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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Aug 20. 2020

그 간의 이야기

귀국, 원고 투고, 그리고 지금

    그간의 이야기라는 제목을 붙이고 싶다. 사실 이 제목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안다. 내 브런치에 관심을 갖고, 왜 업데이트되지 않는 것인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그 간의 이야기라고 하건, 모르는 척 이어서 글을 쓰건 알아채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간의 이야기'라는 제목을 붙이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다. 다짐을 위한 것이다. 새롭게 시작해 보자고.




귀국을 했다.

(2019.05.20 - 2020.04.04)


    그렇다. 귀국을 했다. 사실 귀국하고 나서도 브런치에 몇 번 글을 쓰긴 했지만,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그러니 귀국을 한 사실을 그 간의 이야기에 포함해도 괜찮겠다.

    11개월간의 세계여행을 했다. 비행기를 타지 않고 북반구를 일주하는 여행. 이것이 나의 여행 목표였다. 그렇게 베트남에서부터 스페인까지(아니 불가리아까지라고 해야 하나) 비행기를 타지 않는 여행을 했다. 가끔 여행 인플루언서들의 인스타그램을 보면 OOcounrties, OOcities.라고 소개글을 써놓던데, 이를 보면 이겼다는 생각이 들만큼 수많은 나라와 수많은 도시를 지나쳤다.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을 거쳐, 러시아로. 러시아에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모스크바에서 우크라이나로 이동하며 유럽 땅에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는 쉥겐조약과 관련한 조건(쉥겐조약을 맺은 나라에서 90일 이상 머무를 수 없음)을 피하기 위해 비쉥겐국인 동유럽을 여행하다가, 슬로베니아를 통해 쉥겐국에 들어갔다. 그렇게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것을 마지막 일정으로 세계 여행이 끝이 났다.

    사실 북반구 일주를 하려면 여기서 끝내선 안 된다. 북미까지 관통하고 서울로 돌아와야 북반구 일주는 완성된다. 그런데 그놈의 COVID-19. 이 극악무도한 바이러스 때문에 나는 여행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글쎄, 운이 좋았다고 이야기해야 할까, 스페인 순례길이 딱 끝나는 그 무렵, 미국이 쉥겐국에서 출발하는 비행기를 전면 통제하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나라는 영국. 영국을 통해 미국으로 어서 들어가 그곳에서 버텨야만 했다. 사실 미국 여행은 조금 특별한 계획이었다. 미 서부에서 한국에서 오는 친구와 함께 여행을 하기로 약속을 한 것이다. 그러나 그 날짜까지 미국에서 버틸 재간이 없었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조금 저렴한 곳에서 스페인에서 지내다가, 북미 횡단을 하기에 적절한 날짜에 맞춰 넘어갈 계획이었는데, 미리 넘어가버리면 예산이 초과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곳에 더 머물 재간도 없었다. 모든 관광지들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순례길에서 만난 한 형님의 도움을 받아 불가리아로 떠났다. 불가리아에서 머물며 상황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불가리아에 도착하니,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내가 스페인에서 왔기 때문이다.(그 당시 스페인도 확진자가 급속도로 많아지던 때였다.) 불가리아의 집에서 형님과 함께 아주 심심한 자가격리 기간을 보내며, 언제쯤 미국으로 갈 수 있을지 계속해서 비행기표를 알아봤다. 그러던 어느 날 한통의 이메일이 왔다. 미국 여행을 하며 라스베이거스에서 꼭 보고 싶었던 '오쇼'에서 온 이메일이었다. 날짜 변경과, 취소를 잘해주지 않기로 소문난 '오쇼'가 코로나 사태로 인한 전액 환불 안내 메일을 보내온 것이다. 이쯤 되니 미국으로 가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갈 곳이라곤, 한국뿐이었다. 이제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편을 계속 알아봐야만 했다.

