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시작 된 사회 생활
수능이 끝나고 나니, 그 전까진 용돈을 타서 쓰던 친구들이 하나 둘 아르바이트를 하기 시작했다. '나도 이제 어른이야'라는 생각으로, 스스로 용돈을 벌겠다며 나선 것인데, 그게 참 어른 같아 보이고 멋있어 보였다. 나 또한 그들처럼 되고자, 내 용돈은 내가 벌겠다고 집에다가 선언 비슷한 걸 한 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친구의 소개로 택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무거운 짐을 나르며 하룻밤을 화려하게 불태우는 택배 상하차 업무가 아니라, 기사님과 함께 택배를 배송하는 일이었다. 택배 기사님은 하루에 많은 양을 배달할수록 본인에게 이익이 떨어지는 시스템이어서 시간 대비 더 많은 택배를 배송하기 위해 사람이 필요했다. 그리고 우리는 학교가 쉬는 날 딱 하루만 일해서 일당은 받는 일, 고등학생도 쉽게 써주는 일을 찾고 있었는데, 이 택배를 배송하는 일이 마침 그런 일이었다.
택배 배송 업무는 어린 나이에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물건을 기사님이 시키시는 대로 아파트 몇 동 몇 호에 놓고 오면 되는,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힘든 부분을 꼽자면 계단을 오르내리는 경우도 꽤 많다는 정도였는데, 무릎관절이 아주 싱싱하게 살아있는 우리 같은 고등학생들에겐 그런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계속해서 일을 나갔다. 학교가 쉬는 날이면 기사님과 스케줄을 맞춰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른 동네 아파트를 박스를 들고 뛰어다니다가 돌아왔다. 그렇게 뛰어다니다 보면, 뭔가 나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고 있다는 만족감 덕분에 웃음이 지어질 정도로 일은 아주 즐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많은 돈을 받았던 건 아닌데, 그 당시의 우리에겐 하루를 일하면 일주일, 혹은 한 달을 살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돈이었다. 게다가 이 일엔 보너스도 존재했다. 나와 자주 일하는 기사님은 소위 말하는 부자 동네, 부자들의 아파트에서 배송을 하고 계시는 기사님이었는데, 그런 이유 때문일까 종종 콩고물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설날을 앞둔 날에도, 나는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나의 기사님과 함께 택배 배송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설날이라 그런지 그 일주일은 과일 박스를 배송하는 일이 유독 많았다. 과일 박스가 많다는 것 외엔 특이사항은 없었다. 과일 박스라고 해서 배송을 하는 방법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냥 과일 박스도 다른 택배물과 똑같이 운송장에 쓰여있는 대로 찾아가서 택배를 놓고 오면 되는 것이었다.
그 사과 한 박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우 과일이라 그런지 조금 무겁네'라는 생각만 했을 뿐,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사과 박스 앞에 붙은 운송장에 쓰인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택배 왔습니다"
"잠시만요 ~ 나갑니다 ~"
잘 사는 아파트라 그런 걸까, 마룻바닥에 끌리는 슬리퍼 소리가 한참이나 들렸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현관문이 열렸는데, 와... 나는 아직도 그 현관문 뒤로 펼쳐진 광경을 잊지 못한다. 그 집의 현관은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공간을 제외하고는 전부 택배 박스로 가득했다. 모두 그 집으로 찾아들어온 선물 박스들이었다. 과일, 소고기, 한과 등등 현관 양쪽으로 택배들이 줄줄이 쌓여 탑을 만들고 있었다. 집주인 아주머니의 얼굴은 그 '쌍둥이 택배 타워' 사이로 겨우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건, 어디로... 드리면 될까요?" 내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 선물이 너무 많아서요... 저 죄송한데 보낸 사람만 좀 알려주실래요?"
"네...?"
"메모 좀 하게요"
"아... 네... OOO님이 OOO님께 사과를 보내셨네요"
"어휴 이분은 왜 이런 걸 보내셨대.... 고마워요 기사님. 아, 그리고 그 사과는 가져다가 드세요"
"네?"
