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롤로 안 되니까 피부터 채우고 와" - 1

왜 말을 못해! 피가 부족해서 못 때려 잡겠다고 왜 말을 못 하냐고!

by 한성호

캄보디아의 캄폿이라는 동네를 여행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영호 <알 포인트>의 배경이 되었던 건물을 구경했다. 처음부터 알고 간 것은 아니었는데, 마침 근처에 있다고 하니 흥미가 생겨서 다녀와 보게 되었다.

영화 <알 포인트>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꽤 재밌게 봤던 영화임이 분명하다. 너무 무서워서 실눈으로 영화를 보던 그 순간이 기억나고, 끝에 나오는 놀랄만한 반전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의문이 들었다. <알 포인트>는 한국 영화이지 않은가. 도대체 얼마나 영화와 잘 어울리는 곳을 찾았기에, 굳이 굳이 모든 스태프와 모든 배우가 한국이 아닌 캄보디아까지 넘어와서 촬영을 했을까? 이런 의문을 해결하고자, 나는 그곳을 직접 찾아 가보고 싶어졌다.

그 건물은 보꼬산 산 꼭대기에 있었다. 캄보디아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시절, 동남아시아의 더운 날씨를 피해 프랑스 사람들은 산 꼭대기에 휴양지들을 만들었는데, 이 건물이 그렇게 지어진 건물들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곳을 찾아가는 일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날씨가 괜찮았으면 모르겠지만, 산 아래쪽에선 괜찮았던 날씨가 산을 오르기 시작하면서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산을 올라갈수록 점점 안개가 짙어졌다. 내가 타고 있는 오토바이의 계기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난생처음 겪어보는 짙은 안개였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이 안개를 뚫고 내리막을 내려가는 일이 더 무서웠으니까 말이다. 하는 수 없이 계속해서 올라가는데, 이번엔 비가 쏟아졌다. 정말 비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내가 올라가고 있는 오르막 길은 태풍이 몰 아치 고난 다음날의 계곡의 모습처럼 변해 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더 이상 오토바이를 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 오토바이를 끌고 한참을 올라갔다. 그 모습은 마치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올라가는 연어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도착했는데, 아쉽게도 영화 속에 등장한 모습 그대로의 그 건물을 볼 순 없었다. 이미 관광지로 개발되어 호텔로서 쓰이고 있는 곳이었기에, 그런 으스스한 그런 느낌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아쉬움에 앞서 들었던 생각은, '도대체 이렇게나 오기 힘든 곳을 촬영지로 처음 제안한 사람은 누구였을까?'였다. 그 당시엔 아스팔트 길도 깔려있지 않았을 텐데, 이런 산 꼭대기에 이런 건물이 있다는 건 도대체 누가 알았을까? 도대체 누가 이곳을 미리 알고, 감독과 투자자를 설득해서 이곳까지 데리고 올 수 있었던 걸까? 그렇게 영화 <알 포인트>의 엔딩 크레디트를 찾아 살펴보는데, '로케이션 매니저'라는 직책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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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케이션 매니저란, 영화나 드라마 광고에 어울리는 촬영지를 제안하는 사람이었다. 그때 나도 문득 그 로케이션 매니저라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나도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나름대로 많은 공간을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이런 나의 배경지식이 새롭게 제작되는 어떤 영화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한 것이다. 한 번쯤 로케이션 매니저로서 일해보면 참 즐거운 일들이 가득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로케이션 매니저라는 일을 계속해서 눈여겨보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와 원고 작업을 하고 있을 때에도 종종 로케이션 매니저로서 일 할 수 있는 일자리가 있는지 찾아보곤 했다. 그러던 그때, 내 원고가 계속해서 까이고, 자신감이 바닥을 치던 바로 그때, 한 로케이션 회사의 홈페이지에 올라온 채용 공고를 보게 되었다. 그렇다고 당장 지원하진 않았다. 그때의 난 여전히 책으로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채용 마감 바로 전날까지 고민하다가, 도대체 사람들은 왜 내 글을 몰라줄까 한탄하며 친구와 술을 마시고는 홧김에, 에라 모르겠다의 심정으로 그 로케이션 회사에 지원서를 보냈다.

