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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성호 Aug 19. 2021

그때 그 친구네나라 3_Vienna,Austria

에곤쉴레의 자화상그리고 슈니첼

그 녀석과의 셋째 날


    지난날에 장을 봐 둔 음식들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고, 폴과 함께 버스를 타고 비엔나의 외곽으로 나갔다 돌아왔다. 그래 봐야 시내에서 30분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지만, 비엔나의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자그마한 야산이라고 하니 몹시 궁금했다. 서울로 치면 글쎄, 남산쯤 되려나? 하지만 날씨 때문인지 우리가 찾았을 땐 남산과 달리, 관광객이 많진 않았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일지도 모르겠다. 비엔나 시내에는 볼거리가 많으니까 외곽까지 나와 볼 일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이렇게 관광객이 많이 없는 곳을 찾아가 보는 일은 즐겁다. 괜히 나만 알고 있는 은밀한 비밀장소가 생기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엔나의 첫날 폴이 내게 알려준 일정들 중에서, 이곳을 제일 기대하고 있었다. 남들은 잘 모르는, 로컬이 알려주는 뷰포인트에 가보는 일이니까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기대와 달랐다.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너무 은밀한 곳이었다. 아니 '애매한 은밀함'이라는 표현이 더 좋겠다. '야산 속에 본인만이 알고 있는, 풍경이 아주 잘 보이는 어떤 바위' 이런 것도 아니고, 찻길이 아주 잘 닦여있는 언덕배기 마을일 뿐이었다. 여기까지만 봤을 땐 은밀함과는 아주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내게 은밀한 장소다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 것은 아마 날씨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버스에서 내렸을 땐 안개가 자욱했다. 방향을 찾고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온 사방에 안개가 가득했다. 덕분에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장소를 찾은 것 같은 기분은 들었지만, 겨우겨우 뷰포인트를 찾아 비엔나의 시내를 바라봐도 보이는 건 눈앞의 안개뿐이었다. 어쩌다 보니 정말 정말 은밀한 곳을 우리가 찾아온 셈이었다. 그렇다고 언제 걷힐지 모르는 안개를 마냥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계획대로 길을 따라 아래쪽으로 걸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비엔나 시내를 구경하며 (물론 보이지 않았지만) 걸어내려가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시내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안개는 조금씩 옅어졌다. 걷다가 만난 넓은 공원에서 뛰어놀고 있는 아이와, 쌓인 눈 밭을 뛰어다니는 신난 강아지들도 보였다. 비엔나의 전경을 보지 못해서 아쉬웠던 내 마음도 조금 나아졌는지, 깊게 들이 마신 숨에서 아주 맑은 공기인 게 느껴져서 기분도 차츰 좋아졌다.

    문득 시내 가까운 곳에 녹지가 잘 조성되어 이렇게 맑은 공기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서울 가까이에도 그리고 서울 속에도 참 많은 공원과 녹지가 있다. 글쎄, 맑은 공기를 누리지 못한 건 그저 '나'인건 아닐까. 가까이 있다는 이유로 멀리한 건 다름 아닌 나 스스로인데, 왜 난 부러워하고 있지?


Steinbruchwiese 공원


    폴을 다시 학교로 보낸 뒤 나의 일정은 국립도서관에 가보는 것이었다. 도서관이 가진 역사도 역사지만 도서관 내부가 굉장히 아름답다고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읽을 수 있는 책은 이곳에 없겠지만, 저녁까지 충분한 볼거리를 제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단순히 도서관에 들어가는 것인데, 입장료가 생각보다 비쌌다. 이미 단순 도서관이 아닌, 관광지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인가 보다. 차라리 비슷한 가격을 지불하고라도 미술관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쉽지만 국립도서관을 뒤로한 채 레오폴드 미술관으로 향했다.

    레오폴드 미술관에서는 클림트와 에곤 쉴레, 그리고 여러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 중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미술관에 갈 때,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자 방문하는 듯하다. 책에서만, 인터넷에서만, 명화 퍼즐에서만 보던 그림들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유명한 미술관을 찾는 것이다.

    그러다 문득 오늘 레오폴드 미술관에서 새로운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난날과 같이 내가 아는 작품들을 찾아보고, '오 이거 알아', '저건 그때 퍼즐에서 본 적 있는데?' 따위의 감상을 하기도 했지만, 오늘따라 작가들의 자화상에 눈길이 많이 갔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자화상은 '본인이 생각하는 본인의 모습'을 그린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나아가 작품을 그리며 남들에게 보일 것이라는 걸 생각하며 그렸을 테니, 어쩌면 본인이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를 자화상으로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생각이 '작가'에서 '나 스스로'로 번졌다. 나는 미술로 나를 표현하는 화가는 아니지만, 어떻게 나를 표현하고 있는 걸까. 단순히 이 글을 예로 든다면, 이 속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인데, 또한 이 속에 내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것인데, 그게 뭘까. 참 궁금하다. 어떤 의도를 담아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글을 보는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지 정말 궁금하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 걸까?


명화 퍼즐에서나 보던 클림트의 <죽음과 삶> / 에곤쉴레의 자화상


    저녁식사로는 메뉴를 이미 정해두었다. 지난번 헝가리에서 굴라쉬를 찾아 먹었듯이, 오스트리아에서는 슈니첼을 먹어보고 싶었다. 오스트리아를 대표하는 음식이라고 하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돈가스'와 아주 똑같다길래, '돈가스'를 정말 정말 좋아하는 대한민국 남자로서,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다. 이 때문에 미리 폴에게 물어보고 슈니첼 맛집을 미리 알아두었다.

    그 식당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이곳을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로컬 맛집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미 관광객들 사이에서도 유명한가 보다 이곳을 찾은 나 같은 관광객들도 많이 보였다. 주문을 하기 위해 메뉴판을 보니 참 다양한 종류의 슈니첼이 있었다. 뭐가 맛있을까, 뭐가 가격 대비 괜찮을까 고민을 하다가, 제일 첫 번째 메뉴, '오리지널 슈니첼'을 감자튀김과 함께 주문했다. 제일 기본을 먹어보면 다 먹어본 거지 라는 생각으로 주문한 것인데, 아뿔싸, 소스 없는 돈가스가 나올 줄이야. 간이 되어 있기야 했지만, 이런 돈가스는 너무 낯설다. 기본 소스는 그래도 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그냥 튀긴 돼지고기만 덩그러니 나왔다. 내가 너무 한식 돈가스, 혹은 일식 돈가스만을 생각했나 보다. 테이블에 마련된 소금과 후추로 급한 불을 끄긴 했지만, 이걸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도 좁은 매장 탓에 합석으로 알게 된 한 브라질 청년이, 내가 고되게 먹고 있는 모습을 봤는지, 내게 슈니첼과 어울리는 맥주를 추천해줬다. 또 그렇게 맥주와 함께 먹는 오리지널 슈니첼은 꽤 괜찮았다.


Schnitzelwirt


    폴네 집에서 머물면서 숙소 값이 세이브되고 있다. 이렇게 아낄 수 있을 때 확 아껴두어야 다음에 또 나눠서 쓸 텐데라는 생각이 들지만, 숙소 값을 아껴서 이것저것 경험해볼 수 있어서 좋다. 아낀 숙소 값으로 레오폴드 미술관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했고, 오스트리아의 대표 음식 슈니첼도 맘 놓고 먹어 봤다. 이런 점에서 폴에게 정말 정말 감사하다. 덕분에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있다. 물론 계속 쉬기만 하는 기분이라 약간 게으름뱅이가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이 게으름이 조금 더 연장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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