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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Jul 17. 2024

그래도 쓰긴 썼다.

영화 <태풍 클럽> - 이런 식으로 말해보면 어떨까?

*이 글에는 영화 <태풍클럽>의 스포일러가 '알게 모르게', '일정 부분' 담겨 있습니다.

영화의 스포일러에 예민하신 분들은 참고 부탁드립니다.



드디어 이사를 마쳤다.


  이사를 마치고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은, 책상을 놓는 일이었다. 이상하게도 요새 들어 부쩍,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사를 하자마자 당장 책상을 놓고, 글을 쓸 법도 한데, 맥북을 열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 건 사실이다. 이에 따른 변명을 하자면, 이사를 마치고서도, 책상이 들어오는 데까지 한참 걸렸다고 말해야겠다. ‘책상도 아직 없는데 글을 쓰긴 뭘 써’ 하면서 계속해서 미뤄왔다. 그런데, 이제 책상도 들였고,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이젠 진짜 글을 써내야 하는 시간이 와 버렸다.

  무슨 글을 쓰고 싶은지 정한 건 아니다. 글쎄, 글이란 것도 나를 표현하는 어떠한 수단이고, 나를 표현하려면 나의 어떤 이야기가 있어야 하는데, 내게 인풋이라는 게, 영감이라는 게 요샌 그렇게 많지가 않다. 굉장히 심심한 하루들을 계속해서 보내고 있다. 그래도 개중에 인풋이라면 인풋이라고 할 수 있을 법한 걸 찾자면, 영화다. 그래서 영화랑 연결 지어 내 이야기를 풀어보면 어떨까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영화 리뷰를 하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의 해석을 하겠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평론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엔 수준 높은 리뷰가 참 많고, 수준 높은 해석도 참 많으니까 그들과 경쟁하고 싶진 않다. 그러니 그건 뒤로 하자. 아, 그래서 이 매거진(?)의 이름도 꽤나 구멍이 많은, 무책임한 이름으로 골랐다.


“이말어”


풀어서, “이런 식으로 말해보면 어떨까?” 다.

더 풀어서, “그래 당신들의 그 생각들도 맞아. 정말 맞다고 생각해. 근데 그냥 내 생각, 그러니까, 그냥, 이런 식으로 말해보면 어떨까? (당신의 생각과 다르든지 말든지)” 이거다.



  아무튼, 첫 번째 글이니까, 되게 의미 있는 어떤 영화를 골라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어떤 욕심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그랬다간 또 글을 쓰는 걸 또 한참 뒤로 미뤄야 할 것 같아서, 그냥 지난주에 본 어떤 영화를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영화 기본 소개와, 나의 코멘트


  그렇게 해서 고른 영화는 소마이 신지 감독의 <태풍 클럽>이다. 영화의 대한 기본적인 정보는, 이 글을 보는 와중에도 새로운 창을 띄워서, 혹은 옆에 있는 핸드폰으로 검색해 보면 쉽게 나오니까 건너뛰기로 하자.


이 두가지 때문에 봤던 영화


  영화를 보게 된 계기는 첫 번째로 귀여운 포스터 때문이었다. 그냥 포스터가 참 맘에 들었다. 영화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어떤 사진이 아니라, 귀여운 그림으로 그려진 그 포스터가 참 맘에 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디시인사이드의 누벨바그 마이너 갤러리에 이 영화와 관련된 글이 여럿 올라온 걸 봤기 때문이었다. 그 말인즉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소비하는 영화라는 뜻인데, 그렇다면 나도 좀 봐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는 영화의 홍보 때문이다. 여러 홍보들 중에서도 다른 감독들이 했던 이 영화에 대한 평이 나를 이. 영화로 이끌었다. 특히,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이것이 시네마다”라는 이야기를 했다는 점이 나를 정말 많이 자극했다. 또, 빗속에서 춤을 추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담긴 예고편 또한 너무 인상 깊었어서, 그래서 이 영화를. 봤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영화를 예매해놓고, 사실 나는 이 영화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했었다. 태풍 클럽이라니까, 그리고 학생들이 나온다니까, “아 태풍이 오면, 그러니까 비가 내리면 빗속에서 뛰어노는 그런 써클 활동이 있는 그런 학교의 학생들 이야기인가 보다. 오 재밌겠는데?”


  그런데 영화를 다 보고 난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그 나의 생각은 참 귀여운 생각이었다 싶다.


  이 영화는 쉽게 말해서, ‘일본의 한 중학교 아이들, 그들 각각의 태풍 같은 고민을 그린 영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꽤나 무겁다. 영화 자체가 “이들의 고민도 태풍과 같이 이렇게나 무겁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영화의 분위기가 내가 예상했던 것과 같이 깨발랄하지 않았다. 오히려 우중충하고, 어두웠다. 아, 그래. 이 영화가 뭘 말하려고 하는지에 대해서 더 이야기를 하면 같잖은 수준의 영화 분석글이 되어 버릴 것 같으니까. 여기서 그만하자.


  아무튼, 그런 영화 속에 굉장히 인상 깊은 한 장면이 있었다.


  태풍이 불어서 학교에 갇혀버린 친구들이 체육관에서 노래를 부르며 놀다가, 갑자기 밖으로 뛰쳐나가 춤추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더니, 그 끝에는 결국 홀딱 벗은 채로 친구들과 뛰어노는 그 장면.


