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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Aug 28. 2020

취기

이 세상의 모든 백수에게

"자기 잘난 맛에 하는 건데, 나 잘났다고 얘기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 포인트에서 힘들어지는 거지"


    즐거운 술자리 위로 찬 바람이 인다. 툭 뱉은 말이었지만, 나는 실제로 그런 상황에 처해 있었다. 내 잘난 맛에 취해 있었고, 내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람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나한테 잘났다고, 잘한다고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에게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뭐래 X신이"


    찬 바람이 일었던 술자리는 금세 다시 수다의 열기로 가득해진다. 저마다 현실을 외면한 듯한 뜬구름 같은 이야기들을 뱉으며 술자리를 데운다. 나는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분위기를 망친 탓도 있었지만, 나는 내가 뱉었던 말을 곱씹어 보고 있었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은 구름 위에서 즐거운 대화를 나눴고, 나는 하늘조차 보이지 않는 지하 단칸방에서, 알몸을 거울에 비춰 보고 있는 꼴이었다.


"가자 너 취했다."

    그래 나는 취해 있었다. 술에, 그리고 내 잘난 맛에.



    예술이 무엇이냐고 내게 묻는다면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음악가는 음악을 통해, 미술가는 미술을 통해, 그리고 작가는 글로, 배우는 연기로 본인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 그들의 작품은 그들의 이야기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취기 없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취해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더 맛깔난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술로 현실을 지우듯, 돈에 굴복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런데, 취기는 언젠가 가시기 마련이다. 자의적이건 타의적이건, 취기로부터 해방되는 순간이 언젠가는 온다. 술 좀 마셔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잔뜩 취했던 밤이 지나고 아침이 찾아오면 무엇이 남는지. 차라리 계속 취해 있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분명 들 것이다.


    다음 날 아침, 쓰린 속을 부여잡고 담배를 찾아 물었다. 습관처럼 피우던 담배인데, 어젯밤 술에 취해 피우는 걸 깜빡했나. 굉장히 오랜만에 피우는 기분이다. 문득 기분이 좋아진다.

    담배가 낯설 때면 스물두 살 처음으로 담배를 피웠던 때를 떠올린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의 난 술을 잘 마시지 못했다. 친구들은 술기운을 빌려 즐겁게 놀던데, 나는 몸이 힘들기에 즐기지 못했다. 그런데, 처음 피웠던 담배는 너무나도 손쉽게 나를 취하게 만들었다. 힘든 몸을 살살 달래 가며, 소주 한 병을 욱여넣어야 겨우 올까 말까 한 취기가, 고작 담배 한 까치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이후부터 담배가 습관이 되어버릴 때까지는, 나는 취하기 위해서 담배를 피웠다. 어차피 기분만 좋으면 장땡이니까. 어떻게 취하든 상관은 없으니까.


"진짜 못났다"

    거울에 비친 스스로에게 뱉은 말이다. 팬티 한 장만 덜렁 입고 있는 모습이 추하기 짝이 없다. 어젯밤을 끝으로 장마가 끝났다. 모처럼 만에 뜨거운 햇살이 젖은 땅을 말릴 것이다. 방으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에 벌써 미적지근한 물을 들이켠다.

    그래 나는 못났다. 더 이상 내가 잘났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는 내 잘난 맛으로는 취기를 느낄 수가 없다. 아니, 일말의 희망을 조금 섞어 정말 내가 잘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 잘났다고 이야기해주는 사람도 없고, 혹 누군가 정말 감사하게도 그런 말을 해준다 한들, 이제는 그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정말 한계인가 보다.



    손가락이 뜨겁다. 필터 끝까지 다 타버린 담배가 손가락을 따갑게 간지럽혔다. 담배를 비벼 끄며, 지난날의 담배처럼 다른 방법으로 취할 거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톱니바퀴로 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톱니바퀴이면서 동시에 톱니바퀴의 주인이고 싶었다.  안의 톱니바퀴를 스스로 굴려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고, 주인으로서  이야기를 파는, 그런 예술가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백수를 자처했다.

    그런데 잠깐, 회사도 그들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톱니바퀴를 고용해서 굴리는 것일 텐데, 그들은 톱니바퀴를 굴리기 위해 월급을 주고, 간혹 보너스도 주며 노력이라는 걸 하지 않는가? 그런데 나는? 나는 내 톱니바퀴를 굴리기 위해 무슨 노력을 했지? 내가 팔아야 할 이야기를 짜내는 데에 무슨 노력을 했지?


    오늘 해야 할 거리를 챙겨 씻지도 않은 채 얼른 길을 나섰다. 시간을 보니 어제 집을 나선 시간보다 훨씬 이르다. 카페에 도착하니 다른 때와 달리 꽤 한적하다.



    쓰린 속을 아메리카노로 달래 가며 못난 글을 짜낸다. 글은 못났지만, 문득 기분이 좋다. 또 다른 취기가 돈다.




    모차르트는 35년의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작품 수만 무려 쾨헬 번호(K.) 626편에 이르는 곡을 남긴 괴수이다. 5살 때부터 작곡을 했다 치면 약 2주일마다 한편씩을 만든 셈이다. 단순히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는 시간만 따져도, 어마어마한 양의 시간을 모차르트는 본인의 이야기를 짜내는 데에 노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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