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워두길 잘했지
배우의 길을 밟는 것은 여전히 힘들고 무서웠다. 그래서 나는 그 꿈을 거의 포기하는 마음으로 다짜고짜 취업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더 이상 아르바이트로는 경제적인 독립을 이룩할 수 없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국비지원 사업인 '취업 성공 패키지'를 통해 집 근처에 있는 직업훈련소의 '가구 제작 과정'을 등록했다.
우선 등록만 해놓고 첫 수업 날이 다가올 때까지 계속해서 고민을 했다. 기술을 배우는 것이, 기술을 배워 취업을 하는 것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술을 배워 취업을 하면 나는 더 이상 배우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나의 생각은, 삶의 비중을 한쪽에 실으면 다른 한쪽은 포기해야 한다고 믿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아직까지 나는 배우라는 꿈에 관심이 있는 상태였으니까, 만약 내가 취업의 과정을 밟는다면 배우의 꿈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고민에 빠진 것이다.
이런 고민을 안고 잠시 홀로 여행을 떠났었다. 어디 멀리 떠난 것은 아니었고, 리프레쉬를 시키겠다는 생각으로 제주도를 다녀오게 되었는데, 그때 문득 깨달았다. 취업을 한다는 것, 그리고 가구 제작 과정 수업을 듣는다는 것이 그렇게나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일만큼 결이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연극을 준비하면서 무대를 직접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그때마다 가구를 만들듯이 톱질을 하고 망치질을 하는 일이 빈번했는데, 이렇게 보면 연극을 하는 것과, 가구를 만드는 것이 서로 연관성이 있는 일었다. 그렇다면 오히려 병행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구 만드는 법을 익히면 보다 빠르고 간결하게 무대를 만들 수 있을 테고, 혹시나 연극을 그만두게 되더라도 나는 기술을 살려 취업을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렇게 나는 목공을 배웠다. 나는 직업 훈련소에서 하루 종일 직업을 훈련했다. 아침부터 점심시간까지는 컴퓨터 실에서 실무에 필요한 프로그램들을 익히고, 점심을 먹고 나서는 실습실에서 톱질과 대패질과 했다. 그렇게 6개월이 흐르고 나니, 내손에 '전산응용 건축제도 기능사'라는 자격증도 하나 주어졌다.
여기까진 아주 일반적인 과정이다. 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땄고, 이제 취업만 하면 완벽한 3박자를 이룰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때, 과정을 처음 시작할 때 생각한 '병행해도 좋겠다'는 마음이 다시 한번 흔들렸다. 취업이 목전에 있으니,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처럼 느껴졌나 보다. 그럴 만도 한 게,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배우라는 꿈을 차츰차츰 포기하게 되었는데, 이번에 취업까지 해버리면 이젠 정말 끝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취업을 계속해서 미루고, 돌아가는 길은 없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실습은 대체로 내가 디자인한 가구를 직접 만드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여러 매체를 통해 핸드메이드 가구들을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그런 가구를 만드는 사람들이 삶이 정말 멋져 보였다. 바로 그때, 나는 가구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차피 배우도 창작을 하는 사람이니까, 가구를 창작하는 '작가'가 되는 것 또한 나의 가치관을 반하는 일은 아니지 않나 하며 이상한 바람이 깃든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이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건 훨씬 더 돌아가는 길이었다. 가난한 예술을 그만하고자 기술을 배웠는데, 그 기술을 배워서 또 가난한 예술을 하겠다고? 이건 정말 헛바람이었다. 가구 디자이너 또한 예술가로서 누군가에게 선택받기 전엔 배고픈 삶을 살 것이라는 걸 이제는 잘 알고 있었다. 그 매체를 통해서 알게 된 장인들은, 그 인고의 시간을 전부 다 참고 버틴 사람들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내게 타협점이 필요했다. 예술을 하겠다고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창작을 보람을 조금 덜 느끼더라도 정해진 연봉을 받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한 끝에 선택한 것이 무대디자인 회사에 취직을 하는 것이었다.
경중을 따지기 어려운 것이지만 무대 디자이너는 가구 작가보다, 그리고 배우보다 훨씬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고 느꼈다. 주변에 무대 쪽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기 때문이다. 연극 무대를 디자인하고 계시는 분도 있었고, 실제로 무대에 필요한 설치물들을 제작하는 제작소를 운영하고 계시는 분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 당시 내가 간단한 돈벌이로서 일하고 있던 조그만 바의 사장님도 유명 영화의 미술감독으로 꽤나 안정적인 삶을 살고 계셨다. 그런 그들을 보면서 나도 저만큼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렇게 무대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나에게 아주 적절한 타협점이라고 생각했다.
하루에도 몇 통씩 그냥 취업을 하라는 재촉 전화가 학원으로부터, 그리고 고용노동부로부터 걸려왔다. 그런 전화에 죄송하다고 반복해서 이야기하며 나는 포트폴리오를 만들기 시작했다. 무대디자인 회사에 취업하려면 포트폴리오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공연까지 이루어진 작업물들이면 정말 좋았겠지만 그럴 수 없었으니까 나는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연극 대본을 읽고 나만의 무대를 구상해서 그걸 그동안 직업 훈련소에서 갈고닦았던 프로그램들을 통해 3D 이미지로 구현해냈다. 이 일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이것은 나만의 취준이었다. 이렇게 만든 포트폴리오로 무대디자인 회사의 문을 두들겨 볼 생각이었다.
하루하루가 보람찼다. 용돈을 받지 않고도 생계를 유지할 만큼의 돈벌이도 주말 아르바이트를 통해 하고 있었고, 남는 시간엔 직장인들이 출근하듯이 카페로 출근해서 무대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만들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다 채용 소식이 있으면 포트폴리오를 보내보기도 하며, 나름 취준생으로서의 삶을 착실하게 살았다. 물론 결과는 모두 낙방이었으니까 지금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겠지만, 그 시간 동안의 스스로는 꽤 만족스러웠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향해서 하나씩 하나씩 무언가를 쌓아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으니까 말이다.
바닥에 철가루를 뿌려 놓고, 자석을 그 철가루에 붙을랑 말랑하게 가져다 대면, 순식간에 철가루들이 열을 맞춘다. 자석에 붙겠다는 철가루들의 목표가 생기니까 철가루 하나하나가 방향을 잡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기술들이 이 철가루처럼 느껴졌다. 다방면으로 펼쳐져있던 기술이라고 생각했는데, 목표가 생기니까 하나씩 하나씩 모습을 바꿔서 목표를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배우를 꿈꿨던 시절의 경험은 조금 더 현실적으로, 실현이 가능한 무대를 구상하게끔 만들어줬다. 그리고 가구제작과정에서 배웠던 CAD는 머릿속에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무대를 이미지화시키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내가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들이 헛되이 쓰이지 않는구나 싶은 생각에 매일매일을 웃으면서 잠들고, 웃으면서 다음날을 맞이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