  이 씬에 여러 가지 이야기, 여러 가지 해석이 있겠지만, 글쎄, 이런 식으로 말해보면 어떨까?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무겁디 무거운 각자의 고민 속에서도, 여전히 순수하다.”



  나는 그런 경험이 있다. 영화 속 주인공들처럼 어렸을 때의 이야긴데, 비가 정말 많이 쏟아지던 날, 친구들과. 가위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은 비를 맞는, 그런 놀이를 했던 적이 있다. 가위바위보에서 지면 앞에 보이는 철봉까지 비를 맞으며 뛰어갔다 돌아와야 하는 그런 이상한 놀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아무 의미 없는 놀이다. 뭐, 놀이란 게 사실 다 그런 거긴 하지만, 개중에서도 정말 의미 없는 놀이이지 않았나 싶다. 심지어 하나도 안 젖는 사람이 없는 놀이였다. 한판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몇 번씩이나 가위바위보를 반복했기 때문에, 가위바위보를 했던 모든 친구들이 전부다 홀딱 젖었으니 말이다.


  근데 그게 참 웃겼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너무 재밌었고, 너무너무 웃기다.


  이제 와서 그 놀이를 다시 하겠냐고 묻는다면 그때의 친구들 전부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우겠지만, 나는 솔직히 이야기해서 그 놀이를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순수했던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 같은 뜬구름 잡는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냥, 그냥 그때처럼 별것도 아닌 일에 배가 찢어져라 웃고 싶은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서 그렇다.


  아니, 생각해 보면 지금의 삶에서도 그런 순간들이 분명 있었을 것 같다. 친구랑 술 먹고 집에 들어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와’를 사 먹으면서 ‘와, ‘와’ 개맛있는데?’ 따위의 드립으로 집에 돌아가는 내내 웃었던 그런 순간들 말이다. 근데, 그런 빈도가 확실히 좀 젖어들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은 든다. 그리고 그게 문득 그게 참 아쉽다. 만일 그런 순간이 또 찾아온다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그 순간을 즐기고 싶은데, 그렇게 또 인위적인 생각이 들어버리면 제대로 즐기지 못하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조금만 더.





  그리고 그 씬을 또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 보는 건 어떨까?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무겁디 무거운 각자의 고민들, 그 고민들을 차라리 온몸으로 마주했을 때, 모든 걸 내려놓고 홀딱 벗었을 때, 우리는 춤을 춘다.”


  나는 얼마나 나의 고민들을 잘 마주하며 살고 있을까? 한 번도 고민 속에서 춤을 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고민이 드는 건 어쩌면 일 년에 한 번씩 꼭 태풍이 오는 것처럼 당연한 일인데, 그리고 고민이 든다는 건 어쩌면 좋은 뜻일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왜 그 고민을 피하기에만 급급할까? 나는 그 고민을 마주하고 받아들이며 그 속에서 춤을 췄던 기억은 한 번도 없는 것 같다.

  글쎄, 나는 아직 젊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이는 계속해서 먹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한 살 한 살 나이가 늘어 갈 때마다, 나를 내려놓는 일이 참 어렵게 느껴진다. 나이를 먹으면서 겉치장이 늘고, 입는 옷이 한 겹씩 늘어나고 있나 보다. 홀딱 벗으면, 그 태풍 같은 그 고민 속에서도 춤을 출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어떤 고민이 들었을 때, 항상 걸리는 건 ‘지금의 나’다. 고민의 결과로써 ‘지금의 나’가 사라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그동안 내가 뭘 얼마나 잘 쌓아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알게 모르게 내가 쌓아온 것들이 한 번에 무너져 내릴까 봐, 한순간에 홀딱 벗지 못한다. 홀딱 벗은 내 모습을 보이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말이다.


  일례로 지금 이렇게 글을 쓰는 것 또한 그렇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이런저런 고민들에 휩싸인 요즘이다. 그런데 글을 쓴다는 건, 나를 내비치는 일이기에, 나의 민낯이 드러나는 일이기에, 이건 마치 옷을 홀딱 벗은 것 같이 느껴진다. 특히나 글짓기 실력은 늘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부족한 실력을 내비치는 일이니 이건 정말 내 알몸이다. 그래서, 사실은 그게 참 부끄러워서 계속해서 미뤄왔다. 안 쓰면, 안 내비치면 중간은 가니까.

  이건 고민을 직시하고 있는 모습과는 정 반대의 모습이다. 이건 고민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도망자의 모습이다. 고민을 마주하고 그걸 즐기는 영화 속 주인공들(그들도 애써 즐기려고 즐긴 건 아니지만)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그들처럼 다 내려놓는다면, 그 태풍을 그냥 온전히 다 마주하고, 홀딱 벗고, 홀딱 젖는다면 그들처럼 웃을 수 있었을 텐데.


-


  그래도 이번엔 결국 썼다.

  부족하지만 결국 썼고, 이렇게 나는 홀딱 벗으련다.

  될 대로 돼라 하면서, 나는 발행 버튼을 누르련다.


  이게 그 고민을 마주하고, 그 속에서 홀딱 벗은 채로 춤을 추는 나의 모습이거니와 싶다.

  그리고 그만큼 나는 즐기고 있고, 웃고 있다.


  나는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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