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언제부터 너는 전사를 키우겠다고 생각한 거야?

그게 네 꿈이야?

by 한성호

문제는 지금부터다. 학교를 다닐 때는 '학생이니까 괜찮아'라는 변명거리가 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런 변명거리가 없었다. 수능이 끝났을 때 보다도, 군대를 전역했을 때 보다도, 지금의 나는 진짜 성인이었다. 그럼에도 아직 경제적 독립을 이룩하지 못한 반쪽짜리 성인이었다.

사실 이 때는 배우라는 꿈이 점점 흔들리기 시작한 때였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눈앞이 깜깜해져서 두려웠다. 그런데 막상 연기라는 것이 돈벌이가 되지 못한다는 걸 직접 체감해보고 나니까, 차츰차츰 연극과 멀어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도 나의 이런 고민과 돈벌이는 별개였다. 어차피 연극을 계속해서 하려고 해도, 그게 아니라 먹고살려면 다른 돈벌이가 필요한 사람이었으니까.

학교를 졸업했으니 시간은 아주 여유로웠다. 더 많은 돈은 필요했고, 내게 남는 건 시간뿐이었으니까, 당연히도 나는 더 많은 시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 보니 난생처음으로 4대 보험에 가입이 되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의 신분이긴 했지만, 직원들만큼 일하는 시간이 비슷하다 보니, 사장님께서 4대 보험에 가입시켜주신 것이다. 그렇다고 업무 자체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4대 보험을 받는 일이라고 해서 사무실에 앉아서 일을 해야 하고, 관리자가 되어야 하고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방탈출 카페의 스탭이 되었다.


image_readtop_2021_586191_16238935994684722.jpg 방탈출 카페의 예능판 <대탈출>


약간 끼워 맞추는 듯한 느낌도 없지 않아 들지만, 연극을 공부했던 것이, 연기를 공부했던 것이 이 일에 꽤나 도움이 되었다. 손님들이 게임을 즐기고 나가면, 다른 손님도 똑같이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방을 세팅하는 것은 다음날의 똑같은 공연을 위해 소품을 제자리에 두는 일과 똑같았다. 또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몇 가지 룰을 설명하는 것은 매번 똑같은 대사를 매번 다른 관객에게 들려줘야 한다는 것이 똑같았다. 무엇보다 방탈출 카페에는 나름대로 콘셉트가 있었고, 방마다 스토리라인 또한 존재한다. 그런 '이야기'가 있다는 것이 연극과 많이 맞닿아 있다고 느끼게 해 주었다.

덕분에 일이 굉장히 수월했다. 나는 나보다 훨씬 먼저 들어와서 일을 하고 있던 친구들보다 빠르게 일에 적응할 수 있었고,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우리 방탈출 카페의 에이스로 등극했다. 4년 동안 연극을, 연기를 공부한 것이 나름대로 기술이라면 기술이었던 것이다.


'학교 4년 헛 다니지 않았구나'


물론 실수도 있었다. 티 나지 않는 작은 실수들은 괜찮았지만, 나의 실수로 손님이 방을 너무 쉽게 탈출해버린다던가 하는 커다란 실수는 옆자리에 앉아있던 시니컬한 매니저에게 바로 발각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런 실수가 반복되지 않게 나를 질책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매니저가 나의 상관이긴 했지만, 나와 동갑내기라는 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녀도 나를 혼내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은 들지만, 그녀의 질책은 정말 참 맛깔났다.

그런 질책을 들으면 나는 그날 하루는 기운이 없었다. 심지어는 내 인생은 왜 이 모양 이 꼴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실수를 했지? 같은 자책은 아니다. 나를 맛깔나게 질책하던 그녀가 나와 동갑이었기 때문에, 군대로 치면 '아 나는 왜 군대에 늦게 와서 나보다 어린 선임들에게 혼나고 있지?' 같은 후회 아닌 후회를 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남들보다 한참 뒤처져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그녀의 매니저라는 직책이 그렇게나 무서운 직책이 아님을 알고 있지만, 그 당시에 나는 그녀가 가진 매니저라는 타이틀과 내가 가진 아르바이트생이라는 타이틀의 무게 차이를 꽤나 크다고 느꼈다.

매니저 또한 나름 전문직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경력이 있어서 매니저가 된 것일 테니까. 그녀는 이 방탈출 카페에서 오래 일했으니까, 사장님과 함께 시작한 오픈 멤버였으니까, 경력이 길어서 매니저라는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녀는 동갑임에도, 나보다 일찍이 일을 시작해서, 이 사회에 자리를 잡은 것 같은 사람처럼 느껴져서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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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운 사람은 아니었지만, 내 인생을 돌아보게 만드는 장본인이 한 명 더 있었다. 그 당시에 나는 방탈출 카페에서 일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생각해서 투잡을 뛰고 있었다. 마침 예전에 나이키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이 새로운 매장에서 매니저로 일을 시작하게 되어 사람이 필요하다고 나를 부른 것이었다. 그렇게 방탈출 카페가 쉬는 날이면 나이키로, 나이키가 쉬는 날이면 방탈출 카페로 일주일 내내 쉬는 시간 없이 투잡을 뛰었다.

