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로운 시간들의 재발견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나의 여행기는 여기까지다.
물론 이후에 나는 스페인 순례길을 완벽하게 걸어 내었다. 그리고 대망의 COVID-19이라는 어마 무시한 바이러스를 만나, 그를 피해 한국으로 쫓기듯 돌아왔다. 그렇다고 매일매일 쓰던 일기를 갑자기 중단하는 일은 없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도, 그리고 코로나를 피해 스페인에, 또 불가리아에 잠시 숨어 있을 때에도 일기는 계속되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1년이 훌쩍 넘었지만, 나는 앞으로도 해야 할 이야기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
이 <여행기라 부르기엔 좀 길지>라는 매거진에 쓴 나의 글들은 어떻게 보면 잉여 시간들에 대한 기록인지도 모르겠다.
긴 여행이 끝나고 돌아왔을 때 사람들은 내게 '어디가 가장 좋았어?'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 그때마다 나는 '스페인 순례길', '시베리아 횡단 열차', 혹은 '베트남 오토바이 종주' 이렇게 3가지의 대답을 했을 뿐, 지금 이 <여행기라 부르기엔 좀 길지>에 담겼던 시간들을 이야기해 본 적은 없다. 물론 손가락을 다쳤다던가,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를, 또다시 여행을 하다가 만났다던가 하는 특별한 순간들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이 시간들이 내 삶에 그렇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잉여 시간들이었다. 나는 그런 잉여 시간들을 정리하여 매일 같이 브런치에 업로드한 것이다.
그렇게 업로드할 때마다 참고했던 글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앞서 이야기했던 내 개인 SNS에, 그리고 휴대폰 메모에 적어두었던 나의 일기들이다. 나는 그 일기들을 다시 읽어보며 수정하고, 짜깁기하고, 또 사진을 추가하여 지금 이 매거진을 만들게 되었다. 그렇게 글을 업로드하기 위해서 그 당시에 썼던 일기들을 다시 읽어보는데, 문득, 조금 진부한 표현을 섞어, '이 시간들이 없었다면, 시베리아 횡단 열차도, 스페인 순례길도, 베트남 오토바이 종주도 없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베트남을 함께 달릴 오토바이를 사던 그 시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기다리던 블라디보스톡 역에서의 시간, 순례길을 걷기 위해서 새로이 신발을 구매하던 그 시간이 없었다면, 그 결과도 분명 없었을 것이다.
지금의 나도 그때와 같이 굉장히 잉여로운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매일 아침 직장이 아닌, 고작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식당으로 출근을 해서 음식을 서빙하다가, 직원들보다 한참 일찍 퇴근을 한다. 그리고는 이야기를 만들어 유명하지 않은 브런치에 올리고, 영상을 편집하여 유명하지 않은 유튜브 채널에 올리면서 지내고 있다. 일말의 생산성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잉여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나는 이러한 나의 생활이 전혀 맘에 들지 않는다. 멀쩡한 직장에 취직을 해야 할 것 같지만 취직은 하기 싫고, 돈도 안 되는 글을 쓰는 일, 영상을 편집하는 일은 이제 그만해야겠다 싶으면서도, 놓아지지는 않고, 이런 애매모호한 나의 판단과 결정에 환멸이 나고 있는 와중이다. 애매한 스탠스라는 걸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벗어나기는, 벗어 날 수는 없고, 그렇게 나는 차츰차츰 나의 시간들을, 나의 생활들을 극도로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잉여로운 시간이 없다면?'이라는 생각이 또다시 문득 스친다.
시간은 연속적이다.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기면 중간 과정은 생략되고 결과들만이 나열되긴 하지만, 우리의 시간은 계속해서 흐르고 있다. 어제가 없었다면 오늘은 당연히 없다. 과거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의 내가 미래의 나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 이 잉여로운 시간을 부정한다면, 미래의 한성호도 부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로 나는 생각을 조금 바꿔서, 지금 이 잉여로운 순간들을 끌어안아보려 한다. 이 잉여로운 시간들이 없다면, 미래의 나도 없다는 생각으로, 모두 다 전부 내게 소중한 시간들이라 믿고, 끌어안아보련다.
