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에 들지 않는 파티원에게
복수하기" - 1

다낭에서 생긴 일

by 한성호

"내 군대 후임이 여행사에서 꽤 높은 자리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 베트남 다낭에 가이드가 필요하다고 하더라고. 네가 여행도 좋아하고 하니까 혹시나 해볼 생각이 있나 싶어서 연락했어"


나의 허접한 무대디자인 포트폴리오가 계속해서 문전박대를 당하던 어느 날, 나는 정말 뜬금없는 제안을 받았다. 평소 친형처럼 생각하는 형님이 일자리를 찾고 있는 나를 위해 일자리를 알선해주신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여행 가이드 일 줄이야. 내가 무대 디자이너가 되겠다고 이 형님께 말한 적이 없던가...?


나는 생각할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나는 내가 한국에 남아 있을 때의 장단점, 다낭으로 떠났을 때의 장단점을 A4 용지에 하나씩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혼자 살 수 있다', '외로울 것이다.' 같은 애매모호한 장단점이라도 전부 적었다. 그 둘을 비교해서 장점이 하나라도 많은 쪽을, 단점이 하나라도 적은 쪽을 선택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다낭으로 떠나 건 떠나지 않건, 새로운 일이 시작되는 때라는 것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대 디자이너로서의 새로운 삶, 여행 가이드로서의 새로운 삶, 피차일반이었다. 그렇게 조금은 내 운명을 점치는 기분으로, 각각의 선택에 따라 생기는 장단점을 아주 사소한 것까지 전부 적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에 남았을 때의 단점이 조금 더 많았다. 그럴 만도 한 게, 나는 원래부터 여행이라는 것을 좋아하던 사람이었고 모험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가 현재 닥쳐있는 상황은, 객관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길을, 될지도 안 될지도 모르는 일을 계속해서 뚫고 나가야 하는 조금은 암담한 상황이었다. 매일매일이 뿌듯하긴 했지만, 언제 취업이 될지는 모르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다낭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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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내 인생 정말 다이내믹하게 흘러간다'

다낭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다이내믹하게 펼쳐지는 내 인생에 자꾸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제안을 들은 지 하루 만에 면접, 면접이 끝난 지 사흘 만에 첫 출근, 그리고 첫 출근을 한지 열흘만에, 나는 달랑 캐리어 두 개와 함께 베트남 다낭에 던져졌다. 합쳐서 보름 만에, 그동안 쌓아두었던 모든 걸 내려놓고 갑자기 완전히 새로운 삶을 마주하게 된 것이다. 양가적인 마음이 참 많이 들었다. 내 인생이 한편으론 다이내믹해지는 것 같아서 재밌기도 했대가, 이렇게 살면 너무 어중이떠중이로 남게 되지 않을까 싶은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정작 다낭에 도착해보니 이런 불안한 마음은 사치였다.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그곳에선 도망칠 곳이 없었다. 만일 그곳이 국내의 어딘가라도 됐더라면, 힘들 때 다 때려치우고 몰래 걸어서라도 집으로 도망칠 수 있었을 텐데, 여기선 그럴 수가 없었다. 마침 통장 잔고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살 수 있는 정도도 안되니까, 어떻게든 나는 이 상황을 견디고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저런 인수인계를 받느라, 그리고 다른 가이드의 투어를 따라다니면서 녹음하고 메모하느라 정신없는 2주를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나의 첫 번째 투어가 시작되었다. 굉장히 떨렸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성공적인 투어를 마쳤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들어둔 '가이드 예상 시나리오'에 있는 모든 이야기들은 다 전달했기 때문이다. 이 시나리오는 한국에 있을 때, 급하게 사무실로 출근하는 바람에 출입증도 만들지 못하고, 그래서 화장실도 제 때 못 가며,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서 만들어둔 시나리오였다. 사무실로 출근은 했는데, 할 일이 없으니까 나는 그 2주 동안 시나리오를 대본 외우듯 달달 외웠는데, 그 시나리오가 정말 투어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예상 시나리오를 대본 외우듯 외운다는 것이, 지난번 방탈출 카페에서 일할 때처럼, 연극과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투어는 끝나는 날이 정해져 있지 않은 오픈런 공연과 똑같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관객들 앞에서 외워뒀던 대사를 똑같이 반복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자고, 그리고 다음날에도 그걸 반복하고, 그런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과 똑같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3개월 그리고 경우에 따라 더 늘어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던 수습기간을 앞당길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내가 해온던 일이라서, 그리고 매일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할 뿐이라서 쉽게 적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떠난 지 한 달 반 만에, 그러니까 정확히 이야기해서 가이드로서의 업무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인턴 딱지를 떼고 나는 여행사의 정직원이 되었다. 시급도 아니고, 월급도 아닌, 연봉으로 내 급여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난생처음으로 내 이름이 박힌 명함도 만들었다. 물론 명함이 만들어졌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을 뿐, 정작 내 명함은 한국에 있긴 했지만, 나는 그 명함을 이미지 파일로 다운로드하여 여기저기 자랑을 하고 다녔다. 물론 부모님께도, 어엿한 회사원이 되었다며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그 어떤 누구보다 나의 가족들이 나의 정규직 전환 소식을 크게 반겨 주었다. 돈을 아껴야 한다며 내게 국제전화 거는 일을 아끼시던 할머니께서 울먹이는 목소리로 연락을 해 오실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글쎄, 어렸을 때부터 예술가가 되겠다며 취직은 강 건너 불구경하 듯하고, 연극을 하겠다느니, 무대 디자이너가 되겠다느니 돈이 안 되는 것들만 골라서 이야기했던 손자에게 번듯한 직장이 생겼다니, 그게 우리 할머니에게 안도감을 드렸나 보다. 나는 드디어 속 썩이는 일을 하나는 줄였다는 생각을 했다. 이제 진짜 어엿한 성인이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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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쉽게도 이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다낭에서 굉장히 풍족하게, 행복하게 생활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내 생활이 점점 불만족스러워졌다. 오픈런 공연의 최대 단점은 매너리즘이다. 매일매일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니까 삶이 지루해지는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3, 6, 9 법칙'이라고, 직장 생활 3년 차, 6년 차, 9년 차 때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권태기가 심하게 드는 때가 온다던데, 나는 이게 3개월 차에 처음 왔다.