당연히 나이키에서는 직원의 신분을 가지고 일하지는 않았다. 나는 단순히 바쁜 시간대를 도와주러 온 파트타이머 일뿐, 심지어는 다른 사람의 명찰을 차고 일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데 나름 나이가 들어서 돌아온 나이키라 그럴까, 그 파트타이머라는 것에 대한 느낌이 좀 이상했다. 예전에 일을 했을 때는 파트타이머라는 신분이 이상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뭔가 좀 잘 못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서른을 앞두고 있던 나는 파트타이머고, 이제 갓 20살이 되어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남자애는 직원이었기 때문이다. '서른 살 직원, 스무 살 아르바이트생'이 맞는 말인 것 같은데, 그 반대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나는 그 아이를 보면서 참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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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방탈출 카페의 매니저도 그렇고, 20살짜리 나이키 직원 친구도 그렇고,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본인들의 목표이고, 혹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직원이었으니까 말이다. 자고로 직원이란 아르바이트생보다 같은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사람이다. 자는 시간을 제외한 하루의 절반가량을 본인들의 일을 하는 데에 쓰고 있는데, 그것이 그들의 목표가 아니라면, 꿈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아니라면, 그것은 그들에게 굉장한 손해일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그 일이 당연히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그들의 목표이거나 과정 중에 일부라고 생각한 것이다.

물론 이제는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본인의 일을 그저 돈벌이로서만 생각하고, 하루 중 남은 시간을 본인의 꿈을 위해 투자하는 사람들을 아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도 어느 정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지만, 그 당시에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매니저였던 그녀의 꿈은 방탈출 카페의 매니저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나이키 직원 남자애의 최종 목표는 본인이 점장이 나이키 매장을 갖는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 탈렌트를 꿈꾸던 어렸을 적 내 모습처럼, 본인의 꿈이 돈벌이가 된사람, 본인의 꿈을 위해 그 길의 일을 시작한 사람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의문점이 하나 남는다.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일찌감치 그것이 그들의 꿈이라고 확신하여, 본인의 시간을 그 일에 올인할 수 있는 것일까?'



그 당시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 당시를 기준으로 정확히 4년 뒤, 내가 유럽을 여행하고 있을 때 만난 친구들이 문득 떠오른다. 친구들이라고 하기엔 나보다 3살 어린 친구들이었다. 그 당시에 난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자, 그리고 그 일을 찾아 확신 갖고자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우연히 그들을 만나게 된 것이었고, 그렇게 함께 여행을 하며 속 깊은 이야기를 종종 나누기도 하였다. 그런데 문득 그들의 꿈은 나와 다르게 참 명확해 보였다. 그들은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아주 당당하게 내게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한 명은 간호사가 되고 싶다고 했고, 다른 한 명은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그들의 꿈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때 나는 그들의 생각이 정말 궁금했다. '어떻게 하면 본인의 꿈에 대한 확신을 저렇게나 강력하게 가질 수 있지?'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꿈을 찾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는데, '쯧... 그래 봐야 그 의지 얼마 못 간다.'라는 꼰대 같은 생각을 했다. 간호사 되고 싶다는 꿈을,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금세 접고 다른 일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은 이제, 정말로 간호사가 되었고, 요리사가 되었다. 그런 그들이 나는 참 대견하다고 느낀다. 그런데 나에겐 여전히 궁금증이 남는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꿈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그걸 밀고 나갈 수 있지?


IMG_9080.JPG 순례길을 걷고 있는 두 친구와 나


아직까지도 한 가지 일을 진득하게 밀고 나가지 못하는 나는 여전히 궁금하다. 여전히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와 드는 생각으로 그 질문에 답을 내려 본다면, 나는 '그냥'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어떤 고귀한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다. 정말로 그녀는 방탈출 카페의 매니저가 꿈이었을 수도 있고, 나이키 직원 남자애는 훗날 꼭 본인의 매장을 갖고 싶었을 수도 있다. 그런데 그렇다고 그들이 정말 원대한 꿈을 안고 그 일을 한 것은 단언컨대 아닐 것이다. '그냥' 하다 보니 매니저가 되었고, '그냥' 돈이 필요해서 나이키 직원을 했을 뿐인 것이다. 간호사 요리사가 된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그냥'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니, 마침내 간호사가 된 것이고, 요리사가 된 것이지, '아 나는 요리사가 되어서 세상을 구원하겠어' 같은 원대한 꿈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리사가 되는 것이 정말 나의 꿈일까?' 하며 의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냥' 정말 말 그대로 '그냥' 그게 좋았으니까 말이다. 그러다 보니 나보다 일찍 진로를 결정해서, 나보다 앞서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냥'의 힘을 일찌감치 체감한 그들이 나는 조금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