    한국으로 들어오는 항공편을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무조건 경유를 통해서 이동해야 했는데, 한국도 점점 타국으로부터 들어오는 비행기를 통제하기 시작한 터라, 한국행 비행기를 가지고 있는 공항이 많지 않았다. 또한 자국민의 보호를 위하여, 공항을 아예 폐쇄하는 나라도 많았다. 처음엔 두바이를 경유해 한국으로 돌아가는 코스가 그랬다. 항공편이 살아 있길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으나, 어느 날 두바이 공항은 폐쇄되었고 항공편이 사라졌다. 결국 코로나가 극성인 유럽 내에 남아있는 공항을 이용해야 했다. 암스테르담, 파리, 런던의 공항만이 한국행 비행기를 가지고 있었다.

    결국 암스테르담을 경유하는 티켓을 구매했다. 눈물을 머금고. 왕복 80만 원으로 오갔던 유럽이었는데, 편도 가격이 140만 원이라니. 터무니없이 비싸지만, 방법이 없다. 이러다간 한국으로도 못 돌아가는 상황이 올 것만 같다. 티켓의 상황을 매일 체크해야 했다. 하루가 다르게, 코로나와 관련한 각국의 정책이 달라지는 터라 우리의 비행기 티켓이 안전하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언제 취소될지 모른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비행기 티켓이 취소되었다는 이메일을 항공사를 통해 전달받았다. 다행히 일주일에 4회 운행하던 비행기를 편수를 줄여 3편만 운행하게 되면서 스케줄이 달라지는 것 때문에 취소된 것이었지만, 그 두려움을 잊기가 힘들다. 한국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

    그렇게 힘든 과정을 거쳐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도착해 2주간의 자가격리를 마치고, 현재는 해외유입 확진자의 수를 확인하는 일반적인 대한민국 국민의 상태로 돌아왔다.



원고를 작성하고, 투고하다.

    

    한국에서 하던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금전적인 풍요를 위해 일을 하고 싶어도 코로나 때문에 알바 자리를 찾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내가 무슨 일을 하며 하루를 채울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2020년 목표로 세워뒀던 '출간'이 떠올랐다. 그래, 나는 출간을 하고 싶다. 나의 여행기를 정리해서 출간을 하고 싶었다.

    11개월간의 모든 여행을 정리하면 참 좋겠지만, 분량도 분량이고 여행기가 넘쳐나는 출판시장에서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출간을 성공시킬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조금 더 특별한 경험이었던 베트남을 오토바이로 종주했던 이야기를 출간하기로 다짐했다.

    원고가 없지는 않았다. 인스타그램에 매일매일 일기를 썼던 것이 나의 원고였다. 그러나 당연히 이 글은 원고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의 수준이다. 이를 정리해야 했다. 이것을 다듬어서 제대로 된 원고를 만들어, 출판사에 투고해야겠다고 생각했다. 4월 초에 귀국을 하고, 6주간은 적응기간 및 방황기를 가졌으며, 그 이후부터는 매일매일 원고를 정리했다. 인스타그램에 썼던 글을 복사 붙여 넣기를 하고 조금씩 조금씩 깎아나가는 게 나의 일이었다.

    즐거웠다. 원고를 깎으며 그날을 회상하는 일도 즐거웠다. 또 수월했다. 매일 무슨 글을 써야 할까 머리를 싸맬 필요 없이 그저 말을 예쁘고 곱게 가다듬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까. 어려울 게 없었다. 가끔 처음부터 너무 정리가 안 된 글들을 깎을 땐, 머리가 터져나갈 것 같은 고통을 받기도 했지만 대체로 즐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일이 꽤 보람찼다. 이 기간 동안 나는 스스로를 1인 기업이라고 칭했다. 친구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출근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출근하듯 카페로 출근해서 이 일을 했으니까. 보다 자유로운 환경을 가졌지만 규칙적으로 생활하게 만드는 원고를 깎는 일은 보람을 갖기에 충분했다. 하루를 열심히 산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이에 만족하고 살았다.

