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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Aug 17. 2021

그때 그 친구네 나라 1_Vienna, Austria

첫 만남과로컬 라이프

<그때 그 친구>


    폴과 나는 캄보디아에서 만났다. 나는 그때 태국에서 캄보디아로 국경을 넘고 있었는데, 국경마을에서 씨엠립까지 택시를 탈 생각이었다. 그러다 혹 나와 행선지가 같은 사람이 있다면 택시비를 함께 셰어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택시를 잡고 기다리고 있으니 마침 세명의 외국인이 같은 택시에 더 올라탔다. 그렇게 우린 처음 만났다.

    택시에 탔던 다른 외국인 친구들보다 폴과 통하는 부분들이 많았다. 다른 친구들은 우리와 다르게 약간 인싸 기질이 있는 데다가, 원래부터 둘이 알던 사이라서 일종의 나머지였던 폴과 나는 쉽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폴은 캄보디아를 여행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정보들을 이미 알고 온 여행자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이 딱히 없는 나는 폴을 졸졸 쫓아다니는 여행을 했다. 폴이 예약하는 숙소가 가장 접근성도 좋고 가성비도 좋다기에 따라가서 묵고, 앙코르와트에 간다니까 그 김에 따라가서 비용도 셰어 하고, 이렇게 캄보디아에서의 3주가량을 폴과 함께 보냈다.

    캄보디아의 마지막, 프놈펜에서 나는 폴과 헤어졌다. 폴은 세워둔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 일찍 베트남으로 넘어가야 했고, 나는 프놈펜에서 비자 문제를 해결하느라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었다. 그렇게 각자의 일정 때문에 프놈펜에서 아쉬운 마음을 맥주로 달래는데, 그때 내가 문득 유럽 이야기를 꺼냈다.

    '이번 나의 여행루트에는 유럽도 있어, 혹시 오스트리아로 가게 되면 연락할게.'

    폴은 얼마든지 놀러 오라며 웃으며 이야기했고, 시간이 흘러 우리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다시 만났다. 그와 함께 여행을 하는 동안 사실 불편한 부분들이 많았다. 내가 영어를 그렇게 잘하는 게 아니니까 그와의 대화가 특히나 불편했다. 그래서 가끔은 피곤하지 않은데도, 일부러 피곤한 척 대화를 피해 잠들어버린 기억도 있었다. 이런 기억 때문에 나는 폴과의 만남이 조금 무서웠다. '혹시나 어색하면 어떡하지', '폴은 나를 어색해하지 않으면 미안해서 어떡하지?'. 하지만 기우였다. 비엔나의 버스정류장에서 반팔 반바지를 입은 게 아닌, 패딩을 입고 있는 폴을 만나니 반가운 마음이 들어 당장 끌어안을 수밖에 없었다. 어색함은 온데간데없고 반가운 마음만이 있었다. 그래도 3주라는 시간 동안 폴과 즐거운 추억을 쌓기는 했나 보다.


나의 시그니쳐 포즈를 따라하던 폴


<그 친구와의 첫날>


    비엔나에 도착 한 날, 폴은 나를 픽업하러 버스 정류장까지 나왔다. 본인의 차를 가지고 나온 것은 아니기에 픽업이라는 말이 무색하긴 하지만 그게 오히려 좋았다. 폴과 함께 그의 집까지 걸으며 비엔나의 밤거리를 조금 둘러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배고프지 않냐며 함께 소시지도 사 먹고 (폴이 정말 착한 게, 본인은 비건이면서, 혹시나 내가 배고파하지 않을까 소시지를 권한 것이었다.) 집 앞의 작은 피자집에서 피맥도 함께 했다. 이렇게 폴과 함께하는 비엔나의 일정이 시작된 것이다.