술 김에 쓴 이력서 때문이었을까, 홧김에 만든 포트폴리오 때문이었을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흘러도 답장이 없었다. '역시나 탈락인가 보다' 싶은 생각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여느 날과 원고를 투고하려고 노트북을 챙기고 있었는데, 답장이 왔다. 얼굴 한 번 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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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면접은 촬영 현장이었다. 촬영 현장으로 나를 불러서, '아 직무 테스트인가?'라는 생각에 긴장했는데, 그런 건 아니었고 카페에 앉아 굉장히 간단한 질문들이 주고받는 게 전부였다. 그들은 내게 로케이션 매니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물어왔고, 어떻게 이런 일을 해볼 생각을 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나는 캄폿 때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분위기는 꽤 화기애애했다. 그래도 내가 해보고 싶은 일이었고, 나를 좋게 봐주는 것 같아서 한편으론 기뻤다. 그렇게 추후에 최종 합격 결과를 통보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간단한 면접이 끝났고, 나는 집으로 돌아와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조차 하지 않았는데, 합격 통보를 받지도 않았는데, 그들은 대뜸 내게 미션을 부여했다.

'이번에 오래된 이발관을 로케이션으로 찾는 촬영팀이 있어요, 그런 오래된 이발관을 성호 씨도 한 번 찾아보면 어떨까 싶은데?'

문득, 정말 우연히도, 내가 엊그제 눈여겨봤던 우리 동네에 있는 오래된 이발관이 떠올랐다. 나는 다짜고짜 그 이발관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한창 손님의 머리를 자르고 계시던 사장님을 설득했다. 아직 로케이션 매니저도 아니면서 로케이션 매니저 인척, 광고를 만드는 사람인척, 사장님의 공간을 칭찬해 촬영 허락을 받아낸 것이다. 그렇게 이발관의 이런저런 사진을 찍고 스케줄 체크해서 빈틈없이 미션을 수행했다. 나는 이게 운명 같다고 생각했다. 평소엔 눈여겨보지도 않던 오래된 이발관이었는데, '우리 동네에 이런 게 있었네?' 하며 눈에 밟혔던 게 이 미션을 위한 것이었다니. 기분 좋은 마음으로 다른 이발관들을 찾아가 똑같이 사장님을 설득하고 몇 장의 사진을 더 모아 사진을 전송하는 것으로 나는 그 로케이션 회사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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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근은 서울숲으로 새벽 5시까지 출근을 했다. 역시나 촬영 현장으로 출근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없었지만 촬영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로케이션 매니저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날의 촬영은 계속해서 딜레이가 되어 다음날 새벽 2시가 되어서야 퇴근을 할 수 있었다. 피곤하긴 했지만 촬영 현장에서의 딜레이는 아주 습관처럼 벌어지는 일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었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열정으로 불타오르던 출근 첫날이었으니까 새벽 2시에 퇴근하는 것이 그렇게나 못마땅하진 않았다. 그런데 그다음 날이 문제였다. 3시간 뒤인 새벽 5시까지 또 촬영 현장으로 출근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이날은 밤 12시에 딱 맞춰서 끝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계산해보니 나는 첫 출근 후 이틀 만에 40시간을 일했다. 촬영이 끝나고, 뒷정리를 마친 뒤 가까운 역까지 나를 데려다주시기 위해 대표님의 차에 탔다. 그 차에 안에서 나는 대표님께 여쭤봤다.


'대표님, 제가 솔직하게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데?'

'로케이션 매니저라는 일에 1-10의 강도가 있다면 이 촬영은 몇 정도 되겠습니까?'

'글쎄... 한 7 정도 될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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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다행이었다. 나는 이게 3, 4 정도면 당장 내일부터 출근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리려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꽤 높은 숫자여서, 그럴 일은 없었다. 마음속으로 '그래, 다른 촬영들은 조금 더 수월하겠지.', '오늘이 유독 힘든 것이었겠지.'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버텨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조금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렇게 나는 진짜 로케이션 매니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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