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챙총_Frankfurt, Germany

몇 번의 인종차별

by 한성호

그냥 그렇게 내버려두는 것이 현명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따위 사람을 갱생시키려 노력하지 말고, 그냥 '그러려니'하고 넘어가는 게 사건에 휘말리지 않는 방법이며, 또 본인의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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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코텍 모던 미술관의 피카소와 칸딘스키


뮌헨에서 손가락을 치료하느라 시간을 보낸 게 아까웠다. 다음 도시로 넘어가기 전, 뮌헨을 조금 더 즐기고 가야겠다는 마음으로, 가장 가보고 싶었던 '피나코텍 모던 미술관'에 다녀왔다. 사실 아무것도 모르지만, 피카소의 작품과 칸딘스키의 작품이 있다길래 '어? 나 피카소랑 칸딘스키는 아는데?' 하는 마음으로 가보고 싶은 곳이 된 것이다. 하지만 정작 미술관에 도착해서는 피카소고, 칸딘스키고 간에 독일의 '바우하우스 디자인'에 흠뻑 젖고 말았다.

대학시절 교양과목으로 독일 바우하우스에 초점이 많이 맞춰져 있던 '현대 디자인과 브랜드'라는 강의를 들었던 적은 있다. 그만큼 독일의 바우하우스가 현대 디자인과 밀접한 관계를 하고 있다는 말일 텐데, 사실 나야 어쩌다가 독일이 현대 디자인의 선두주자가 되었는지 잘 모른다. 유명한 디자이너들은 누가 있는지, 왜 이 디자인이 훌륭한 디자인인지 교양 수업으로 들었음에도 하나도 기억에 나질 않는다. 하지만 오늘 미술관에서 강의자료 속에서 봤던 작품들을 실제로 보고, 이것들이 '현대의 것'이라고 생각하니 괜스레 더 가깝게 느껴진 것만 같다.

2층 일부 공간에 마련된 'Feeling'이라는 이름의 전시도 흥미로웠다. 일부러 작가의 이름과 작품명을 알리지 않은 채, 느껴지는 대로 느껴보라는 콘셉트의 전시였다. 아, 이 순간에 누군가 함께였다면, '야, 이건 이런 걸 말하는 거 같지 않아?' 하며 각자만의 생각을 공유하면서 즐겁게 볼 수 있었을 텐데, 찐한 아쉬움이 남는 전시였다.

분명 나는 칸딘스키와 피카소를 보러 미술관에 온 것인데, 현대 디자인에 매료되어, 현대 미술 전시에 매료되어 한참 동안 미술관을 돌아다녔다. 이 정도면 미술관이 아니라 전시회에 다녀왔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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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나코텍 미술관의 점시품들


이제는 프랑크푸르트다. 뮌헨이 끝나갈 때 즈음, 여러 도시들을 놓고 어딜 가볼까 하며 줄다리기를 하는데, 결국 프랑크푸르트가 다음 도시로 선정되었다. 원래는 라오스 여행 중에 만난 독일 친구가 살고 있는 '오펜부르크'에서 신세를 질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라오스에서 나와 헤어지고 난 뒤에 다른 여행자들을 또 많이 만났는지, 이미 다른 친구들로 본인의 집이 꽉 찼다고 이야기했다. 그렇다고 오펜부르크에 호스텔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친구를 보겠다고 비싼 호텔에 묵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카를스루에'라는 도시 또한 후보지였다. 프랑스로 넘어가려는 경로에 딱 걸쳐있어서 다음 목적지로 손색이 없었지만, 무얼 볼 수 있는 곳인가 하고 간단히 검색을 해보니, 그다지 흥미가 가는 부분이 없었다. 결국 그렇게 여러 도시들 중 프랑크푸르트만이 나의 선택을 받게 되었다.