    그와 함께 지내는 일이 무엇보다 좋았던 건 로컬 라이프를 체험해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보통 숙소 문을 딱 열면 바로 관광지가 보일 정도로 관광지에 가까운 곳에 숙소를 잡았다. 아니, 보통 그런 곳에 숙소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집은 당연히도 유명 관광지와는 꽤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그렇기에 관광지까지 걸어가며 동네 구경도 할 수 있고, 괜찮아 보이는 이름 모를 빵 집에서 빵도 사 먹고 하니, 내가 진짜 비엔나에 살고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게다가 함께 수다를 떨 수 있는 폴과 함께라니 더욱이 로컬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비엔나 유학생의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비엔나의 풍경들

    캄보디아에서도 그랬듯이 폴이나 나나 오래 걷는 걸 힘들어하는 편이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3주라는 시간 동안 함께 할 수 있었던 걸 테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폴과 함께 걸으면서 비엔나를 누볐는데, 그저 폴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다 보니, 내가 지금 어디쯤에 온 것인지 분간이 안 되는 것은 조금 아쉬웠다. 보통은 지도를 살피면서 걸으니까, '내가 지금 이쯤에 있겠구나' '이 옆엔 이런 것들이 있겠지'하며 감이 잡혀야 하는데, 그럴 새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집으로 돌와와 하루를 정리하면서, 다녀왔던 곳들을 곱씹어보면 다행히도 유명 관광지들은 전부 구경하고 온 것이었다. 그래 그거면 만족이다.

    점심으론 폴이 자주 가는 파키스탄 식당에 갔다. 이곳은 소위 말해 대학가 맛집이다. 거의 학생식당처럼 식당 안의 모든 손님이 폴과 같은 대학 '비엔나 대학'의 학생들이었는데, 나는 이 식당이 참 좋았다. 폴이 없더라도 혼자 와서 먹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말이다. 먹고 싶은 만큼 먹고, 내고 싶은 만큼 내는 식당이었기 때문이다.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만큼 덜어다가 먹고, 나갈 때 적당한 금액을 계산하고 나가면 되는 곳이었다. 돈이 없는 나는, 이런 식당이 아주 반갑다. 그렇다고 오늘 진짜 많이 먹고 돈을 덜 낼 수는 없었다. 옆에서 폴이 지켜보고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걸 다 떠나서, 쉽게 찾을 수 없는 골목에 있는 아주 작은 식당이라는 것, 그리고 손님들이 전부 비엔나 대학의 학생들이라는 것, 그런 그들 사이에서 로컬이 된 것 마냥, 유학생이 된 것처럼 밥을 먹는다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이만큼 먹고도 5유로(내고 싶었지만) 10유로...


    이후엔 폴의 학교를 잠깐 구경했다. 외관부터 내부의 모습까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스케일이었다. 이런 곳에서 공부할 수 있다면 나는 대학원은 고사하고, 교수도 할 수 있겠다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만약 반대로 폴이 한국에 놀러 왔을 때, '나는 이제 대학생이 아니야'를 핑계 삼아 나의 대학교를 보여줄 필요는 없어서 참 다행이다. 분명 너무 민망했을 것이다. 폴이 보여준 학교 도서관은 호그와트 수준인데, 내 모교의 도서관은...

    폴은 그 멋진 학교로 수업을 들으러 유유히 사라지고, 나는 혼자 남아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을 구경했다. 합스부르크 시절 왕가의 컬렉션들을 전시한 곳이라던데, 소장품들을 보면, 합스부르크 왕가의 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소장품도 엄청 많고 좋은 회화들도 많았다. 그곳에서 꽤 많은 시간을 홀로 보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미술관을 혼자 찾은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남 눈치 볼 것 없이 실컷 돌아다니며 구경할 수 있다는 게 이렇게나 좋은지 몰랐다. 나는 미술의 ㅁ도 모르는 문외한으로서 뭐가 좋은 작품인지는 잘 모르지만, 괜히 끌리는 그림 앞에 오랫동안 앉아 있어 보기도 하고, 한 번 본 그림을 눈도장을 찍어놓고, 다른 작품들을 둘러보다가 '역시 이만한 그림이 없군'하며 다시 돌아와서 또 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비엔나 대학교의 도서관


    폴 덕분에 아주 알찬 비엔나 투어를 마치고, '진정한 로컬이 되려면, 장을 봐서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어 마트로 향했다. 간단히 저녁을 해 먹을 수 있게 재료들을 사서, 집으로 돌아와 요리를 만들어 먹었다. 그래 봐야 역시나 파스타일 뿐이지만, 그냥 장을 봤다는 사실이, 집 같은 곳에서 요리를 해 먹는다는 사실이, 내가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난 그 느낌이 참 좋다. 파스타가 아직 잔뜩 남았지만 내일도 로컬의 기분을 좀 내야 하니까 이것저것 장을 좀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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