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응급실_Munich, Germany

마취, 째기, 짜기

by 한성호

진통제를 처방받을게 아니라, 진정제를 처방받아야 했다.


나는 손가락을 다쳤다. 사실 이번에 다친 것은 아니고, 지난번 크로아티아에 있을 때, 낮은 돌담을 오르다가 내가 내 손을 밟는 바보 같은 짓을 했는데, 그게 상처가 되었다. 그 상처는 꽤나 오랫동안 낫질 않았고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러다 오늘, 그 상처 때문에 병원엘 다녀왔다. 참으라면 참을 수 있을 정도의 아픔이긴 했지만, 이렇게나 오래도록 낫질 않는 걸 보니, 이번엔 병원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손가락을 처음 다쳤을 땐 별생각 없었다. 약을 바르면 금방 괜찮아질 것 같은 아주 조그만 상처 정도였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자 손톱 사이로 계속 피고름이 나오고, 손가락이 퉁퉁 부어올랐다. 혼자만의 판단으로 피고름을 짜내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생각하며 아픔을 꾹 참고 아픈 부위를 눌러보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는 심해지면 심해졌지 나아질 생각을 안 했고, 시간이 지나면 피고름이 다시 차 오르며 계속해서 아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비교적 아픔을 잘 견디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연치유의 힘을 믿어 본다고 계속해서 손가락을 방치해뒀었다.


점점 심해진 손가락


'어, 좀 다쳤는데 괜찮아. 손가락이 부어오르니까 따뜻해서 손이 시릴 것도 없고 좋아'

심지어 누군가가 내 손가락이 다친 걸 보고 괜찮냐고 물으면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더 이상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며칠 전부터 손가락이 너무 아파서 잠들기 힘든 날이 반복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날 노이슈바인슈타인 성을 찾았을 때 기차역 안에 있는 작은 약국에 잠깐 들렀었다. 또 혼자만의 판단이긴 하지만, 항생제를 좀 사 먹으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항생제를 구입하려면 의사의 처방이 필요했기에, 나는 항생제를 살 순 없었다. 그래서 그냥 연고 하나라도 괜찮은 걸 구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약사님께 나의 상처를 내밀어 보여주며, '지금 이런 상황인데, 여기에 맞는 약을 좀 주세요'라고 얘기했더니, 내 상처를 본 약사님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다. 그녀는 내게 얼른 빨리 병원에 가라고 일러줬다. 당장 가서 치료받고 약을 타러 오라고 내게 다급하게 말씀하셨다. 그렇게 연고도 사지 못하고 약국에서 쫓겨나다시피 하며 약국을 빠져나왔는데, 약사님의 말 대로 병원에 갈 순 없었다. 나는 뮌헨으로 돌아갈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을 기약하는 방법 밖엔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현실적인 문제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바로 병원비. 분명 병원비가 어마 무시하게 나올 텐데, 이걸 헤쳐나갈 방법은 없을까 하며 고민했다. 나는 여태껏 여행자보험 드는 돈 조차 아까워서 여행자 보험 하나 없이 여행을 해오고 있는 것인데, 이걸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한참을 고민해봤지만, 떠오르는 방법은 없었다. 내가 갑자기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저 난 혹시나 하는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여행자 보험을 가입해두는 방법 밖엔 없었다.

그렇게 보험 가입을 마치고, 조식을 먹으며 어떤 병원에서 어떤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정보들을 수집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병원들이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어서, 곧 또 다른 도시로 떠나야 하는 내게 맞는 병원들이 없었다. 오늘 당장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마음먹은 김에 오늘 꼭 병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길을 나섰다.


여행자 보험의 혜택을 받고자 노력한 과정들


다행히도 근처에 있는 대학병원의 응급실은 열려있었다. 물론 가격이 훨씬 더 비싸긴 했겠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떨리는 마음으로 응급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 진찰을 먼저 받았다. 간단한 진찰이 끝나자 의사 선생님은 이제 접수처로 돌아가 접수를 하고 오라고 말씀해주셨다. 진찰 이후에 진료까지 다 마치면 수납을 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찰 - 접수 - 진료의 순서로 진행되는 곳인가 보다. 그래서 접수를 하려는데, 금액이 정말 충격적이었다. 어떤 진료를 받건 간에 일단 기본적으로 350유로를 수납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독일에서의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이니까 그렇다고 했다. 다행히도 선지급한 350유로보다 저렴하게 진료가 이뤄질 경우, 환급해주는 방식이라고는 했지만, 내가 이해한 바가 맞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어떤 계좌로 환급을 해준다는 것인지 사실 불안했다. 하지만 350유로를 내지 않으면 나는 그냥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피 같은 돈 350유로를 수납하고, 접수증을 발급받아 다시 응급실로 돌아갔다.

