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말을 못해, 피가 없어서 못 때려 잡겠다고 왜 말을 못 하냐고!
그런데, 그렇게 로케이션 매니저로 일한 지 9개월이 지났을 무렵의 나는 꽤 지쳐있었다.
로케이션 매니저의 일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나는 이 일이 나름대로 예술성이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었다. 대본을 보고 어울리는 공간을 찾는 것은 일종의 창작이고, 그렇게 찾아낸 장소에서 촬영을 해서 영상 창작물이 세상에 공개되었을 때, 그 걸 함께 했다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런데 9개월간 일하며 단 한 번도 창작이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고, 단 한순간도 보람을 느낀 적도 없었다.
처음부터 나는 로케이션 매니저의 일이 여행하는 것과는 다를 것이라는 걸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을 가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원하는 곳을 찾아줘야 하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내 생각 이상이었다. 로케이션 매니저의 현실은 부동산 중개업과 다를 게 없었다. 촬영팀이 원하는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나는 로케이션 매니저로서 그 촬영팀의 스케줄에 맞게끔, 생각하고 있는 금액에 맞게끔, 공간 주와 흥정을 하고 조율을 해야 했다. 그게 전부였다. 물론 대본을 보고 우리가 직접 그에 걸맞은 장소를 찾는 경우도 있기야 있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부동산 중개업과 똑같았다. 새로운 장소를 찾아 제안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매물에서 보여주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우리 회사의 대표님께서는 이 모든 일들 고귀하다고, 그러니 특별한 능력을 가진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셨지만 내 생각은 달랐다. 그 어떤 곳에서도 고귀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대표님이 이야기하는 특별한 능력은 '남들보다 조금 더 프로페셔널하게 떼를 쓰는 것'정도라고 여겼다. 나는 내가 촬영할 수 있게 떼를 쓰는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촬영팀과 공간주의 중간에 서서 한쪽에는 촬영할 수 있게 해달라고 떼를 쓰고, 한쪽에는 촬영할 때 제발 좀 공간에 피해가 안 가게 해달라고 떼를 써야 하는, 떼쟁이 꼬마애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럴 만도 한 게, 촬영이 진행될 때의 나의 위치는 거의 바닥이었다. 백번 양보해서 나는 경력이 거의 없는 신입이니까, 막내 취급을 받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하더라도, 막내 그 이하의 취급이었다. 아예 촬영팀에 속한 사람이라고 촬영팀들이 생각해주질 않았다. 나도 공간을 찾고, 더 좋은 영상물이 나올 수 있게 노력한 사람인데, 우리 로케이션 매니저를 그저 주차요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물론, 우리가 찾은 공간이니 촬영 시 문제가 되지 않게 주차 관련한 관리를 하는 것도 우리의 일이긴 했지만, 다짜고짜 주차 공간을 확보해 놓지 않았다고 화를 내는 촬영팀들이 정말 많았다.
이처럼 공간을 찾는 것만이 로케이션 매니저로서의 일은 아니었다. 촬영 시에 발생하는 여러 제반사항들을 컨트롤하기 위해서 촬영팀보다 일찍 촬영 장소에 도착하고, 촬영팀의 정리 상태까지 확인해야 하니 촬영팀보다 늦게 퇴근했다. 그러다 보니 이 스케줄이 정말 지옥 같았다. 미디어 업계의 특성상 야근이 잦다고 하여 이미 각오는 했었지만, 말이 야근이지, 촬영이 있는 날이면 앞 뒤로 일정을 빼놔야 할 만큼 밤을 꼴딱 새우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나는 9개월간 일들을 꽤 잘 처리했다. 나는 금세 일에 적응해서 회사가 앞으로 나가는데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었다. 그 증거로 나는 6개월 만에 팀장이라는 직급을 달았고 (물론 팀원은 없었다.) 3개월마다 나의 연봉을 인상시켰다. 또한 대표님은 나를 제2의 당신으로 키우고 싶다며, 대한민국 청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한성호 같은 사람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라며 나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실 정도로, 나는 정말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다.