"기사님 고생하시니까요. 새해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주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현관문이 닫히면 나는 빈손으로 있어야 했는데, 현관문이 닫히고도 내 손에는 사과 박스가 그대로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얼른 뛰어내려 가 기사님께 여쭤보니, 동네가 잘 사는 동네라서 그런지 그런 일이 많다고 말씀해주셨다. 명절이면 흔히 있는 일이라며, '그 사과는 네가 받아온 것이니 집에 가져가서 먹어라, 나도 또 있다.'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그날은 일당과 더불어 사과 한 박스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누구한테 선물을 받으면, 그리고 택배를 받으면 기분이 좋아서 다짜고짜 바로 뜯어보는 내게 이 일은 꽤 충격적이었다. 아직까지 그 사건이 뚜렷하게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말이다.
하루는 친구의 대타로 친구의 기사님과 함께 일을 나갔던 적이 있다. 마침내 친구의 기사님은 우리 동네에서 배송을 하고 계시는 기사님이라서 출퇴근길이 가까워 그날은 참 편했다. 이 기사님과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는 친구가 부러웠다. 그렇게 내 친구의 기사님과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그리고 옆동네 아파트를 하루 종일 돌며 배송을 했는데, 나는 그날 그동안 내가 가지고 있었던 우리 동네에 대한 환상들이 전부 깨졌다. 나는 다시는 이 동네에서 택배를 배송하고 싶지 않아 졌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우리 동네가 잘 사는 동네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가난한 동네, 시골 같은 동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는 그래서 우리 동네가 좋았다. 따뜻함이 느껴졌으니까 말이다. 아파트 평수는 작지만 마음이 편하고, 정이 넘치는 동네가 바로 우리 동네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한 부자동네는 우리 동네와 반대로 차가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경쟁에서 뒤처지면 안 되기 때문에, 먹고살기 바쁘기 때문에,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 이기심으로 가득한 동네가 부자 동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택배를 배송하며 두 동네를 전부 겪어 본 결과,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차가운 건 우리 동네였고, 따뜻한 건 부자동네였다.
나는 아직도 트렁크팬티만 덜렁 입은 채, 담배를 물고, 내 손에 들린 본인의 택배를, 내가 훔치기라도 했다는 것처럼 빠르게 낚아채간 그 남자를 아직도 잊지 못한다. 우리 동네는 말 그대로 못 사는 동네라서, 피해의식이 있었나 보다. 그러니 복수라도 하려는 것처럼, 그들보다 급이 낮다고 판단한 나를 그렇게나 하대했던 것일 테다. 단순히 어려 보인다는 이유로 내게 반말을 서슴지 않았고, 잠깐 엘리베이터를 붙잡아둔 내게 신경질적으로 화를 냈다. 강 넘어 아파트에서의 나는 그래도 꽤 존중받았는데, 새해 선물로 사과 박스를 받기도 하고, 같은 엘리베이터에 탄 꼬마들조차 내가 짐을 다 내릴 때까지 열림 버튼을 눌러줬는데, 우리 동네는 그런 따뜻함이 없었다.
있는 놈들이 더 하다고? 아니다. 없는 놈들이 더 하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내가 아주 단편적인 부분만을 보고 일반화를 시켜버린 것일 수도 있다는 점 인정한다. 그날 따라 유독 내 맘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많이 본 것일 테다. 그러지 않은 경우가 분명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사건을 통해 부자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부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일을 그만둔 것도 그런 생각의 연장선이었다. 왜냐하면 나와 함께하던 기사님은 그런 여유로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택배는 아무래도 시간이 생명이다.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니까, 더 많은 택배를 배송하려면 더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그러다 보니 택배 기사님들은 본인만의 동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노하우다. 나 또한 일을 반복하면서 노하우가 생겼다. 이제는 7층을 배송 갈 때, 몇 층 즈음에 엘리베이터를 올려놔야 택배를 놓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이밍 맞춰서 탈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나의 퇴근 시간을 점점 앞당겼다.
처음엔 그게 기뻤다. 내가 일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에 굉장히 뿌듯했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일당을 시급으로 계산해서 받는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퇴근 시간이 앞당겨질수록 내 급여는 점점 줄어들었다. 기사님은 나보다 훨씬 어른이니까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텐데도, 정확히 내가 일한 시간만큼만을 일당으로 주셨다.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그동안의 그 기사님의 행동이 괘씸하였다. 일이 일찍 끝나서 좋아하던 내가 기사님 눈에는 얼마나 바보 같아 보였을까.
알게 모르게 나는 기사님에게 이용당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돈벌이가 끝났다.