    작업 기간이 조금 긴 것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아 있지만, 아니다. 더 예쁜 글을 만들기 위해서 계속 수정했다고 치자. 그래, 그렇게 두 달이 걸려서야 원고를 만들어 냈다. 이제는 이 원고를 가지고 출판사에 투고하는 일만이 남았다. 그런데 그 일은 너무나도 두려웠다. 당연히 안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전문적으로 글 쓰는 법을 배운 적이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니 글이 좋지는 못 할 것이다. 그렇다고 재밌는 소설을 쓰는 것도 아니다. 그저 단순한 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일 뿐일 텐데, 세상 누가 나의 이야기를 궁금해할까. 당연히 나의 글은 출판사가 채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목표는 출간이다. 어찌 되었건,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출판사에 이 원고를 보내야만 출간이라는 목표를 이뤄 낼 수 있다. 두려웠지만, 기획안을 만들어, 하나씩 하나씩 출판사에 이메일을 돌렸다.

    이메일을 돌리는 일은 어려울 게 없었다. 만들어둔 기획안과 원고를 이메일에 첨부하고, 원고를 투고하고 싶다고 내용을 쓰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서 어깨 넘어 듣기로, 내가 원고를 투고하면 출판사끼리 서로서로 다 알게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하루에 여러 군데에 이메일을 보내는 일, 그리고 복사 붙여 넣기로 내용을 쓰는 일을 지양하라고 들었다. 그 말을 따라 하루에 7개의 출판사에만 메일을 보냈다. 매번 다른 문장을 써서. 약 60군데의 출판사에 메일을 보내는데 또 한 달이 걸렸다.





그리고, 지금


    그래, 그리고 지금이다. 지금은 매일매일 데미지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 출판 거절 회신을 받기 때문이다. 보냈던 모든 출판사로부터 거절 메일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이쯤 되면 모든 출판사로부터 거절을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겠다. 출판 확정이 된 원고에만 답장을 하겠다는 출판사들도 더러 있었으니까.

    하루하루의 시작이 참 무겁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 할지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다. 현실이란 게 이렇게 무거운 것이었구나. 뭔가 될 것만 같은 기대로 가득 찼던, 스스로 꽤 잘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던 환상이 깨지면서 나는 한 겹씩 옷을 벗는 상상을 했다. 좁아서 소멸될 것만 같은 어깨가 그대로 드러나고, 내장지방을 가득 품은 뱃살이 이제야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기분이다. 나를 수식하던, 나를 감싸고 보호하던 모든 수식어가 떨어져 나가고, 나체로 세상에 던져졌다. 옷은 어디 있는 걸까.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다행히 글을 쓰는 일이 여전히 즐겁다. 생각이 정리되는 기분을 받기도 하고, 솔직한 이야기를 고백한 것 같은 기분을 받는다.(이 고백을 누가 듣는지는 모르겠지만) 고백한 사람의 후련함을 글을 쓸 때마다 느낀다. 그렇게 글을 쓰는 일이 아직까진 참 좋다.

    글로서 돈을 벌어먹고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벌어먹어보고 싶다. 나는 꾸준히 계속 글을 쓸 생각이다. 여기저기 똥 같은, 아니 정말 똥인 글들을 싸지르다 보면 못해도 파리는 꼬이겠지.(아 그렇다고 이 글을 읽는 당신더러 파리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동쪽에서 만난 귀인 같은 존재다.)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쓸 요량이다. 매일 업데이트를 하면 참 좋겠지만, 그럴 순 없다. 여태까지 브런치에 써온 글들을 훌륭한 글들이라고 할 순 없으나, 퀄리티를 유지하기 위해서 수정에 수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초고를 그대로 브런치에 올릴 수는 없겠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수정 작업 시간을 고려해 일주일에 한두 편 정도가 적당하겠다.

    글은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듯 나는 재밌는 이야기를 꾸며내는 재주가 없다. 소설을 쓸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간혹 써보긴 하지만 읽어주기 힘들다) 그렇기에 내 이야기 혹은 남의 이야기 혹은 나의 생각 혹은 남의 생각. 내가 아는 모든 이야기들을 당신에게 들려주도록 노력할 것이다.

    아직 업데이트하지 못한 여행기도 꽤 많다. 여행기도 꾸준히 정리해서 다시 연재를 이어갈 생각이다. 그래 새롭게 다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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