다시 응급실 문을 열고 들어 갔는데, 그곳에 있는 간호사분이 나더러 밖에서 기다리라는 손짓으로 나를 내쫓았다. 알고 보니, 응급실은 응급실이긴 한데,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응급실이었다. 진료는 응급실에서 먼저 이뤄지긴 하지만, 진료가 끝나면 접수를 하고, 응급실 밖에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가 응급실로 들어가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나보다 늦게 온 사람들이 자꾸만 먼저 들어가는 게 아닌가. 아, 처음 응급실에서 내 손가락에 대한 상황 설명을 할 때 아픔의 정도를 1부터 10까지의 수로 표현해보라고 했는데, 내가 그 질문에 자존심을 살리고자 '음... 한 4 정도?'라고 했던 것 때문인가 보다. 그래서 내 순번이 한참 뒤로 밀리나 보다. 아니 나는 분명 11시에 병원에 도착했는데 도대체 왜 1시가 다 되어서야 응급실에 들어가게 된 걸까?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너무 지루하고 짜증이 났다.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는데, 어서 빨리 내 손가락을 째서 고름을 짜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대기실에서 힐끔 보이던 응급실 / 350유로와 관련한 안내문

그렇게 들어간 응급실에선 어려운 영어들이 난무했다. 내가 이해한 바가 맞는지 몇 번씩 다시 쉬운 말로 말해달라고 부탁해야만 했다. 어려운 단어가 너무 많이 섞여있어서 아직까지도 내가 이해한 바가 맞았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 손가락을 치료하는 방법은 절개 후 짜내기라고 했다. 대충 이해가 됐으면 "yes"라고 몇 번 답하고 나니, 마침내 시술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시술의 현장이 한국과 조금 달랐다. 한국에서 이런 시술을 받을 때의 상황이 어떤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이곳에서는 마취부터 시술까지 모든 행위들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어떠한 가림막도 없이 그저 테이블 위에 내 손가락을 올려놓고 내가 내 손가락을 내려다보는 상황에서 모든 시술이 이뤄졌다. 사실 나는 이 광경을 좀 기대했다. 어차피 마취를 할 테니까 아프진 않을 것이고, 여태 나를 괴롭혔던 고름이 짜여 나오는 걸 보는 게 쾌감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다림의 시간이 너무나도 길었기에, 빨리 째고, 빨리 짜내고,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그런데 절개 후 피가 쏟아져 나오는 양이 어마어마했다. 갑자기 심장이 너무 빨리 뛰기 시작했고, 괜히 온몸의 피가 전부 손가락을 통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러다간 기절할 것만 같았다. 왜 의사 선생님들이 '보지 마세요'라고 하는지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제발 빨리 좀 째주지', '속 시원하겠다'하며 쾌감만을 기다렸는데, 쾌감은 개뿔, 밖으로 외치지 못해서 그렇지, 속에서는 계속해서 '제발 그만!!!! 제발 그만 째주세요!!! 제발 그만요!!!'라고 끊임없이 외쳐 댔다.


수술 끝


진료도 끝나고 근처의 약국에서 그렇게나 바라던 항생제까지 받고 나니 오후 3시가 되었다. 11시에 병원에 도착했는데 손가락 하나 째는데 4시간이 걸렸던 것이다. 숙소로 돌아가 조금 쉬다가 다시 나올 생각이었는데, 곧장 다음 일정을 시작했다. 다음 일정이라고 해봐야 또 뮌헨에서 가보고 싶은 곳들을 찾아 산책하는 게 전부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다 문득 배가 고파졌다. 음식을 사 먹으려고 지갑을 확인했더니 현금이 부족했다. 병원비로 일정 부분 지불을 하기도 했으니 현금이 다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ATM기를 찾아 현금을 인출하려는데, 아... 이럴 수가 잔액부족이 부족하다는 안내 메시지가 떴다.


X발


병원비와 약값을 내고 나니 밥도 사 먹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니, 나는 고작 몇 시간 전에 손가락을 째는 아주 거대한 수술을 했던 사람인데 밥조차 먹을 수가 없었다. 갑자기 울화가 치밀었다. 남은 돈으로 어떻게든 스페인 순례길이 끝나는 일정까지 버텨보는 게 내 목표였는데, 무슨 병원비와 약값이 60만 원씩이나 해서 내 통장잔고를 싹 털어갔단 말인가.


'아니, 저녁은 먹어야 할 거 아니야.'

'저녁을 먹어야 약도 먹고, 그래야 좀 나을 거 아니야.'

'이렇게 다 털어가면 나는 이제 어떻게 살라고!!! 이 X발 X 같은 세상아!!!!'


너무나도 억울했다. 나는 분명 돈을 흥청망청 써본 기억이 없는데, 여태껏 그렇게나 돈을 아끼기 위해 노력했는데, 왜 벌써 돈이 다 떨어진 것일까. 돈이 없으니까 '치료받지 말 걸' 같은 멍청한 생각이나 하고 있는 것 또한 화가 치민다. 무엇보다 건강이 최우선이고, 어떻든 간에 아픈 걸 먼저 처리하는 걸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는데, 고작 나의 식욕 때문에 저런 생각을 하는 스스로가 너무나도 미웠다. 그렇다고 내 돈 다 털어간 내 손가락을 옹호해 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난 그냥 내 손가락, 그리고 나의 식욕 이 두 가지가 그냥 밉다. 둘 다 미워서 미쳐버리겠다. 너도 밉고 나도 밉고, 이 세상이 밉다.

이런 상황에, 이런 상황을 만든 장본인이 '나'라는 사실 또한 짜증 난다. 이런 상황을 자초한 스스로까지 미워서 미쳐버릴 것 같다. 스트레스가 걷잡을 수 없이 자꾸 커지기만 커진다. 이 정도면 진통제를 처방받을 것이 아니라, 진정제를 처방받았어야 마땅하다.


처방전


하... 이 와중에 마취가 풀리면서 아프기 시작한다. 진짜... 너무나도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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