IMG_7396.jpg 프랑크푸르트 기차역


프랑크푸르트의 기차역에선 새 것의 냄새가 났다. 그만큼 프랑크푸르트는 '유럽'이라고 하면 처음 떠오르는 그런 고풍스러운 모습을 가진 것이 아니라, 아주 현대적인, 도시다운 도시 같았다는 이야기다. 이런 프랑크푸르트를 돌아다니다 보니 오히려 독일의 다른 도시들이 궁금해졌다. 아쉽게도, 좋은 뜻이 아니라 나쁜 뜻으로 다른 도시들이 궁금해진 것이다. '다른 도시들은 훨씬 재밌었으려나, 훨씬 볼거리가 많았으려나'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처음 와보는 곳이었지만 너무나도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프랑크푸르트의 시내는 역삼동 같았고, 여의도 같아 보였다. 프랑크푸르트가 괜히 독일 경제와 금융의 중심지라고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덕분에 특별한 이벤트랄 게 없었다. 용기 내어 숙소 근처에 있던 작은 가정 병원에 들러 손가락 드레싱도 새로 할 겸 붕대를 갈았고, 여느 때처럼 프랑크푸르트를 실컷 걸어 다니며, 시장에서 마늘과 올리브 오일을 사서, 알리오 올리오를 아주 맛없게 만들어 먹은일, 이게 프랑크푸르트에서 했던 일의 전부다.


IMG_7373.jpg 높은 빌딩들이 많이 보이던 프랑크푸르트

아, 특별한 일이 있긴 있다. 바로,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것이다.


인종차별의 경험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첫 번째는 사라예보에서 크로아티아 스플릿으로 넘어가려고 아침 일찍 버스정류장으로 향하고 있었을 때였다. 새해 첫날이라 그랬는지 늦게까지 술을 마신 사람들이 길거리에 많았다. 그중 한 사람이 나를 바라보며 '칭챙총'이라고 말한 것이 나의 인생 첫 번째 인종차별 경험이었다. 그러나 재미난 이야깃거리가 생길 수 있는 이벤트였음에도 불구하고, 별일 없이 사건은 종료되었다. 내가 그냥 지나쳐버린 것이다. 나는 버스를 놓칠까 봐 부랴부랴 정류장으로 뛰다시피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난생처음으로 당해보는 인종차별이라서 그런가 별생각이 들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그 인종차별을 반갑게 여겼다. 그 '칭챙총'이라는 단어 때문에 내가 여행하고 있다는 게 실감이 났다고 해야 할까? 그렇게 첫 번째 사건은 물 흐르듯 지나갔다.

두 번째는 크로아티아 스플릿에서 숙소의 체크인을 기다리느라 한참을 밖에 서있었을 때였다. 사실 이 사건은 인종차별이라고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저 크로아티아의 꼬마 애들과 잠시 자존심 싸움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숙소 문이 열릴 때까지 한참을 밖에서 짐을 들고 서 있었다. 그런데 길거리에서 놀던 크로아티아 꼬마들이 동양인이 내가 신기했는지, 내게 비비탄 총을 쏘아댔다. 꼬마 애들이니까 '그러려니'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꽤 화가 났다. 인종차별이 아니더라도, 길가던 누군가에게 비비탄 총을 맞는다면 화가 나는 게 정상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는 반응을 할 수가 없었다. 저 아이들을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꽤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잡으러 가더라도 저들은 더 도망치면서 재밌다고 더욱이 총을 쏘아댈 텐데, 그리고 만일 내가 저들을 잡으러 뛰어가면 내 짐은 누가 지킨단 말인가. 한참을 그 꼬맹이들을 어떻게 구워삶을까 생각하며 그 아이들을 그저 노려보기만 하고 있었는데,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자, 숨어있던 한 꼬마가 내게 인사를 하고 숨어있던 다른 친구들과 함께 자리를 떠났다. 떠나면서 내게 뭐라 뭐라 한 말이 있긴 한데, 그땐 죄송하다는 뜻인 줄 알았는데, 지금 와 생각해보니, '안녕 노잼 아저씨'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아, 쓰다 보니 자존심이 확 상하네?

