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순례길, 까미노 데 산티아고 / Day 6 / 182.4km
걷는 데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나 보다. 어제도 거의 30km 그리고 오늘도 30km를 넘게 걸었는데, 어제보다 이른 시간에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심지어는 너무 일찍 도착해서 알베르게가 문을 열 때까지 알베르게 앞에 가방을 두고, 알베르게 근처, 뷰 좋은 곳에서 한참을 쉬다가 왔으니까 말이다.
발이 만신창이다. 버거운 길은 없지만, 매일매일 계속해서 걷는 게 발에 무리가 되긴 되나 보다. 무엇보다, 신발이 문제인 것 같다. 까미노를 걷는답시고 발목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구매했는데, 까미노 이후에도 신을 생각으로 멋스러운 걸 찾다 보니, 발에 무리가 가는 걸 골랐나 보다. 발이 부츠 안에서 계속 따로 놀아,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리며 물집을 양산해내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땐 가방의 무게가 가장 큰 걱정이었는데, 걷다 보면 배낭의 무게는 신경 쓸게 되지 못한다. 전혀 무거운 느낌이 들지 않고, 그러려니 하며 넘어가게 된다. 그냥 어깨고 다리고 간에, 발바닥이 아파서 힘들 뿐이다.
오늘 숙소에도 이불이 없다. 나는 지금 다리가 추워서 패딩을 바지처럼 입었으며, 바깥을 걸을 때와 마찬가지의 옷차림으로 침대에 누워있다. 덕분에 내일 아침에 옷을 주워 입는 번거로움을 덜하겠다. 나는 분명 알베르게에 누구보다 일찍 도착했기에, 침대를 선점할 수 있는 특권이 있었는데, 나는 그때 라디에이터 옆자리를 골랐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라디에이터가 식어가고 있다. 아마 이 일기를 다 쓰고 나면 차갑게 식어버린 라디에이터의 옆자리에서 잠을 청하게 될 것이다.
오늘은 숙소에 도착해서 수육을 먹었다. 까미노를 걸으며 너무 잘 먹어서 탈이다. 내가 기대하던 까미노는 훨씬 배고프고, 훨씬 추운 것이었는데, 운 좋게도 함께 걷고 있는 욱희와 형석이 지영이 형님의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마침 잠들기 직전의 욱희를 깨워 휴대용 전기장판을 공수했으니, 오늘 저녁도, 그리고 오늘 밤도 무사히 잘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무엇이 나를 이리로 이끌었을까?’
걸으면서 드는 대부분의 생각들은, 그 생각이 조금만 깊어지면 ‘에이 될 대로 되라지'하면서 넘겨버리곤 하는데, ‘무엇이 나를 이리로 이끌었을까?’ 같은 질문은 좀처럼 답이 잘 나지 않는다.
‘왜 이 여행을 시작했나?’
여행을 다니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글쎄, 나는 이 질문에 답을 잘 내리지 못하겠다. 오래 만나던 여자 친구랑 헤어져서 자유를 만끽하고자 여행을 시작했다고 우스개로 답변은 하지만, 그다음으로 따라올 만한 진지한 대답은 도통 하지 못하겠다.
‘왜?’라는 질문이 그렇게 큰 의미가 있는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살다 보면 참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들의 행동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처음 보는 남에게 물심양면 봉사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행동할 수 있게 만든 걸까? 남을 돕는 일이 행복해서? 남을 도우며 스스로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글쎄,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 분명 본인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선택했을 텐데, 무엇이 그들을 그리 이끈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도대체 무슨 연유로 나는 이 여행을 선택했지?
나는 왜 살지?
도대체 나는 왜 태어났고, 도대체 무엇이 나를 이런 삶을 살게끔 만든 걸까?
질문에 답을 내기가 참 쉽지 않다.
여행을 삶의 축소판이라고 사람들이 많이들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내가 여행을 왜 시작했는지, 무엇이 나를 여행길에 오르게 했는지를 알고나면, ‘나는 왜 사는가?’ 같은 질문에 조금은 쉽게 답할 수 있지 않을까?
도대체 나는 이 까미노에서 왜 이런 고생을 하고 있을까? 그걸 알아야 까미노의 목적 또한 찾을 수 있을 텐데. 까미노를 걷고 나면 바라는 한 가지는 이뤄진다고들 하던데, 도대체 내가 바라는 건 뭐지?
하루에 와인이나 맥주를 꼭 한잔씩 마시고 있다.
그런 데다가 몸이 고단하니까 밤 열 시가 되기 전부터 졸음이 쏟아진다.
술 때문일까, 졸음 때문일까 오늘따라 유독 헛소리가 많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