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순례길, 까미노 데 산티아고 / Day 1 / 28.6km
첫걸음을 뗐다.
아침 7시부터 시작해서 오후 3시 30분이 되었을 때, Roncesvalles(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시간부터 걷기 시작했기 때문일까, 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진다. 순례자들에게 첫 번째 고비는 이 첫날 시작된다고 했다.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는 ‘나폴레옹 루트’가 첫날부터 바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폴레옹 루트’는 겨울철이라 통제가 되어 있었다. 유명한 길을 걷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덕분에 조금 쉽게 발카로스 쪽 우회로를 통해 걸었다.
우선 힘듦에 대해서부터 이야기를 하자면, 생각보다 수월했다. 함께 걸었던 욱희와 성준이는 꽤 힘들어하는 것 같았는데, 10개월 동안의 내 세계여행이 허송세월은 아니었나 보다. 돈 아끼겠다고 걸어 다녔던 게 여기서 아주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남모르게, 그리고 나도 모르게 걷기 훈련을 많이 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런 스스로가 조금 자랑스럽다.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해서 첫걸음이라 꽤 힘들었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래 맞아 힘들었어’하며 말하긴 했지만, 그들의 힘듦을 100퍼센트 공감할 순 없었다. 분명 이게 기우일 수도 있고, 곧 부러질 콧대 높은 소리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분명 이보다 힘든 길이 앞으로 더 있을 것이다. 없으면 뭐, 다행이지만.
나는 첫걸음을 걸으며, 그러니까 이 까미노를 시작하는 첫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상하게도 괜스레 옛날 생각들이 많이 났다. 자주 떠올리던 가까운 옛날 그러니까 한 달 전, 두 달 전 이야기가. 아니라, 조금 먼 옛날의 기억들이 디테일한 부분까지 상세히 떠올랐다.
‘그땐 그랬지’ 괜스레 미소 짓게 되는 순간들을 많이 마주 했다.
그렇다고 그 옛날을 생각하며 후회나 반성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냥 그때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이 전부였다. 나는 내가 많은 이야깃거리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예전에 배우를 꿈꾸며, 유명한 배우가 되어 토크쇼에 나가게 된다면, ‘나는 도대체 어떤 재미난 이야기를 해야 하지?’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에피소드 거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오늘 문득 지난날들을 떠올려보니 꽤 스펙터클한, 재미난 삶을 살아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쎄, 나의 재미는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남들에게 들려주고픈 이야기들이 꽤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제 이야기를 재밌게 하는 방법만 알면 될 것 같다.
론세스바예스의 알베르게는 딱 하나뿐이었다. 론세스바예스 성당에 딸려있는 곳, 그곳 한 곳만이 알베르게로서 존재했다. 그렇게 그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침대를 배정받고 짐을 풀고 있는데, 론세스바예스 성당의 신부님이 알베르게에 들러, 오후 6시에 미사가 있으니 참여해보는 것 어떻냐고 권유해주셨다. 나는 가톨릭 신자는 아니니까, 그럼에도 괜찮으냐고 여쭸더니, 신자들을 위한 미사가 아니라,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라며, 한 번 들러보라고 말씀해주셨다.
우리는 걷느라 땀범벅이 된 몸을 씻고, 간단히 빨래를 해서 널어놓고, 식사를 한 뒤 마을을 구경했다. 론세스바예스는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작은 곳이었다. 성당 하나가 전부라고 봐도 무방했다. 성당의 정원이 마을의 정원이었고, 성당을 둘러싼 길이 마을의 산책로였다. 마침 노을이 지는 시간이라, 우리는 노을 구경하다가 시간에 맞춰 성당으로 몸을 옮겼다.
