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_Strasbourg, France

나는 '길'에 끌리는 사람이다.

by 한성호

독일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로 왔다.


한 번 가봤던 나라이기에 스위스를 거치고 싶진 않았고, 독일의 서쪽, 그리고 프랑스의 동쪽에 아는 도시가 없어서 다음 도시로 어디가 좋을지 계속해서 고민하던 중, 결국 이곳 스트라스부르를 선택했다. 역시나 스트라스부르도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도시였다. 그런데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해보니, 내가 처음 들어본 도시라는 사실이 민망할 정도로 관광객도 많고 그에 걸맞게 정말 아름다운 도시였다. 마침 오랫동안 계속되었던 우중충한 날씨도 걷히고, 따사로운 햇살이 도시를 감쌌던 것도 스트라스부르를 더욱 아름다워 보이게 만들었다. 숙소 값이 너무 비싼 탓에, 그리고 잠깐 머물 생각으로 하룻밤만 예약을 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예쁜 곳에 왔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야, 나 지금 스트라스부르라는데에 와 있어! 여기 진짜 좋아'라는 나의 신나는 말에 그는'어 알아. 들어봤어.'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정말 나만 이곳을 몰랐나 보다. 알고 보니, 이곳 스트라스부르는 일본 애니메이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등장하는 마을의 모티프가 된 곳이라고 했다. '정말 나는 아무런 정보 없이 여행을 다니는구나' 그런데, 문득 이 사실이 반가웠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예쁜 곳을 찾아낸 본인이 꽤 기특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괜히 내가 예쁘다고 하는 것들을 남들도 예뻐하는 것 같아서, 보는 눈이 좀 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스트라스부르의 풍경


그런데, 사실 진짜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모티프가 된 마을은 스트라스부르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콜마르'라는 마을이라고 했다. 스트라스부르에 도착한 첫날에는 이러한 사실을 알지도 못했을뿐더러, 늦은 시간에 도착한 탓에 당장 가보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렇게 예쁜 곳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날이 밝자마자 콜마르를 향해 달려갔다. 이 비싼 스트라스부르에 하루 더 묵을 수는 없으니까, 최대한 늦게 떠나는 일정으로 야간 버스를 예약하고, 체크아웃과 동시에 숙소에 짐을 맡긴 뒤, 콜마르를 향해 달려간 것이다.

사실 콜마르로 출발하기 전까지 고민이 많이 들었다. 기차 타고 30분 정도를 가야 하는 곳인데, 그 말인즉 기차표를 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수중의 돈은 이제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아니, 스페인 순례길을 위해 조금은 남겨둬야 했다. '콜마르를 다녀온 것이 정말 나를 행복하게 해 줄까?' 하는 생각으로 출발하기 직전까지 망설였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할 일이면, 안 해서 미련을 남기기보단 하고선 반성을 하는 게 낫다.'는 나만의 신조를 따라 결국 콜마르행 기차표를 끊었다. 대신에 대학생 요금으로 티켓을 샀다. 이러면 안 되는 것임을 알고 있지만, 돈과 콜마르 둘 다 포기할 수 없었고, 그렇다고 여태 껏처럼 티켓 검사를 안 할 거라는 생각으로 티켓을 안 사고 탈 수는 없으니까, 나만의 타협점을 찾은 것이 대학생 티켓이었던 것이다. 혹시나 티켓 검사를 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으로 열차에 탑승해 있는 내내 검표원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을 하면 좋을지 고민했었는데, 결국 검표원은 지나가지 않았고, 열차는 금세 콜마르에 도착했다.


콜마르 기차역


콜마르에는 널찍한 광장이 있다거나, 멋진 대로가 펼쳐져 있는 곳은 아니었다. '쁘띠 베니스'라는 이름으로 이탈리아 베니스를 축소해 놓은 듯한 조그마한 개울이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었는데, 이마저도 말 그대로 정말 아기자기했으니까 말이다. 곧 야간 버스를 타고 또 다음 도시로 가야 하는 상황이기에, 조급한 마음이 들었는데, 2-3시간이면 충분히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아기자기한 마을이었다.

이런 아기자기함 덕분에 콜마르에는 정말 예쁜 골목길들이 사이사이 숨어 있었다. 급하게 일정을 결정한 덕분에, 그리도 엄청 비싼 숙소임에도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는 덕분에 오프라인 지도조차 다운로드하지 못한 채 콜마르를 누볐던 것이 오히려 많은 도움이 되었다. 지도 없이, 목적지 없이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니 콜마르의 구석구석을 누볐다. 그렇게 마을을 구경하다가, 배가 고파져 싸왔던 식빵과 딸기잼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는데, 마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의 등장인물이 된 것 같았다. 그래 비주얼을 봤을 때 하울은 아니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나오는 마을의 한 신문배달부 청년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집 저 집 신문을 배달하려고 마을 곳곳을 누비다가 점심때 되어, 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 쉬면서 허기진 배를 달래는 그런 청년 말이다.


콜마르의 길거리와 쁘디베니스


<모든 요일의 여행>이라는 책을 읽었던 게 생각난다. 이 책은 작가의 여행기를 담고 있었는데, 작가는 여행지에서 만난 각양각색의 현관문들에 이상하게 끌린다고 이야기했다. 그 책을 읽었을 때, 나는 여행을 하며 어떤 것들에 끌리는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는데, 콜마르를 다녀온 지금 나는 이제야 그 답을 내릴 수 있겠다. 나는 '길'이 끌리는 사람이다.

어떻게 보면 흔한 답변일 수도 있겠다. 유럽에는 정말 안 예쁜 거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내 핸드폰 카메라 앨범과 카메라의 메모리카드에 길거리 사진들이 한가득인걸 보면 나는 분명히 '길'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다.

이상하게 거리를 걷다 보면, '이 길은 얼마나 오래된 길일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 길이 전성기였던, 혹은 이 길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순간으로 순간이동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크로아티아 스플릿의 거리에서는 내가 마치 로마의 시민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루마니아의 티미쇼아라에선 루마니아의 독립을 위해 광장에 모여서 부패 정권 타도를 외치는 청년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번에 콜마르에서는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마을의 신문배달부가 되어서, 어디선가 지붕을 밟고 뛰어다니고 있는 하울과 소피를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거리를 통해서 나만의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그리고 그런 상상을 하는 일이 행복하다. 그런데 문득, 이런 소소한 행복을 나는 왜 여태 잊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내 주변에 있는 거리, 내가 지나쳐온 익숙한 거리에서도 나는 충분히 끌림을 느끼고, 또 즐거운 상상을 해 볼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왜 이리도 급하게 걷기 바빴던 걸까? 급할 게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나의 행복한 상상처럼, 천천히 걸어야만 보이는 것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런데, 나는 무엇에 그렇게 눈이 멀어 빨리 걸었던 것일까?


콜마르의 아기자기함


다시 돌아온 스트라스부르에는 주말이라 그런지 길거리에 사람들이 많았다. 콜마르에서 거리를 구경했다면, 스트라스부르에서는 거리의 사람들을 구경한 셈이다. 마을 중심에 있던 노트르담 성당 앞에서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고, 욱일기에 대한 이야기를 펼치고 있는 한국인 대학생들도 만났다. 추운 날씨 속에서 서명 캠페인을 하고 있는 대학생들을 보고 있으니 괜히 기특해 보였다.


스트라스부르의 노트르담 대성당


아니, 대학생들을 기특하게 생각할 정도로 나이가 들었으면서, 결국 기차 티켓은 그들의 특권을 침해하면서 까지 대학생용 티켓을 끊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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