내게 괜찮냐고 네 잘못은 없으니 우리가 잘 해결해보겠다는 한마디 말도 없이, 나를 거짓말쟁이 취급하고 그것도 모자라 또 여기저기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나를 이용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나는 이 생각에 대한 당연한 순서로서 퇴사를 결심했다.

그렇다고 특별한 사건이 또 생긴 것은 아니었다. 다른 날과 다를 것 없이 내 휴무일에 증거를 수집해 오라며 팀장의 전화가 걸려왔는데, 그날따라 유독 그 팀장의 업무 지시가 달가웠다. 드디어 복수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내가 말일 지금 시킨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곤란해지는 건 팀장의 몫이었다.

나는 이 모든 걸 팀장에게 돌려줄 생각을 하며 전화를 끊고, 팀장 위에 있는 부서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를 가이드 자리에 낙하산으로 앉혀주신 그분이신데, 그에게 전화를 걸어 정말 죄송하지만 나는 더 이상 못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 전화가 끝난 뒤로 부서장은 팀장을 불러다가 대차게 야단을 쳤다. 도대체 얘가 갑자기 왜 이러냐며, 직원 관리 똑바로 안 하냐며 팀장을 호되게 질책했다. 보지도 않고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다시 팀장의 전화가 걸려왔기 때문이다.


"야 너 XX, 하... 왜 도대체 왜 그러는데 미쳤어?"


승리였다.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아무런 말도 듣지 않고 원래 이때쯤 그만둘 생각이라는 말만을 반복했다. 도무지 대화가 안 되겠다는 생각이었는지 팀장을 전화를 뚝 끊어버리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나도, 우리 회사도 굉장히 바빠졌다. 회사는 나의 빈자리를 어떻게든 메꿔보려고, 그리고 나는 도의적인 책임을 다하느라고 바빴다. 회사는 예약된 투어들을 취소하거나, 다른 사람들을 섭외해 자리를 메꿨고, 아직 예약이 없는 날들은 잠정적으로 판매를 중단해야 했다. 나도 열심히 도의적인 책임들을 다했다. 내 일이 끝나는 날짜가 나와 있으니,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그때까지의 투어를 진행했고, 회사의 뒤처리를 도왔다. 또 내가 빠진 뒤, 개편될 투어 상품을 함께 기획하기도 했다.

그런데 육두문자가 섞인 전화를 끝으로, 팀장은 내게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퇴사의 모든 절차는 부서장님께서 직접 알려주고 도와주셨다. 나는 차라리 이게 좋았다. 팀장은 애써 괜찮은 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팀장은 나와 기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없더라도 회사는 잘 굴러갈 것이라는 것을 내게 보여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힘들어지는 것은 팀장 쪽이었다. 한국 사무실에 남아있는 다른 직원들, 동기들을 통해 나는 그러한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그저 해볼 테면 해보라지 같은 심정으로 그런 그녀를 비웃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팀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상사에게 대차게 깨졌는지, 아니면 정말 내가 없이 답이 나오지 않아서였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녀는 예전과 다르게 한 껏 풀이 죽은 목소리를 하고 있었다.


"성호야"

"네 팀장님"

"그... 나 때문에 그런 거라면 내가 사과할게 퇴사 안 하면 안 될까?"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때 내가 너무 정신이 없어서 세게 말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서운했다면 사과할게, 미안해"


화룡점정.


Schermafbeelding_2017-03-10_om_14.40.56.png


이렇게 내 복수극은 아주 완벽한 마무리로 끝이 났다. 그녀의 진심 어린 사과도 들었고, 나의 퇴사를 되돌려보고 싶어 회유하는 이야기까지 들었다. 언제부터 시작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긴 시간 동안 복수의 칼날을 간 끝에 아주 예리하게 상대의 급소를 넉다운시킨 기분이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 이런저런 문제들로 회사에서 쫓겨나듯 퇴출당한 팀장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그거 다 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때문이야.'라고 이야기하며, 속으로 꼴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와 생각해보니 참 유치하고 쪼잔한 복수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되려 패배자는 내가 아니었을까. 객관적인 상황만 놓고 봐도 나는 실직자였고, 그녀는 그 뒤로도 한동안 '팀장'의 자리를 유지하며 월급을 받았다. 나는 퇴사를 결심한 순간부터, 그러니까 최소한 6개월은 스트레스를 꾹꾹 참아가며 일을 처리하고, 복수의 칼날을 간 사람이었는데, 그녀는 내가 퇴사함에 따라 고작해야 한 달? 두 달 정도만 스트레스를 받고 끝나버렸으니 말이다.

영화를 보면 폭발물을 설치한 건물을 터뜨리며 허겁지겁 뛰어나오는 등장인물이 나온다. 그 사람은 폭탄을 설치하는 것부터 힘들었다. 여기저기 허겁지겁 폭탄을 설치하느라 간신히 폭발하는 건물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내가 딱 그런 모양이었다. 나는 적의 심장부에 딱 하나의 폭탄을 설치하고, 담뱃불에 불을 붙이며 유유히 빠져나오는 그런 멋진 등장인물을 하고 싶었는데, 그러질 못 했다. 나는 그저 '두고 봐라'라는 심정으로 눈이 멀었던 사람이다.

나는 힘들어도 잘 버티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 버틸 수 있는 힘을 가진 강자여서 버텼던 것이 아니다. 내 배터리는 '내공'이 아니라 '복수'였다. 중국산 짝퉁 같은 아주 저렴한 배터리다. 이 배터리는 분명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이전 09화"맘에 들지 않는 파티원에게 복수하기"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