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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Aug 25. 2020

그냥 똥보단 황금똥

그래도 황금똥이 그냥 똥보단 더 궁금하잖아?


    우리들은 연극 스터디그룹이었다. 갓 군대를 전역한 나와 동기들이 그 그룹의 멤버였다. 나는 군대를 전역하고 연극에 대한 열정이 넘쳤었다. 어서 빨리, 다시 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러나 학교에 복학하기 전까지 내게 주어진 무대는 없다. 연극에 대한 끊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다 동기들과의 단체 카톡방에서 스터디그룹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동기들이 많았다. 나는 이 스터디그룹이 굉장히 반가웠다. 이거라면 복학하기 전까지 반강제로라도 연극을 놓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첫 모임을 가졌다. 사실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명색이 스터디를 위해 모인 것이니 스터디그룹에 대한 이야기들을 조금 나눴다. 우선 이름을 정했다. 그 당시에 우리 사이에서는 줄임말이 유행이어서, 우리는 '스터디그룹'을 줄여서 '스그'라고 불렀는데, 그 '스그'에 말장난이 붙어 '으쓱으쓰그'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는 스터디 방법에 대한 여러 가지 방법론이 오갔다. 실기를 함께 연습하는 게 중요하겠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지만, 공간에 제약이 있었던 터라 이는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공간을 확보하고 난 이후에 스터디를 진행할 수는 없느니, 우선 이번 달까지만이라도 이론을 공부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그렇게 다음 주까지의 과제를 정했다. 과제는 '작품 분석'이었다. 한 가지 작품을 놓고 작품 전체의 주제와, 장면별 주제를 파악하는 것이다. 이 분석을 토대로 서로 토의하며 작품 분석 능력을 키우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과제를 수행했다. 고등학교 시절 수능을 준비하며 문학 작품의 주제를 찾으려고 애썼던 그 모습 그대로, 희곡 작품의 주제를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렇게 서툴게 워드로 표도 만들어가며, 작품의 주제와 장면별 주제를 열심히 분석했다.




    고민을 하고 있다. 브런치에 계속해서 똥을 싸지를 생각인데, 얼마나 자주, 그리고 어떤 이야기로 똥을 싸질러야 하나 전략에 관한 고민을 하는 중이다. 테마는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두 가지가 될 것이다. '여행기'와 '나의 이야기'. 그리고 여기서 '나의 이야기'라 함은, 대체로 나의 일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해결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한 문제를 직면했다. 그것은 바로, 이제 나는 읽히는 일기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요 근래 사람들에게 글을 쓰는 일을 즐긴다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실제로 글을 쓰는 일은 즐겁다. 내 생각을 텍스트로 만드는 일은 꽤나 나를 즐겁게 만든다. 그렇다면 글쓰기가 즐거운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일련의 해소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글을 쓰면서 생각이 정리되는 해소, 그리고 속 이야기를 고백하는 해소. 두 가지의 해소 때문에 나는 글을 쓰는 일을 즐겁다고 이야기했다.

즐거우니까 계속 썼다. 내가 겪었던 일들을 썼고, 내가 생각했던 것을 썼다. 실제로 내가 몇 주 전까지 원고 작업을 했던, '베트남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또한 내가 겪었던 일들이고, 내가 생각했던 것들이다. 그래, 여태까지 나는 일기를 썼다. 그러나 일기'만'을 쓴 것이다. 그저 나의 감정적 해소를 위해, 자위를 위해, 글이 아닌 일기를 쓴 것이다.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썼다고 해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읽어줬을 때, 그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글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에 세상의 모든 일기는 완성된 글이 아니다. 그저 본인의 해소를 위한 배설일 뿐이다. 이 말인즉, 나는 여태까지 똥만을 만들어 냈다는 이야기다. 틀린 말이 아니다. 나는 누군가가 읽어주기를 바라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나만의 해소를 위해서 글을 썼다. 어떤 주제를 담고 싶은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생각하지 않았다. 안중에 없었다. 일말의 주제의식이라곤 가지지 않았다.

    세상 어떤 누군가가 똥을 궁금해하고, 좋아할까. 아, 그런 경우가 없진 않겠다. 내 자식의 건강 상태가 궁금해서 기저귀를 열고 변의 색깔을 확인하는 부모님들은 똥이 궁금한 것일 테다. 또 나를 사랑하는 누군가는, 변비에 걸린 나의 똥을 함께 기다리고, 변기에 빠진 나의 똥을 함께 좋아할 수도 있겠다. 그래, 이렇게 비유하니 딱 맞아떨어진다. 여태까지 나의 글은 부모님만이 궁금해했고, 나를 사랑하는 어떤 누군가만이 좋아해 줬다. 그래서 원고를 투고했던 대부분의 출판사로부터 거절의 회신을 받았나 보다. 나는 그들에게 똥을 던졌으니까.