그 권태기를 열심히 극복해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한국 사무실에서 주는 눈치 또한 너무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분명 내 앞에서는 아주 즐겁게, 행복하게 여행하고 돌아가신 손님이, 다른 일로 회사에 클레임을 걸면, 그 모든 비난의 화살이 내게 돌아왔다. 손님이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이 도대체 왜 내 잘 못이란 말인가. 또, 다른 손님의 숙소가 멀어서, 그 손님을 제외한 다른 손님들을 버스에 오랫동안 태운 게 왜 내 잘못이란 말이가, 그 루트는 내가 구성한 게 아닌데. 차라리 내가 회사 모르게, 손님들에게 라텍스 베개를 판다던가, 노니를 판다던가 해서 뒷 돈을 챙겼다면 억울하지도 않을 텐데, 나의 팀장은 그저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매일매일 내게 히스테리를 부려댔다.

처음부터 약속했던 나의 요구사항 또한 지켜지지 않았다. 나는 3개월마다 비자를 갱신해야 할 때, 한국으로 휴가를 나오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약속은 점점 지켜지지 않았다. 아니 결론적으로 봤을 땐 끝까지 지켜지긴 했는데, 휴가만도 못한 휴가를 내게 줬다. 마지막 한국 휴가는 밤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해서, 돌아오는 밤 비행기를 타고 돌아와야 하는 무박 2일 일정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나의 요구사항은 하나도 지켜지지 않으면서 회사는 점점 내게 요구하는 것들이 많아졌다. 이해할 수 있었다. 현지의 상황을 제일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나는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투어 스케줄이 가득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투어는 오전 9시에 시작해서 밤 11시에 끝난다. 그 말인 즉, 나는 회사의 모든 잔심부름을 월요일에, 유일하게 내가 쉬는 날인 월요일에 처리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벤트 상품 전달부터, VIP 손님 픽업까지. 내게 휴일이라고는 없었다.

매너리즘도 매너리즘인데, 회사의 눈치와 요구사항들 때문에 피로도가 계속해서 쌓였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퇴사를 마음먹고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힘들다는 표현은 회사에게 일절 하지 않았다. 그 팀장에게 복수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되려 더 열심히 일했다. 군소리 하나 없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며, 회사 내에서의 내 입지를 다져갔다. '다낭 걔한테 일을 시키는 것은 언제나 완벽하게 처리된다니까?'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힘듦을 표현하지 않고 버텼다. 그러다 회사가 내게 일을 시키는 것이 습관처럼 되었을 때, 내가 없으면 투어가 진행되지 않고, 회사가 돌아가지 않을 수 있게, 1인분을 넘어 3인분 4인분의 몫을 혼자서 해나갔다.


그런 날이 반복되던 어느 날, 마침내 마지막 사건이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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