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이런 식으로 도움을 준다고?
경제적 독립을 꿈꾸며 대학생이 되기도 전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지만, 사실 나는 대학생이 된 이후에도 다시 용돈을 받아 썼다. 그 용돈을 다시 한번 끊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한참이 지나서, 군대를 전역하고 난 다음이었다.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하기 전까지 시간은 꽤 많이 남아 있었다. 나는 그 시간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며 경제적 독립을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한창 일자리를 찾던 중에, 마침 군대에서 선임으로 있었던 한 형님의 연락을 받았다. 그 형님은 내게 아르바이트 자리가 필요하지 않냐며, 돈을 많이 벌게 해 줄 테니 본인의 회사에서 함께 일하자고 이야기를 해왔다.
사실 그와 그렇게나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에 나는 홀라당 넘어갔다. 무슨 일을 하는 것이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그 형님이 말한 날짜와 시간에 면접을 보러 나갔다. 면접 장소는 우리 집에서 한 시간 반 남짓 떨어져 있는 인천의 중동역이었다. 그 당시에 내가 차가 있을 리는 만무하니, 나는 아주 오랜 시간 지하철을 타고 중동역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그에게 전화를 걸고,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내 앞에 번쩍번쩍한 외제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운전석에는 다름 아닌 내게 연락을 했던 그 형님이 앉아 있었다. 그는 창문을 내려 내게 반갑게 인사하고는, 나를 차에 태워 그의 사무실로 출발했다.
"이거 형 차예요..?"
"그럼 인마"
"우와 죽이네요"
"너도 할 수 있어. 아 맞다. 너 어디산댔지?"
"저 노원이요"
"그럼 한 시간 반 넘게 걸렸겠네?"
"네 그 정도 걸린 거 같아요"
"그래? 그럼 일하게 되면 형이 차 한 대 줄게"
"네...?"
"아, 출퇴근은 편하게 해야 되니까 형이 한대 줄게"
나는 앞으로 내 통장에 찍힐 돈을 생각하며 아주 설레는 마음을 안고 그의 사무실로 향했다.
그런데 사무실의 첫인상은 내가 상상하던 느낌과는 좀 달랐다. 영화에서나 보던 조폭들의 가짜 사무실 같은 느낌이랄까? 무엇보다 아주 찐한 담배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지만 그래도 좋았다. 내가 출근만 하게 된다면 내게 차가 한대 생기니까 말이다. 그리고 조금만 더 열심히 일하면 외제차도 탈 수 있다는데, 그깟 담배냄새는 중요하지 않았다.
푹 꺼지는 소파에 앉아 비타 500을 마시면서, 그 회사의 대표님, 그리고 그 선임을 마주 앉은 채로 면접을 봤다. 사실 면접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민망한 게, 그들은 이미 나를 직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오히려 그들의 질문에 내가 답을 하기 보다도, 내 질문에 그들이 답을 해주는 식으로 대화가 오갔다. 나는 당연히 무슨 일을 하는 것인지, 그리고 그 일을 위해서 나는 이곳에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가 제일 궁금했다. 그들이 답한 내 업무는 특별할 것이 없는 사무적인 일이었다. 블로그고 뭐고 할 것 없이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사이트에 글만 올리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그리고는 내가 올리게 될 글의 예시를 보여줬는데, 그제야 나는 이곳이 어딘지 깨달을 수 있었다.
맞다. 내가 올려야 하는 글은 중고차 허위 매물이었고, 이곳은 각종 불법 행위들을 일삼는 악랄한 중고차 업체였다. 그들의 악랄함에 대해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의 표정은 굳어졌다. 그랬더니 그 형님은 계속해서 나를 설득했다. '나쁜 일 아니다.', '네가 하는 건 그냥 단순한 글을 올릴 뿐이다.'라며 계속해서 나를 붙잡았다.
어떻게 그들이 그렇게나 많은 돈을 버는지는 모르겠지만,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사실 같아 보였다. 그럴 만도 한 게 그 형님의 차는 외제차였고, 온몸은 명품으로 치장을 했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복학하기 전까지 레슨을 받을 생각이었으니, 이렇게나 많은 돈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돈이 필요한 상황이긴 했다. 게다가 엄청 많은 돈이니까 레슨을 받고도 놀고먹으면서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정말 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제안을 결국 거절했다. 무엇보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고작 이제 군대를 전역한 23살짜리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많은 불법 행위들이 있을 것이라는 게 불 보듯 뻔했다. 결국 나는 '좀 더 생각해볼게요.'라는 말을 반복하며 그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 형님은 다 잡은 나를 놓쳤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내가 괘씸하다고 생각했는지, 다시 중동역으로 돌아가는 길엔 그의 외제차를 태워주지 않았다.
원래부터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 이후로 그 선임이 양아치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중고차 딜러라는 일은 양아치도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양아치도 할 수 있는 일인데, 나라고 못 할게 뭐 있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한 것이 내게 천군만마와 같은 큰 도움이었다. 누구나 중고차 딜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저 양아치 선임처럼 조금만 불법적으로 일하면 돈까지 많이 벌 수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 내게 든든했다. 혹시나 내가 나중에 실패하더라도, 중고차 딜러가 되어서 먹고살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게임으로 치면 목숨 하나를 더 얻게 된 느낌이랄까?
물론 나중에라도 그런 일이 있으면 안 되겠지만 이렇게 자신감을 얻는 덕분에 나는 더 열심히 여기저기 부딪히고 다닐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더 열심히 이것저것 시도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부딪히다 실패하면, 찾다가 못 찾으면 중고차 딜러가 될 생각으로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자니, 정말 중고차 딜러라는 직업을 가지고 계신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든다. 그런데, 나는 실제로 지금 이 정도로까지 생각하지는 않는다. 정말이다. 나는 이때 이후로 정직하게, 게다가 전문적으로 일하시는 딜러분들을 많이 보고 생각을 많이 바꿨다. 그러나 그 당시, 그 선임의 행동들이 꽤나 충격적이어서, 중고차 딜러라고 하면 그 선임의 양아치 같은 모습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사실이다.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다. 그러니 혹시나 이 글을 보고 화가 치솟는 딜러분이 계시다면 나에게 화를 내지 말고, 내가 이런 편견을 갖게 만든 그 사람에게 화를 내주시길 바란다.
내가 이런 편견을 갖게 된 건 모두 그 사람 잘못이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다양한 일들을 시도할 수 있게 된 것은 그 사람 덕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