    나는 최대 이윤만을 목표로 하는 기업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의 인간으로서 이기적인 존재임은 분명하다. 나 또한 일련의 이득을 원한다는 이야기다. 나는 나의 글이 누군가에게 전달되고, 그로 인해 내게 어떠한 이득이 생기기를 바란다. 여태까지 이득이 없진 않았다. 글을 통한 해소가 있었고, 자기 반성식의 글을 쓰며 다짐을 하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그 다짐은 글을 읽은 사람들 앞에서 한 다짐이기에, 약속을 지키고자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나의 삶이 보다 나은 쪽으로 견인하기도 했으니, 이는 분명 이득이긴 하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이상을 바란다. 나의 글이 더 많이 읽히기를 바란다. 솔직한 마음으로 이를 통해 금전이 주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아직 그 정도를 바라진 않는다. 그저 더 많은 사람이 즐겁게 읽어주는 것만이 내가 바라는 것이다. 이것 만으로도 내게 큰 이득이 될 것이다.

    똥 이어서는 안 되겠다. 그만 똥이어야 한다. 더 이상 똥으로 남아선 이득을 만들 수 없겠다. 그렇다면 앞으로 나의 글에 주제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보다 열심히 담아야겠다. 주제의식을 가지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아, 읽히는 글을 써야겠다. 솔직히 지금 이 글에도 주제가 없진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분명 이 글에 존재한다. 하지만 이 주제가 좋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이 글의 주제는 당신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내게 하고 싶은, 당신이 흥미를 가지지 않을 만한 이야기 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어렵다. 주제를 담아야 하고, 이를 재밌게 드러내야 하며, 그리고 무엇보다 그 주제 자체를 흥미로운 것으로 찾아야 한다는 것이. 앞서 이야기했듯이 해결 방법은 모르겠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방법이 떠오르질 않는다. 어떻게 해야 이 3박자를 맞출 수 있는 것일까?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사람이 나의 글을 재밌게 읽고, 그를 통해 나의 만족감 채울 수 있을까? 아직 잘 모르겠다. 그러나 조금씩 나아져야 함은 분명하다. 흥미로운 내 이야기 잘 찾고, 재밌는 방법으로 명확하게 전달하려는 노력은 분명히 내가 지금, 해야 하는 일이다. 똥으로만 남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 우선 이렇게 한 걸음씩 더 나은 똥이 되기 위해 노력하자. 똥도, 황금똥이 더 좋은 법이니까.


    발전의 시작은 문제점을 파악하는데에서부터 시작한다고 한다. 어디가 아픈지, 어디가 어떻게 문제인지 알아야 개선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 늦었지만 이제는 문제를 아니까.



    나는 열심히 주제를 찾아갔으나, 좋은 이야기를 듣진 못했다. 그 스터디그룹엔 친구들 사이에서 연기적으로 존경을 받던 친구가 있었다. 연기를 곧잘 하기도 하고, 우리 중 작품 분석 능력이 가장 뛰어난 친구였다.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는 우리 그룹 내의 영향력이 지대했다. 그런 그녀가 나의 과제를 향해 한마디 했다.


"이게 주제야? 이건 주제가 될 수 없어"


    '나랑은 생각이 조금 다른데?'라고 이야기해주지, 주제가 될 수 없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이란 말인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주제는 작가의 생각,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함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읽는 사람마다 다른 것 아닌가? 내가 생각한 작가의 생각이 이렇다는데, 왜 그게 객관적이어야 하지?

    그러나 모두가 그녀의 손을 들어줬다. 그리고 정말 이상하게도, 다른 친구들이 찾아온 주제도 그녀가 찾아온 것과 비슷했다. 나만이 유독 작가의 이야기를 왜곡해서 해석했다. 나만 이상한 주제를 들이밀었다. 나는 너무 민망했고, 한편으론 자존심도 상했다.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다 보니, 문득 '으쓱으쓰그' 모임을 가질 때가 생각났다. 오래된 메일함을 뒤져, 그 당시 내가 찾아갔던 주제를 다시금 읽어봤다. 나는 도대체 어떤 걸 주제라고 들이밀었던 걸까? 다시 보니 그녀는 착하게 말해준 수준이다. 이따위 것을 주제라고 찾아갔으니, 과제를 안 하느니만 못했다. 그땐 정말 몰랐다. 나는 그게 주제라고 생각했다.


    아니, 도대체 주제가 뭐길래. 고등학교 문학 시간 때부터 스터디 그룹을 할 때까지, 그리고 지금까지 나를 괴롭히는 걸까.


    그래도 그때 보단 지금이 황금똥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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