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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Jul 29. 2021

변화_Zagreb, Croatia

조금씩 스스로를사랑할줄 알게 되는,

    기분이 좋아서 그랬나, 아니면 스플릿에 머무는 동안 너무 많이 걸어서 그런가, 스플리트를 떠나려는데 괜스레 무력감이 들었다. 보통은 도시를 이동할 때, ‘그래 또 가보자!’하면서 부지런히 짐을 싸서, 정류장까지 아주 힘차게 걸어가는데, 스플리트를 떠날 땐, ‘그래... 또... 가야지...’하면서 뭉그적 거렸다. 짐을 다 싸놓고 괜히 살 것도 없는 마트에 구경을 가지를 않나, 나 참, 그래 그만큼 스플릿이 정말 맘에 들었나 보다. 그래서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나 보다.

   

트로기르의 거리와, 해안가

    스플릿의 다음 목적지는 쟈끄레브였다. 하지만 쟈끄레브로 이동하기 전에, '트로기르'라는 마을에 들렀다. 이 또한 어떻게 보면 스플릿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아기자기한 스플릿의 느낌을 '트로기르'에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에 처음 들어보는, '트로기르'를 경유지로 삼게 된 것인데, 의외로 찾는 사람이 많은 지역 같았다. 트로기르의 버스정류장에 내리니 중국인 단체 관광객도 있었는데, 이 정도면 말 다했다. 이미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라는 이야기다. 심지어 스플릿에서 트로기르까지 버스를 함께 탔던 한국인도 있었는데, 이 정도면 정말 나만 이곳을 몰랐던 게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든다.

    그렇지만 비수기는 비수기인가 보다. 방금 이야기한 중국인 관광객이 트로기르를 찾은 사람의 전부였다. 사람도 많지 않고 길거리의 상점들도 대부분 문을 닫아서, 덕분에 아주 여유로운 관광을 했다. 거리도 아기자기하게 예쁘고, 은은하게 펼쳐지는 바다 내음도 참 좋고, 공기도 많고, 춥지도 않았다. 그래서 맥주를 마셨다. 그래 이 모든 게, 전부 맥주를 사마신 것에 대한 변명이다.

    진짜 이러면 안 되는데, 맥주가 너무 맛있는 걸 어떡해. 아 물론, 마시고 싶으면 사 마시면 된다. 하지만 너무 비싸서 탈이다. 그리고 맥주를 먹고 나면 괜히 공복감이 더 커져서, 또 군것질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군것질엔 맥주가 빠질 수 없고. 이건 끊을 수 없는 악순환이다. 안 그래도 유럽으로 넘어온 요즘, 한 끼 값이 너무 확 뛰어서 부담스러운데, 큰일 났다. 이렇게나 맥주를 쉽게 사 마시면서 어떻게 버티려는지 모르겠다.


인자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시던 트로기르의 어떤 아저씨




    난 이방인일 뿐이니까, 도시를 전부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생각보다 볼 게 없었다.’는 말은 최대한 지양하려고 한다. 하지만 쟈끄레브는 정말 생각보다 볼 게 없었다. 크로아티아는 워낙에 관광지로서 유명한 나라이기도하니, 그곳의 수도인 쟈끄레브엔 볼 게 많을 거라 기대했는데, '플리트비체' 같이 쟈끄레브 근교에 몇몇 관광지가 있을 뿐, 도시 자체에는 마땅히 가 볼만한 곳이 없었다.


    '나는 왜 이 여행을 시작했을까?' 마땅히 움직인 게 없으니, 또 쓸데없는 생각들이 비집고 올라왔다.


쟈끄레브 대성당과, 성 마리 교회


    나는 변화를 원했다. 변하기 전 나의 모습은 도대체 어땠길래 변화를 원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일련의 변화, 그 자체를 원할 뿐, '어떤 모습에서, 어떤 모습으로 변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없다. 그냥 단순히 여행이 끝나고 나면 무언가 변해 있지 않을까 싶은 기대를 했고, 그 변화를 위해서 나는 세계여행을 선택했다.

    물론 변화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을 수 있다. 물리적으로 살이 빠지는 것도, 수염과 머리가 더 이상 봐주기 힘들게 자라는 것도 변화라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매일 같이 새로운 경험들을 하며, 배경지식을 쌓고, 여러 이야깃거리가 생겨나는 것도 변화다. 이처럼 여행이 끝나고 나면 나는 분명 변화해 있을 것이다. 못 해도 세포 몇 개는 죽지 않을까. 그것도 변화라면 변화일 테니까. 그렇다면 그 여러 변화들 중에 나는 어떤 변화를 가장 원하는 것일까?

    어떤 변화를 원하는가? 에 대한 대답은 쉽게 나질 않는다. 하지만 나는 전보다 확실히 조금 더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조금씩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게 되어가는 변화가 정말 반갑다.

하나씩 하나씩 스스로 만족스러운 하루를 보내고 있으니, 스스로를 굳이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나는 스스로가 꽤 만족스럽다. 멋진 일, 남들이 꿈꾸는 일, 세계여행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사실 아직까지도 나는 내가 생각하는 멋진 일이라는 게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기에 아직까진 '나만의' 멋진 일이 아닌, 남들이 생각하는 '멋진 일'을 따라 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그 사실이 싫지만은 않다. 세계여행을 하고 있는 날들이 늘어 갈수록 나의 멋진 순간들이 쌓이는 것이고, 그 순간들을 통해, 나름 멋진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나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성 마르크스 성당 / 크로아티아는 빨흰이지!


    그래, 누군가 내게 왜 이 여행을 시작했느냐 묻는다면 변화를 원했다고 답하겠다.

    그리고 변해가고 있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답하고,

    어떻게 변해가는가?라고 묻는다면,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게 됐어라고 답하겠다.


쟈끄레브의 밤


    이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변화라 생각한다. 그 변화가 차츰차츰 체감된다. 부정적인 생각들은 의식해서라도 잠시 접어두고, 멋지다고 판단되는 일들로만 하루를 가득 채우자. 스스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자꾸만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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