글쎄 이것이 자기 합리화의 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친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나에게 면죄부를 씌우는 것이라고도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미래의 내 모습을 위한답시고 지금의 순간들을 부정하진 말아야겠다. 지금 잘 못 살고 있다고 생각할 필요 없다. 칼자루를 쥔 것은 미래의 내가 아니라 오늘의 나다. 내가 칼을 휘두르는 대로 미래의 내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니까.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빚진 것 따윈 없다.
쫄 필요 없다.
처음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3편의 여행기를 계획했다. <8,435km짜리 반성문>(가제)이라는 제목이 붙은, 베트남 오토바이 종주 여행기, 아직 정리도 되지 않았고, 제목도 붙이지 못한 스페인 순례길 이야기, 그리고 앞의 두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잉여시간들까지 총 3편이다. 그중에 2편은 이미 완성되었다. <8,435km짜리 반성문>은 한국으로 돌아와서부터 작업을 시작하여 원고로 만들어져 있고, 지금 후기를 쓰고 있는 이 매거진까지 총 2편이 완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시간 순서대로 스페인 순례길을 걸었던 이야기에 제목을 붙이고, 마저 완성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겠으나, 나는 잠시 멈추려 한다.
사실 3편 중에, 가장 많이 애정을 쏟은 것이 <8,435km짜리 반성문>이다. 그러나 완성이라는 표현이 참 어울리지 않는 상태다. 원고는 원고일 뿐이라고 생각이 들다가도, 원고 작업을 마쳤다는 표현이 참 억지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하는 원고란, 출판사와 컨택하기 바로 직전의 단계, 그러니까 출판사의 손이 닿기 바로 직전의 단계의 글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인 즉, 출판까지 이어져야 원고가 되는 것이지, 출판까지 이어지지 않은 글은 출판되는 그 순간까지 그냥 뻘 글로 남아있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 내가 딱 그 꼴이다. 나는 출판사와 컨택을 시도하긴 했으나, 어느 출판사도 나의 글에 손을 뻗지 않았으니, 이것을 원고라고, 그리고 원고 작업을 했다고 이야기하기가 참 민망하다.
그래서 멈추려 하는 것이다. 다시 한번 <8,435km짜리 반성문>에 집중하기 위해서 말이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8,435km짜리 반성문>이 유명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실패로 돌아가긴 했지만, 이러한 이유로 나는 꼭 출판사와 함께 출판을 하고 싶어서 원고를 만들고, 여러 출판사에 투고를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내 돈을 들여서라도, 독립 출판으로라도 꼭 출판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도 내 글이 유명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버리진 못했으나, 언제까지 이 것을 뻘 글로 남겨 둘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다시 한번, 시도해보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야 후련할 것 같다.
'치유를 주는 글을 쓰는 게 아닌, 스스로의 치유를 위해 글을 씁니다. 허나, 나를 치유하기 위한 글이 누군가에게도 곱게 닿아 치유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욕심인가?)'
브런치에 스스로 써둔 나의 작가 소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잉여로운 시간을 끌어안자'라는 교훈을 남기고, <여행기라 부르기엔 좀 길지>의 연재는 이로써 종료되지만, 나는 글 쓰기를 멈출 생각은 없다. 나는 여전히 치유가 필요한 사람이다. 나는 계속해서 나를 위한 글을 쓸 것이다. 영 맘에 들지 않는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글을 쓸 것이다. 종종 브런치에도 내 생각들을 적어 올리겠다. 그리고, <8,435km짜리 반성문>을 완성시키겠다고 이 자리를 빌려 약속하겠다. 그리고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작가 소개의 말처럼, 지금 이 매거진이 또 내가 써대는 나의 생각들이 누군가에게도 곱게 닿아 치유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 다음번엔 브런치가 아닌 종이책을 통해 닿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