충분히 그렇게 느끼셨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나는 사실 지난번 가이드 일을 할 때처럼 복수의 칼날을 갈고 있었던 것이니까 말이다. 우리 회사는 나를 포함해 직원이 총 4명이었다. 대표님과 부장님, 나, 그리고 회계 업무를 담당해주시는 대표님 와이프분까지 총 4명이었다. 워낙에 인원이 적었기에, 조금이라도 손 발이 맞지 않으면 회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그런 구조를 가진 회사였다. 언젠가 뛰쳐나가리라 마음먹고 난 뒤로, 나는 1인분의 일처리를 넘어서 2인분, 3인분까지 하기 시작했다. 그래야 내가 빠졌을 때, 이 회사를 전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난번과 같은 실수를 할 생각은 아니었다. 나는 사실, 정말로 회사를 전복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내가 진짜 나 없으면 안 되게끔 만들어 놓고 퇴사한다'라고 이야기하고 다녔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내게 닥쳐오는 일들을 하나하나 정말 잘 처리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당시 우리 회사는 소위 말하는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젓고 있는 회사였다. 그런데 내게 쏟아지는 일이 정말 너무 많았고, 약해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나는 그냥 아무 말 없이 혼자 속으로 끙끙 앓아가며 일들을 처리해 나갔을 뿐이다. 그렇게 내가 일을 열심히 하면 할수록 우리 회사는 더욱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고 나는 그에 맞게 더 빠르게 노를 저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스스로 자부심이 들만큼 나는 노를 잘 저었다고 생각했다. 회사의 젊은 피가 되어, 늙은이 회사라고 욕했던 사람들에게 본떼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먹고 분주히 뛰어다녔으니까 말이다. 젊은이의 시선으로 회의에 참여하며, 대표님과 부장님이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 말들,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일처리를 하시려고, 내가 앞장서서 그걸 대신했다. 우리 회사가 욕먹는 게 싫었으니까. 나는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표님은 나를 회의 테이블에 불러다 놓고 말씀하셨다.
"음.... 여전히 성호가 사진 찍는 건 부족하네"
"헌팅 양이 좀 적은데... 쉬는 날에도 좀 헌팅을 하고 해야겠어"
"성호 너는, 사람들과 딜을 할 때, 금전적인 이야기를 잘 못하는 경향이 있어. 그걸 극복해야 해"
'하....'
그만두겠다는 말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대표라는 사람이, 나를 그렇게나 아낀다고 여기저기 이야기하고 다니던 사람이 내 상황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며 대책 없이 받아온 대표의 일들을 뒤처리하고 있는 건 나였는데, 그런 나에게 더 갈아 넣으라고 이야기하다니. 24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영혼을 팔아서라도 시간을 더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일했던 내게 '정말 고생이 많다.', '고맙다.'는 말은 커녕 저따위의 말을 하다니.
'그런데, 내가 지금 힘들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던가?'
힘듦을 숨기는 것은 나의 습관이었다. 그러다 보니 지난번 가이드로서 일을 할 때도 내가 힘들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잘 숨겼고, 그렇게 복수의 칼날을 가는 게 어렵지 않았나 보다. 글쎄, 언제부터 이것이 습관이 된 것인지 모르겠는데, 나는 세상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다. 약해 보이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나는 힘들다는 이야기를 입 밖으로 잘 꺼내지 않는다.
힘들다는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바대로 사람이 강인해 보인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렇게나 좋은 장점 뒤엔 숨겨진 단점은 아주 치명적이다. 나도 힘듦을 느끼는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주변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나를 힘들게 하는 원인을 제거할 수 없고, 상황이 나아지질 않는다. 속에서 계속해서 곪는다.
이렇게 속에서 계속 곪으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이기 시작한다. 사실 다른 사람들도 다 똑같다. 다 똑같이 힘든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한다. 그러나 내가 힘들기 시작하면 그런 사실을 까맣게 잊고,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과 내 처지를 계속해서 비교한다. '나는 이렇게나 힘든데, 저들은 어떻게 저렇게 멀쩡하지?', '내게 문제가 있나?' 하는 생각들을 하며 스스로를 좀 먹는다.
물론 내가 편의를 위해서 힘들다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겠지만, 한편으론 주변 사람들에게 현재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알려야 한다는 것을 이번 일을 계기로 깨달았다.
종종 힘들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