미사에 참여해본 건 훈련병 시절, 단팥빵을 준다는 소식을 듣고, 가톨릭 신자 인척 미사에 참여했던 것을 제외하곤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도 미사 경험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니까, 우리말이 아닌 미사임에도, 대략적인 순서 정도는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조금 특별했던 건 미사 막바지에 순례자들을 위한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다. 신부님은 미사가 마무리되어 갈 때쯤 순례자들을 앞으로 불러 모으셨다. 우리 알베르게에 똑같이 묵는 다른 사람들이 앞으로 나가길래 나도 덩달아 따라 나갔다. 그런 그들을 신부님은 각국의 언어로 축복해주셨다. 비록 다른 나라의 말들과는 달리, 굉장히 짧은 문장으로 ‘주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씀해주신 게 전부였지만,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는 성당에 조명이 전부 꺼지고, 성당 한가운데에 있는 성모 마리아 상에만 조명이 들어오며, 오르간 연주에 맞춰 성당 내에 있던 사람들이 성가를 합창하는데, 눈물이 흘렀다. 글을 쓰는 지금도 괜스레 울컥하는 기분이 들 정도다. 글쎄, 이유는 잘 모르겠다. 슬퍼서 흐르는 눈물은 당연히 아니고, 행복에 겨워서, 즐거워서 흐르는 눈물도 분명 아니었다. 그냥, 여태까지의 나의 여정을 인정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눈물이 흘렀던 것 같다. 글쎄, 사실 까미노는 이제부터 시작인 것인데 인정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는 건, 앞 뒤가 안 맞는 것 같긴 하지만, 누군가가 나의 힘들었던 여정을 알아주고, 그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0개월간의 세계여행이 헛되지 않았다고, 그리고 이제 까미노를 걷는 도전에 대한 용기를 인정한다고 누군가가 나를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그래. 그래서 눈물이 났다. 운 좋게도 미사가 있는 주말에, 그것도 까미노의 시작점에서 눈물겨운 축복의 이야기를 듣다니, 참 운이 좋았다.
미사가 모두 끝나고는, 모두가 함께 식당으로 이동했다. 알베르게에서 체크인을 할 때, 저녁식사에도 참여하겠다고 이야기하고 저녁식사 값도 포함된 금액을 숙박료로 지불했는데, 그 덕에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간단한 파스타에 생선구이 그리고 후식과 와인까지, 나는 꽤나 거창한 한 끼 식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훗날 생각해보니 모든 식사가 그랬다. 이러한 식사가 나름대로 순례자들을 위한 세트메뉴, 코스 메뉴인가 보다.
이러한 거창한 저녁식사까지 마치고 난 뒤, 신부님께서 직접 순례자들을 모아 론세스바예스 마을 가이드를 해주셨다. 당연히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지만, 나눠주신 유인물은 영어로 되어있어서, 조금이나마 신부님의 가이드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가이드 코스의 마지막, 예배당에서는 이 예배당은 소리가 잘 울리게 설계되어, 노래 부르기 좋다며 다 같이 ‘You raise me up’을 합창하기도 했다. 그런데 신부님께서, 한국인 순례자들이 많다는 걸 떠올리셨는지, 대뜸 나를 가리키시며 한국 노래를 한 소절 불러보라고 말씀하셨다.
‘네...?’
‘이 많은 한국인중에 하필 제가요...?’
‘아... 한국 노래... 그러면 한국을 대표하는 노래를 불러야 하나...?’
‘그럼 애국가를 불러야겠다.’
그런데 내 입에선 아리랑이 흘러나왔다. 순간적으로 생각을 바꿔서 아리랑을 불러버린 것이다. 가끔 티비에서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외국인들 앞에서 한국문화라며 아리랑을 부르고 소개하는 모습을 종종 봤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그 선택이 참 별로라고 생각했다. 너무 뻔한 클리셰 같다고 생각했다랄까? 그런데 그런 행위를 내가 하고 있다니,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율이 참 아름다웠다. 절대 내가 노래를 잘 불렀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냥 그 분위기가 참 좋았다. 이래서 다들 아리랑을 부르는구나. 만일 내가 부른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아리랑을 부르는 것을 들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부끄러움 때문에 그 감격이 반감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조금 아쉽다.
걷는 시간도 행복하고, 긴 시간 끝에 겨우겨우 마을에 도착해서 누리는 휴식 겸 짧은 여행 또한 행복하다. 어떻게 매일 오늘 같겠냐만은, 행복한 시간들로 가득 찬 까미노가 될 것만 같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