마지막 세 번째이면서 가장 최근의 인종차별은 오늘 프랑크푸르트에서였다. 마지막 세 번째라고 해서 특별한 인종차별은 아니다. 그저 첫 번째와 똑같이 지나가던 사람에게 '칭챙총'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뿐이다. 길을 걷고 있는데, 내 옆을 지나가는 한 사람이 아주 정확히, 나보고 들으라는 듯이, '칭챙총'이라는 단어를 내 귀에 꽂았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나 몰상식한 발언을 하는 거지? 하며 뒤돌아보니 그곳엔 흑인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 흑인이 내게 인종차별을...? 당한 게 많아서 내게 복수하는 건가...?' 문득 이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두 번의 인종차별로 인해, 만약 내가 인종차별을 당한다면 이렇게 이렇게 말해야지 하면서 시나리오도 그려뒀는데, 상대가 흑인일 줄이야. 물론 그 사람을 불러 세워 싸웠다고 한들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흑인이 내게 인종차별을 했다는 사실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렇게 타이밍이 놓치고, 그냥 서로 갈길을 가는 것으로 세 번째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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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오래된 도시의 느낌이 났던 프랑크푸르트 시청광장 인근


나는 지금 머리도 굉장히 길고, 수염도 정돈되지 않았다. 비주얼적으로 놀리기 쉬운 비주얼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맞다. 인종차별을 하기에는 내 비주얼이 좀 강하게 생기긴 했다. 그렇다 보니 사실 이렇다 할 만큼 크고, 특별한 인종차별은 아직까지 내겐 없었다. 글쎄 다행이라면 정말 다행인 일이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인종차별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고, 나는 그저 비주얼로 인종차별을 이겨낸 게 아닌가 하며 생각한다.) 그런 인종차별을 겪는 상황에 대해서, 내가 뭐 여행 전문가는 아니지만,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생긴 나만의 팁(?), 나만의 답을 이야기하자면, '무시가 최고다'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글쎄, 인종차별이라는 것은 맞서 싸워서 없애야 하는 존재임은 분명하지만, 인종차별을 하는 그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그냥 그렇게 살다가 분명 이 세상에서 어딘가에서 도태되어 살아갈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걸 보니 난 참 워낙에 둔한 사람인가 보다. 글쎄 좋게 얘기하면 넓은 마음, 침착한 성품이라고 포장될 수도 있는 성품이겠지만, 그냥 나는 둔탱이일 뿐이다. 매사에 예민하게 굴지를 않는다. 그러니 누가 돈을 훔쳐가도, 손가락을 다쳐도, 인종차별을 당해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것일 테다. 손가락을 다친 일도, 인종차별을 당한 일도 글로 쓰고 보니 엄청 예민하게 군 사람처럼 표현되었을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글로 쓴 것보다 별생각 없이 사건들이 흘러 지나갔다. 어차피 난 예민하지 않은 사람이니까, 하루가 지나고 나면 '그런 일이 있었나?'하고 넘어가게 될 것이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일련의 인종차별들을 쉽게 넘어설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5CA48EE0-99C3-420D-91B4-1C2CF76042E9.jpg 프랑크푸르트의 길거리


그런데 나는 왜, 세상 모든 일에 이렇게나 둔하게 굴면서, 왜 내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적 생각들에는 예민하게 구는 걸까? 정말 생각만으로 너무 고되다 고되.


한국은 벌써 설날 아침이 밝고 있겠다. 한국에 있을 땐, 연휴라고 늦게 잠드는 바람에 차례를 지내려고 아침에 일어나는 일이 늘 힘들었는데, 이를 몸이 기억하는지 꽤 졸리다. 지금 한국의 시간은 그렇게 힘겹게 일어나서 차례를 지내려고 씻고 있을 시간 때쯤 됐겠다.

우리나라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말을 1년에 두 번이나 한다. 양력으로 해가 바뀌는 날에도, 음력으로 해가 바뀌는 날에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하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다른 세상 사람들에 비해 두배로 복을 받는 셈이 아닐까. 그래, 올해엔 정말 복이 두배였으면 좋겠다.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 아니더라도 올해엔 커다란 복이 하나 있었으면 싶은 욕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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