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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Aug 18. 2021

그때 그 친구네 나라 2_Vienna, Austria

<비포선라이즈>부터,<제3의사나이>까지

<그 친구와의 둘째 날>


    어제 폴과 함께 돌아다니며 한 카페에 들렀었다. 폴이 가장 좋아하는 카페라고 내게 이야기해줬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지금 우리가 있는 이 카페가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 나온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데, 내가 지금 그 카페에 와있다니.'

    '맞아, <비포 선라이즈>의 배경이 비엔나였지!!'


    영화를 다시 보니 정말 그 카페가 어제 봤던 모습 그대로 등장했다. 지난번 캄보디아에서 영화 <알포인트>의 로케이션에 다녀왔던 것도 그렇고, 드라마 <왕좌의 게임> 촬영지에 다녀왔던 것도 그렇고, 나는 영화의 로케이션을 찾아가 보는 일이 즐겁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실제 로케이션에 가본다는 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니까. 그래서 오늘은 여행의 이름을 "비포 선라이즈 투어"로 이름 짓고, <비포 선라이즈>의 로케이션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비포 선라이즈> 속 '클레인스 카페'


    <비포 선라이즈>는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남녀가 비엔나에서 사랑에 빠지는 모습을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사실 비엔나의 모든 곳이 <비포 선라이즈>의 배경이다. 그만큼 어디에서나 <비포 선라이즈>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고 보면 되는데, 그래서 사실 오늘 투어의 계획은 무작정 걷는 것이었다. 어제 영화를 다시 보기도 했고, 비엔나의 모든 곳이 로케이션이니까, 두 남녀가 비엔나에서 우연히 만났듯이 나도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그 영화 속 장소를 발견하는 그런 낭만을 꿈꿨다. 그런데, 오늘 아침 늦잠을 자버렸다. 해도 일찍 떨어지는 데다가, 저녁엔 폴과의 약속도 있어서 무작정 걸을 수는 없었다. 계획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연히 로케이션을 마주하는 경우는 아마 없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하는 수 없이 인터넷에 검색을 통해 '<비포 선라이즈>의 발자취를 따라서 비엔나 걷기' 같은 블로그 글을 참고했다. 대부분의 곳들은 어제 폴과 돌아다니며 다녀왔던 곳들이기에 그런 곳들은 빼고, 못 가봤던 곳, 영화에서 중요한 장면으로 나왔던 곳 위주로 하루 종일 돌아다녔다.


비엔나 속 <비포 선라이즈> 찾기


    혼자만의 "비포 선라이즈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약속 장소에서 폴을 기다렸다. (약속 장소 또한 <비포 선라이즈>의 로케이션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온 폴과 함께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아주 작은 독립 영화관으로 향했다. 정말 고맙게도 폴은 캄보디아에서 영화 <킬링 필드>를 함께 봤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캄보디아에서 제일 좋았던 하루를 꼽으라면 영화를 봤던 그날을 꼽을 만큼 그날을 아주 좋게 기억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폴이 그 사실을 알았는지, 내가 비엔나에 온다니까 오늘의 일정을 준비해준 것이었다. 그때와 비슷한 경험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일찍부터 내가 비엔나에 머무는 기간, 본인이 쉬는 날, 영화 상영스케줄을 전부 맞춰 미리 짜둔 것이다.

    폴의 섬세함 덕분에, 또 좋은 추억을 하나 만들었다. 영화의 제목은 영화 <제3의 사나이(The Third Man)>. 아쉽게도 캄보디아에서 <킬링필드>를 봤을 때처럼 울림이 깊은 영화는 아니었다. 그저 영화 속 배경이 비엔나이기 때문에, 비엔나의 작은 독립 영화관에서 상영하고 있는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지난번 캄보디아에서 영화를 봤던 때처럼 외국에 있는 소규모 독립 영화관을 구경하는 일만큼은 너무너무 좋았다. 한국에서는 이제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이 대세니까 더 이상 느낄 수 없는 느낌을 이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주인장 마음대로 골라 놓은 영화를 40석이 채 되지 않는 공간에 옹기종기 앉아서 보는 소소한 즐거움. 그리고 신작이 아닌 오래된 명작을 보는 즐거움. 한국에서도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는 곳들이 많아지면 참 좋을 텐데, 아쉽다.


비엔나의 독립영화관 'BURG KINO'


    그러고 보니 <비포 선라이즈>부터, <제3의 사나이>까지 하루 종일 영화와 함께한 날이 되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오늘 하루가 유독 보람차고 맘에 든다. 폴네 집에서 머물 생각으로 일정을 길게 잡으니 이런 즐거움도 느낄 수 있고, 참 좋다. 이 순간이 끝나지 않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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